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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허깅의 눈물
자퇴하게 되었어요
결국 재철이는 자퇴를 하게 되었다.
폭력과 절도, 무단 결석, 무단 지각 등이 어우러지며 광풍처럼 지내온 재철이는 3학년 한 학기를 마치면 졸업인데, 결국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한 학기 동안 정말 많은 선처와 배려 속에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교내 봉사, 사회 봉사, 특별 교육 이수 등의 누적된 것이 자퇴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교사로 있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때는 정해진 기간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안 좋게 떠나는 경우다.
나는 재철이를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또 교회로 인도하여 예배도 드리게 하였던 때가 떠올랐다. 주일예배와 금요심야까지 와서 기도했던 때가 떠올랐다. 거칠었지만, 대답도 잘했고, 쾌활한 재철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해진 시간이 있는 법이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를 불러와야 해
자퇴를 할 경우에는 보호자의 동의와 작성이 요구되어서 재철이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철아, 아빠가 엄마하고 이혼했다고 했지? 너 어렸을 때, 그래서 할머니하고 아빠하고 너하고 산다고, 맞니?”
재철이는 평소와 다르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나는 순간 마음이 짠해 왔지만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재철아. 이제 자퇴할 수밖에 없는데, 보호자가 와서 자퇴서를 써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처리할 사항이 있거든. 아빠하고 통화해서 오시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순간 나는 재철이가 경직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재철이는 ‘아빠’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옆에 있는 내가 느낄 정도로 굳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재철아, 왜 그러니?”
재철이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그냥 제가 자퇴서 쓰면 안 되나요?”
“응, 안돼. 보호자가 있는데 당연히 아셔야지. 그리고 자퇴서는 보호자 동의로 쓸 수 있는거야”
재철이는 한숨을 있는 대로 내쉬며 말했다.
“그럼 나 죽는데~~.”
어떻게 안되나요?
나는 재철이를 통해 재철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재철이의 아버지는 일본 야쿠자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컸고, 나이 21살, 아내 나이 17살 때 재철이를 낳았다. 엄마는 폭력적인 아빠로 인해 가출을 했고,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재철이는 할머니 손에 컸고 아버지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재철이의 아버지는 강남 모지점에서 룸살롱을 경영하고 있고, 사채 등의 일도 한다고 했다.
“선생님, 사실 어려서부터 제가 사고 치면 아빠가 돈으로 다 해결해줬어요. 그런데 아빠는 폭력이나 이런 거 벌어지면 꼭 저에게 한 가지만 물었어요. 맞았냐? 때렸냐?예요. 만약에 제가 맞았다 그러면 저는 그날 아빠한테 반쯤 죽는 날예요. 사내 새끼가 맞으면서 다닌다고요. 선생님, 제가 그 아빠 폭력 근성을 닮은 것 같아요. 사실 학교 떠나기 싫고 자퇴하기 싫은데, 어떻게 안 되겠죠? 선생님.”
빨리 말하라고
내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다. 사실 뿌리가 없이 자란 나무는 없듯이, 재철이의 부모라는 뿌리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불현듯 재철이의 어린 시절과 지금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흘러갔다.
“재철아, 이제 어쩔 수가 없구나. 너도 선생님이 얼마나 너 여기까지 오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지 알지 않니? 그런데 이제는 어쩔 수가 없어. 아빠랑 통화해야 할 것 같다.”
“네~. 알겠어요.”
재철이는 고개를 한 번 푹 숙였다 들더니 잠시 후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전화 신호음이 가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그리고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이 새끼야.”
분명했다. 내 귀에 들려오는 그 음성은 굵으면서도 고압적인 목소리였다. 그리고 거친 상소리였다. 재철이는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모르게 두 다리를 오므리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빠, 저기~.”
“뭐? 이 새끼야. 크게 말해. 그리고 빨리 말하라고. 바뻐!”
재철이는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학교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서~, 여기 교무실~, 옆에 담임선생님 계셔.”
순간 재철이의 아버지 목소리가 잦아드는 듯했다. 나는 눈짓으로 나를 바꾸라고 재철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사과하는 아버지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으며 말을 건넨 순간 조금 전의 그 험악한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 될 정도로 재철이 아버지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놈을 잘 못 키워서,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목소리만으로는 아버지의 눈물이 비쳐나는 듯 했다. 재철이 아버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재철이를 아끼시고 보살펴 주신 것 제가 가끔씩 애기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졸업만이라도 시킬 수 없을까요? 이제 한 학기 남았는데~”
재철이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보통 부모들이 자식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염려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네, 아버님.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와서요. 시간이 없어서 오늘 오후까지는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재철이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이윽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재철이 아버지의 목소리.
“이 병신같은 새끼야. 학교 하나 똑바로 다니지 못하고~. 응?”
재철이와 기도하며
나는 흘러나오는 이 목소리를 들으며 재철이의 눈을 보았다.
더 이상 재철이의 눈은 폭력을 쓰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의 눈이 아니었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두려움의 눈이었다.
나는 재철이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재철이를 기억하여주시옵소서. 어린 시절부터 온전한 부모님과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힘들게 자라온 재철이를 오늘 확실히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도 출석하며 새롭게 하나님께 나아가려 했는데, 재철이가 제 곁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재철이와 이 가정과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 특히 재철이 아버지의 마음을 만지셔서 성령님께서 주관하여주시고, 그 마음에 강퍅함과 아들에 대한 분노가 다 사랑으로 바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재철이의 마음을 만져주시옵소서. 이 가정이 하나님의 복된 가정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바라옵기는 지금이라도 영훈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알려주시옵소서. 아니라면 다른 방법 또한 허락하여주시옵소서.”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동안 계속되는 기도로 재철이의 마음도 위로와 평강으로 바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닮은 재철이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드니, 진로부의 김선생님께서 내 옆에 와 계셨다.
“최선생님, 재철이 여기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한 번 알아보시죠.”
건네주는 공문을 보니,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재철이는 우리 학교를 떠난 다음 날, 영훈고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학교로 옮겨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니, 바로 전학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자퇴를 한 후에 다음 날 재입학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들어갈 수 있는 학력인정학교였던 것이다.
재철이 아버지는 오후 한 시쯤 학교로 오셨다.
팔에 문신이 가득하고 짤막한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교무실로 들어오시는 재철이의 아버지에게 선생님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만큼 강한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재철이의 아버지를 보는 순간 재철이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철이의 아버지는 나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그리고는 웬일인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얼굴과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자퇴서 쓰러 왔습니다.”
다른 학교로 갈 수 있어요
나는 아버지와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버님, 여기까지 온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다른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어요. 재철이와 아버님이 결정해주시면 바로 내일 다른 학교로 옮겨 등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 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거죠. 어떠실까요?”
재철이 아버지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면서 내 손을 움켜잡았다.
“선생님,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이 분이 오전의 수화기 속의 그분이 맞나 의아할 정도로 생각에 혼동이 왔다. 그만큼 재철이 아버지의 말과 몸짓과 행동은 간절했고 진실했던 것이다.
나는 재철이의 자퇴서를 쓰도록 안내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학교로 재입학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진행했다.
교무실에서 허깅하며
전입학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만나, 모든 서류를 작성하고 자퇴서를 썼다. 그리고 옮겨야 할 학교의 모든 절차도 순조롭게 끝났다. 나는 재철이에게 내가 쓴 책 ‘울보선생의 울보아이들’과 격려 엽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재철이의 손을 붙잡고 또 한 번 기도했다. 재철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동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성장하기를 기도했다.
재철이는 기도를 마친 후 고개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영원한 선생님이세요. 자주 찾아뵐게요.”
나는 이내 재철이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아! 그런데~.
재철이 아버지의 눈에 생각지도 못했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재철이 아버님. 이제 자퇴서를 썼으니까 이제 아버님하고 저하고는 교사와 학부형의 관계가 아니구요. 날 잡아서 같은 남성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만나 이야기 한 번 나누시면 어떨까요?”
재철이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락주세요.”
“하하하, 네 그럼요. 그럼 우리 다시 만난다는 약속의 의미로~, 자~요.”
나는 두 팔을 벌리며 허깅하는 동작을 취했다. 생각지도 못한 허깅의 표현에 재철이 아버님은 약간 당황스러워 하는 듯 했지만, 이내 내 품으로 다가왔다. 덩치가 나보다 더 커서 완전히 안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10살 이상 차이나는 재철이 아버지가 동생같은 생각이 들었고, 도한 남성으로 살면서 본인 스스로도 아픔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로와 격려를 더하고 싶었던 것이다.
눈물이 가득해요
재철이 아버지와 나는 한동안 교무실에서 허깅을 하며 서 있었다. 이 진풍경을 교무실에 게신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놀란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허깅을 했던 두 팔을 풀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재철이 이제 교회 나가기 시작했는데, 가겠다고 하면 교회로 보내주셔요.”
“네, 선생님.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꼭 교회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는 재철이 아버지의 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재철이와 재철이 아버지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가정이 되기를또한 제가 이 가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잘 전하고, 인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지금 교무실에서 글을 읽는데 눈물 나올뻔 했습니다.
재철이와 재철이 아버님 모두 상처가 치유되고 주안에서 진정한 회복하시길 기도하며
울보선생님 역시 최고십니다.^^
이런 글을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더 사랑하는 교사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