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Frank Sinatra y 아들과 맹인 남편을 백악관으로 보낸 자랑스러운 한국 여인

[조운엽(부에노)]

맹인으로 미국 최고 공무원 직에 오른 강영우 박사

아들과 맹인 남편을 백악관으로 보낸 자랑스러운 한국 여인

최고 엘리트였던 내가 앞 못 보는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다니...

이제 우리 부부는 인생 육십을 넘겼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의 인생을 뒤바꾼 한 맹인 소년과의 만남!

그 후 자원봉사자로 1년, 누나로 5년, 약혼녀로 3년, 그리고 아내로 30년을 넘게 그의 그림자가 되어 오늘까지 살아왔다.

처음엔 고개를 젓던 사람들도 이젠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 찬사 뒤에는 우리 부부의 눈물과 고통 그리고 처절한 사연이 있었다.

맹인 중학생 강영우와의 운명적 만남.

우리의 만남은 어쩌면 숙명적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걸스카우트를 방문한 그때, 나는 대학생 신입회원으로 그를 돕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 누군가 내게, 저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맹인 중학생이 10년 후 나의 신랑이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때 그는 맹인학교 중등부 1학년 학생이었고, 나는 여대생이었다.

가난과 실명의 고통에 찌든 모습을 상상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학생은 외모만 봐서는 전혀 맹인 같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그 학생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누군가 그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라고 했을 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내가 다녀오겠다'며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 학생의 손을 덥석 잡고 광화문 사거리로 나섰다.

그때 처음으로 '숙명여대 영문과 1학년 석은옥이에요.'라며 나를 소개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의 지팡이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열네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1학년 때인 열다섯 살에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실명 때문에 충격을 받아 뇌일혈로 세상을 뜨자 고아가 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장애인 재활원으로, 여동생은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맹인인 그는 재활원을 전전하며 수년 간 방황했다.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목회자님이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를 감사하자.'는 말씀에 비로소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처음 만날 때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게 아니어서 남편은 어렴풋이나마 내 젊은 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불빛조차도 구별할 수 없는 완전 맹인이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맹인학교 기숙사에 찾아가 책도 읽어주고 안내해주는 일을 1년 정도 하다 보니 정이 들어, 그를 동생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다 싶어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당시 나는 그가 투병과 방황으로 여러 해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대학생과 중학생이라는 것만 생각해 부담 없이 그의 누나가 되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2년 정도 지나서 그의 성적표에 나와 있는 생년월일을 보고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친이 안 계신 동생이 생기니 누나로서 할 일이 정말 많았다.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면 도시락을 싸들고 따라가야 했고, 빨래부터 대학진학 준비에 이르기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해야 했지만, 동생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쁨이었다.

누나 동생으로 6년, 우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물론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당시엔 맹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맹인이 버스를 타려고 하면 차장이 밀어내기 일쑤고, 가게에서는 재수 없다며 나중에 오라고 하고, 식당에서는 구석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주위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만난 지 5년째 되던 해, 그동안 혼자만 생각해온 유학 계획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나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는지,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며 반대했다.

나는 좀 당혹스러웠지만, 차분히 그를 설득했다.

결혼을 해서도 시각장애인 교육과 재활을 천직으로 알고 계속할 텐데 더 늦기 전에 유학을 다녀와야겠다는 말에 결국 그도 동의했다.

나는 1967년 9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정이 든 그와의 이별은 큰 아픔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가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겹쳤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누나를 보내고 혼자 힘으로 다가오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과 불안이 겹쳐 이별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내가 떠난 뒤 동생 영우는 마음을 독하게 고쳐먹고 대학 입시에 전념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맹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원서 자체를 접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입학원서조차 접수할 수 없다니!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미국에서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데 4주 정도 지나서 또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영문과 교수 한 분이 대필해 주어 교육학과에 10등으로 합격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1968년 3월, 서울 맹인학교에서 최초로 대학교에 입학해 교복 대신 신사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보내주었다.

정상인들과 같이 공부하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장학생이 되었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나는 15개월 만에 귀국했다.

그동안의 이별은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누나 동생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1968년 12월 22일,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함께 연세대 백양로를 거닐던 중 영우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다.

나는 남은 생을 시각장애인 교육에 매달리려고 준비해 왔는데 그를 반려자로 맞으면 남편에게 맹인 동생을 이해해달라고 할 필요가 없으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도 영우 씨를 사랑하기에 그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래를 약속한 우리 둘은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혼식을 올렸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둔 홀어머니가 애지중지 기른 딸이 맹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절대로 안 된다!'며 반대하셨지만 결국 우리의 사랑과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친구들은 더 심했다.

어떤 친구는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쳐다보며 '관상을 보면 팔자가 그렇게 센 것 같지는 않은데 해도 너무 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학벌이 좋으면 뭐 하니? 너는 좋아서 결혼한다 해도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을 생각해봐라. 아버지가 장님인데' 하고 말렸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2년 2월 26일, 대학생이던 약혼자를 졸업하기까지 만 3년이나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이 서른이 다 되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늦은 편이었고, 내 친구들은 대부분 판사, 의사, 대기업 간부 등 통속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을 때, 나는 밥벌이도 못하는 연하의 맹인 학사를 신랑으로 맞은 것이다.

그래도 어찌나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는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아 하객들의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1. 군산여중 1학년 당시의 석은옥 씨. 2. 큰아들 진석 씨의 하버드 대학졸업식에서.

3. 아이들 여름방학을 사우스 다코타에서 보낸 네 식구. 4. 오바마 대통령과 에어포스원에서 회의 중인 둘째 진영 씨.(오른쪽 아래)

1972년 8월, 우리 부부는 큰 뜻을 품고 LA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에는 장애가 해외유학의 결격사유에 속했다.

장애인으로 한국에서 최초 정규 유학생이 될 때까지 겪은 마음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결국 피츠버그 대학교 9월 학기 개강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한미재단총재와 연세대학교 총장이 공동으로 제안한 청원서에 문교부장관이 서명함으로써 미국 유학의 가장 큰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LA에 도착해 여러 해 동안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신 양부모님을 만나 일주일을 보내고, 피츠버그에는 개강 전날 도착했다.

당시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직전까지 맹인재활센터에서 일을 했고, 첫아이를 배고 입덧이 심했다.

그러나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돕지 않으면 강의실에도 갈 수 없어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남편을 강의실에 들여보낸 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피곤해서 깜빡 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강의가 끝난지 30분 이상 지난 시간이었다.

죽어라고 강의실로 뛰어가 보니 그는 불안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하고 그를 부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디 갔다가 이제 왔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항상 잘하다가 한 번 실수했는데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싶어 섭섭한 마음에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보행 훈련을 받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혼자 강의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미루던 차에 결단의 기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행훈련을 받아도 자주 다니지 않은 곳이나 생소한 지역을 갈 때는 여전히 정상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보행훈련을 받아 나에 대한 의존도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안내해주어야 했다.

어린애를 남에게 맡긴 채 남편의 대학원 강의실을 향해 떠날 때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강의가 먼저였다.

맹인 아빠에게 젖먹이 아기를 맡기고 도서관에 자료 심부름을 갈 때면 혹시 불이라도 나면 어쩔까 불안했지만 그의 일이 우선이었다.

몸이 아플 겨를도 없이 매일 동분서주하는 고달프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후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수업료는 문제가 없었는데, 생활비로 나오던 장학금이 만료된 것이다.

닥치는 대로 막일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병원 청소원으로 겨우 취업이 되었는데 이민국에서 노동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캠퍼스 근처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한 맹인 여성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다가가서 한국에서 유학 온 맹인 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그네를 밀어주던 남자가 남편이라고 했다.

과부가 홀아비 사정을 안다고, 우리 사정을 이해할 것 같아서 초면에 우리 형편을 털어놓았다.

그 부부는 우리에게 자기 집 3층을 내어줄 테니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대신 식사 후 설거지를 해주고, 두 내외가 외출할 때 어린 두 자녀를 돌봐달라고 했다.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가족의 주거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할 것도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집에 살면서 매일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해도 행복하기만 했다.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머지않아 박사가 될 남편을 내조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기회를 주신 모든 것에 감사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외국에서 남의 집 식모살이나 하는 처지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가 오히려 나중에 좋은 집에서 살 때 보다 더 행복했었다.

우리와 처지가 같고 동년배라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문화를 배우는 계기도 되었다.

또 두 살된 진석이도 네 살, 다섯 살인 그 집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둘째 아이 진영이를 갖게 되어 더욱 감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맹인이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내외는 출세지향적이 아닌 성취지향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맹인이기 때문에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 때마다 오히려 성취감을 더 느끼며 감사할 수 있었다.

1976년 4월 25일, 남편이 드디어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당국의 배려로 박사 학위를 받을 남편을 총장 앞으로 안내하면서 느낀 보람과 행복이란...

'마음껏 사랑하고 즐긴 것은 결코 잊히지 않으며, 자신의 일부분으로 남게 된다.'는 헬렌 켈러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남편을 누구 보다 사랑했기에 그의 지팡이가 되어, 내 일을 하면서 때로는 희생을 요하는 힘겨운 내조를 할 때도 모든 일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그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정상인으로서 비록 학사복을 입었지만, 맹인인 남편이 받은 박사학위가 나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느껴져 더욱 더 행복했다.

그렇게도 고대하던 박사학위를 받고도 남편은 고국에 돌아가 대학 강단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해 무직자로 8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맹인이 어떻게 눈 뜬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논문 지도를 할 수 있겠느냐며, 어디에서도 남편을 채용하지 않았다.

무직자인 박사 남편, 아직 어린 진석이, 갓 태어난 진영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형편이었다.

장학금으로 지급되던 생활비가 졸업과 동시에 끊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만료된 유학생 비자를 다시 살리기 위해 남편이 포스트 닥터럴 프로그램에 들어갈 때의 일이다.

오도 가도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배수진을 친 남편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오히려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현재의 고난을 성공으로 바꿀 수 있으니 인내하며 좀 더 기다려봐요. 당신은 부디 아무 걱정 말고 연구에 몰두하세요."

지금도 남편은 당시 자신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그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줄 때가 가장 고마웠다고 말한다.

하루는 우리의 바람이 통했는지 남편이 면접을 다녀와서 취직이 되었다고 했다.

기적이었다.

그동안 천여 통의 편지를 보내고 여러 차례 면접을 보았지만 번번이 영주권이 없어 채용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취직뿐만 아니라 영주권도 내준다고 했다.

남편은 인디애나 주정부 교육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서둘러 인디애나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인디애나에 도착해 남편의 첫 출근과 함께 나는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30년이 흘렀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동안 무사고 운전으로 남편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근무하면서, 저녁에는 노스이스턴일리노이대 대학원에 출강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터리 클럽 회원으로 매주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운전사와 비서 역할을 해야만 했다.

어쩌다 병이라도 나서 내가 누워버리면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질 텐데, 다행히 그런 기억은 없다.

아마도 내조하는 기쁨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보람이 엔도르핀을 많이 나오게 하지 않았나 싶다.

1983년 6월 5일은 남편이 최초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날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 로터리 세계 대회에서 그가 연설을 한 것이다.

20년이 훨씬 지난 오늘도 나는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16,000여 명의 세계 민간인 지도자가 모인 단상으로 남편을 안내하는데, 연설자도 아닌 내가 극도로 긴장해 떨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수많은 군중의 시선을 볼 수 없어서 그랬는지, 그다지 긴장하지 않고 연설을 아주 잘했다.

그리고 남편은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았다.

남편이 인디애나 주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1987년 9월, 한국을 떠난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 언론은 ‘우리나라 최초 장님 박사 탄생’, '한국 최초 맹인 박사 금의환향’ 등의 제목으로 남편의 귀국을 대서특필했다.

그때 그 기사를 본 연세대학교 윤형섭 교수가 신문에 '평균점수'라는 제하의 칼럼을 썼다.

내용인즉슨, 앞 못 보는 장님이 박사가 되었다기에 확인해보니 그 뒤에는 남편의 유학 뒷바라지를 하며 석사학위를 소지한 교사인 부인의 희생적인 사랑과 내조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이는 한국 여성의 평균 점수를 크게 올려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은 450만 명에 달한다.

그중 2,500명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으며, 그중 500명은 상원 인준을 받아 이름 앞에 명예롭게 ‘Honorable’이 붙는다.

먼 이국땅에 유학 와서 사반세기 만에 남편은 ‘Honorable’이라는 경칭이 붙는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되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의 지팡이가 되어 미합중국 대통령 앞으로 그를 안내할 때 느낀 감회 역시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활짝 웃는 강영우 박사, 석은옥 교사 부부 훼미리

불쌍한 맹인 중학생을 안내한지 40년, 그 후 박사가 되어 7년 간 백악관 정책차관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섰던 자랑스러운 남편과 살면서 느끼는 감회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

이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의 강점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팀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되었다.

1972년 신혼부부로 미국 땅에 도착할 때 배안에 있던 진석이는 하버드대를 나와 안과의사의 꿈을 이루어 대학병원에 근무중이며,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를 맞았다.

작은 아들 진영이는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를 나와 약관 27세의 나이로 연방 상원의원 고문변호사를 하다가, 지금은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담당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하버드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처럼 공부하러 미국 땅에 와서 28년 간 교육자로서의 꿈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교육 인명사전과 미국 여성 명사인명 사전에 올라 역사 속에 작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지난 2003년 5월 29일, 내 생일에 아들 며느리가 한자리에 모였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축하노래를 부르려는 순간 남편이 말했다.

"아들, 며느리 네 명의 박사가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니 당신 정말 행복하겠소.”

진영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네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잖아요.”

그렇다.

한 집에 다섯 명의 박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교사를 하면서, 그의 지팡이가 되어 헌신적인 아내로, 또 두 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고 훌륭한 며느리들까지 본 어머니로 살아온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명확한 꿈과 희망으로 아이들을 인도해 훌륭하게 성장하게 만드는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링컨은 어머니의 기도와 포기하지 않은 사랑을 보면서 훗날 역경을 딛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혼이 난무하는 이 시대, 이 땅의 어머니들 모두, 사랑과 믿음으로 남편과 자녀들을 섬기고 양육할 것을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한다.

석은옥 님

[벧엘]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