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
" 이 비천한 여인은 언제 어느 때나 머리를 빡빡 깍은 수행자들을 칭찬한다. 비천한 여인이여, 지금 내가 그대의 스승의 입을 닥치게 만들 것이다."
5.
다난자니]
"바라문이여, 안됩니다. 저는 하늘사람과 사람들, 악마들과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수행승의 세계, 즉 인천계의 무리 가운데에서 세상에 존경받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을 논파할 수 있는 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대 바라문이여, 가보십시오, 가면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6. 그때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분노하여 불만족스럽게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 앉았다.
7. 한쪽으로 물러 앉아서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세존께 시로써 말했다.
바라문]
"무엇을 끊어서 편안히 잠자며 무엇을 끊어서 슬프지 않은가?
어떤 하나의 원리를 죽이는 것을 고따마여, 당신은 가상히 여기는가?"
8.
세존]
"미움을 끊어서 편안히 잠자고 미움을 끊어서 슬프지 않네.
참으로 바라문이여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이 있는 미움을 죽이는 것을
성자는 가상히 여기니 그것을 죽이면 슬프지 않기 때문이네."
9.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세존이신 고따마 앞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10.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세존의 앞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11. 존자 바라드와자는 구족계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양가의 자제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 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했다. 그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알았다.
첫댓글서로 상대방이 믿는 진리를 존중하는 사람이면 이교도라 하더라도 비교종교적인 측면에서 적대감 없이 어느 순간(언어와 논리를 벗어나는)까지는 대화가 가능함을 많이 경험한다. 적대감이 들 정도로 논쟁이 될 상대이면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하다. 닫힌 마음으로 상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과 진리의 우열을
논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존자 바라드와자 처럼 자신이 미혹했던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단지 종교가 다름을 이유로 적대감(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참회해야 할 일이며 오히려 다 같은 불성자로서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는 게 참다운 불자이리라.
부처님이 왜 중생을 연민으로 바라 보셨을까요. 서로는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눈높이가 다른 거지요. 진리의 체(體)는 같으나 상(相)과 용(用)은 분명히 다르지요. 종교라는 이름의 것들도 본질인 진리의 체는 같으나 상과 용이 다를 뿐입니다. 이 부분은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요. 언어,문자,생각으로는 바르게
표현할 수 없는 종교간 궁극의 절대처는 부처님,하나님(신) 등 무어라 이름을 붙이든 그건 이름일 뿐 이러한 차별심을 낼 수 없는 절대처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상대를 바라보면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우러나올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보견님. 또 지해를 드러냈군요. 죄송 ^^*
첫댓글 서로 상대방이 믿는 진리를 존중하는 사람이면 이교도라 하더라도 비교종교적인 측면에서 적대감 없이 어느 순간(언어와 논리를 벗어나는)까지는 대화가 가능함을 많이 경험한다. 적대감이 들 정도로 논쟁이 될 상대이면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하다. 닫힌 마음으로 상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과 진리의 우열을
논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존자 바라드와자 처럼 자신이 미혹했던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단지 종교가 다름을 이유로 적대감(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참회해야 할 일이며 오히려 다 같은 불성자로서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는 게 참다운 불자이리라.
서로에게 애잔한 마음이 종교의 출발인 듯 합니다....그런데,연민의 마음도 내가 믿는 종교에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온지요..?...()_
부처님이 왜 중생을 연민으로 바라 보셨을까요. 서로는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눈높이가 다른 거지요. 진리의 체(體)는 같으나 상(相)과 용(用)은 분명히 다르지요. 종교라는 이름의 것들도 본질인 진리의 체는 같으나 상과 용이 다를 뿐입니다. 이 부분은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요. 언어,문자,생각으로는 바르게
표현할 수 없는 종교간 궁극의 절대처는 부처님,하나님(신) 등 무어라 이름을 붙이든 그건 이름일 뿐 이러한 차별심을 낼 수 없는 절대처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상대를 바라보면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우러나올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보견님. 또 지해를 드러냈군요. 죄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