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단둥 등 12만 명 인력 초청 합의”
2012.06.22
중국이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 투먼, 훈춘에 북한 인력 12만 명을 수용하기로 지난 달 북한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내 한 대북 전문가는 중국이 이 세 지역에 한해 1단계로 IT 분야에 2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초청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12만 명까지 초청 인원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 근로자의 임금은 100달러에서 150달러 선에서 지급하기로 했고 중국이 현재 북한 근로자에게 발급하는 3개월짜리 비자의 기간을 1년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값싼 양질의 노동력이 필요한 중국과 짧은 기간에 많은 외화를 벌기 위해 인력 파견사업을 활성화하고 있는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http://news.kbs.co.kr/politics/2012/06/22/24915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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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23일
[기획보도] 북한의 해외 근로자 - 1. 해외 파견, 5년간 1만명 증가
북한 정부가 외화벌이 목적으로 해외에 파견한 근로자는 지난 4월 현재 3만-4만 명 정도로 추산됐습니다.
북한 안팎의 사정에 정통한 해외 소식통은 22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 북한이 인력을 파견한 나라가 러시아와 중동 등 40개국에 달한다며, 규모도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건설과 의료, 정보기술 (IT), 요식업, 봉제, 수산, 임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근로자를 파견하고 있으며, 연간 미화1억 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5년 전 발표한 북한의 해외진출 현황 보고서에서, 북한이 세계 45개국에 2-3만 명의 인력을 파견해 연간 4~6천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http://www.voanews.com/korean/news/korea/Special_052312-153030855.html
http://cafe.daum.net/sisa-1/dtCc/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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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규 회장 "북한 인력 2만명 중동 파견 합의"
"중동 경험 살려 국내 기업 도울 것"
07.09.29
김윤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이하 아천글로벌) 회장(전 현대아산 부회장)은 29일 북한 인력 2만명을 중동 건설사업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나 "북측과 `원칙적으로 제3국에 공동진출해 건설사업에 참여한다'는 합의를 했다"며 "일단 북한 노동력 2만명을 중동에 보내는 데 합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26678
중국에만도 12만명이라면 엄청난 숫자죠.
과거 한국이 중동, 독일 등에 노동자들을 파견했지만...
그 숫자는 생각처럼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컨데, 독일 광부로 파견된 숫자는 1년에 고작 3000명이었고
간호사 역시 3000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년간 독일에 파견한 총합계가 고작 1만 8천명 수준이었습니다.
중동 파견 건설인력 숫자에 대한 통계는 못찾겠군요.
아마 생각처럼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감안해 본다면.....북한의 중국 파견인력 숫자가 무려 12만명이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의미는....머지않아 북한경제가 매우 흥청거릴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즉, 미국의 대북경제봉쇄 정책은 완전히 파탄날 것임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남은 대북 지렛대가 사라져버린 미국....
미국은 앞으로 과연 어떤 대북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안봐도 뻔한 것이지요.
간호원 및 광부 독일파견
한국 정부는 1966년에 서독과 특별고용계약을 맺고 간호사로 3천명, 탄광광부로 3천명을 파견하였다.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원이 7,932명, 간호사가 1만226명이었다고 한다. 광부들의 노동계약은 매 3년마다 교체되었다. 이미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채용하여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야기된 것을 경험한 독일은 독일정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한국 동포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기한부 노동인력수입계약’을 한 것이다. 달리 말해서 독일은 '반정착적 정책'을 애초부터 실행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몇몇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3천명의 광부는 계약 원칙대로 3년마다 교체되었다. 즉 3년간의 노동을 마친 동포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그만한 수의 광부가 새로이 한국에서 오곤 하였다.
파독 광원과 간호사의 수입은 197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종자돈’역할을 했다. 광원과 간호사들의 파독 계약조건은 ‘3년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고 적금과 함께 한달 봉급의 일정액은 반드시 송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원은 모두 7932명이었다. 이들은 독일의 탄광에서 일을 하고 연금과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의 70~90%를 고스란히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이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한국 GNP의 2%에 이르렀다. 또한 서독 정부는 이들이 제공할 3년 치 노동력과 그에 따라 확보하게 될 노임을 담보로 1억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 정부에 제공했다.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jsession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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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817554?id=000273&page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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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인력송출과 외노자의 3D 직종| …―자유 게시판
더팬|조회 89|추천 0|2008.11.26.
63년 파독(派獨) 광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들었다. 상당수가 대학졸업자와 중퇴자들이었다. 당시 남한 인구 2400만명에 정부공식 통계에 나타난 실업자 숫자만도 250만명이 넘었다. 이런 시절이니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직장에 지원자가 밀려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루르탄광 지하 1000m와 3000m 사이 막장에서 1m 파들어갈 때마다 4~5마르크를 받았다.
66년 12월, 3년의 고용기간을 채우고 142명의 파독광부 제1진이 귀국했을 때 거의 전원이 1회 이상의 골절상 병력을 안고 있었다. 사망자도 있었고, 실명한 사람도 있었다.
간호사의 사정도 비슷했다. 66년 1월 128명이 독일로 떠날 때의 고용조건은 월 보수 440마르크(110달러)였다.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콜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서베를린에만 한국 간호사가 2000명이 넘었다. 66~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30명, 광부들은 63~78년까지 7800여명이 건너갔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인용글>
http://cafe44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5sb4&fldid=IwYk&contentval=
01FWp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nil_profile=
cafetop&nil_menu=sch_updw
63년 한국사회에서....대졸자라고 하면....어느 대학을 졸업했든
하여튼 엄청난 고학력자라고 할 수 있지요.
왜냐면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고작해서 "국졸자"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즉, 초등학교 졸업이 당시 대부분 국민들의 학력이었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에 입국해 3D 업종에 취업해 있는 외노자들 중에 대졸자들이 다수 있는 현상도
그런 측면에서 아마 이해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