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무존은 귀수대왕을 모델로 창작한 인물인데 고사기에서는 왜건명 성씨록에서는 왜건존이라고도 한다. 다께베[建部]는 다께베[武部]와 같고 일본무존의 자 稻依別王의 후손이며 와께[別]는 와께[和氣]와 같다. 다께[建/武]가 흔히 장남을 가리킨다.
대삼륜군의 경우는, 서기 신대기 상8단 이설6에 대기귀신의 행혼기혼으로 나타나 日本國의 三諸山에서 살고 싶다고 청한 大三輪神이 있는데 그 후손에 甘茂君, 大三輪君 등이 있다고 했다.
서기 숭신기 8년 12월조에는 대물주신을 제사지내는 제주를 대물주신의 아들 대전전근자로 정하고 삼륜군 등의 조라 했다. 숭신기 10년 9월조에는 대물주신의 처가 낮에는 오지 않고 밤에만 오는 대물주신의 형체가 보고 싶다고 하자 대물주신이 어느 날 작은 비단색 뱀으로 변하여 神形을 처에게 보여주는데 용·뱀·거북은 가야계의 상징이므로 대물주신은 가야계이며 대삼륜신이기도 하다.
서기 수인기 3년 3월조 이설에 신라왕자 천일창이 하리마국 육속읍에 있을 때 천황이 三輪君의 조 大友主와 倭直의 조 張尾市를 파견했다고 되어 있다. 왜직의 조는 진언이고 오호도모[大友]는 오호도모[大伴]와 같아 역시 가야계다.
서기 중애기 9년 2월조에 중애가 갑자기 붕할 때 등장하는 인물에 大三輪大友主君이 있는데 수인기의 大友主와 동일인물이다. 그런데 대전전근자를 신찬성씨록 인명색인으로 찾아보면 역시 가야계지만 아라사등의 삼자 진언계로 나타난다.
가모[賀茂]는 가모[甘茂/鴨]과 같은데 가모[賀茂/鴨]씨 중에는 산성국천신으로 분류된 무내계 가모.노.아가다누시[賀茂縣主/鴨縣主]만을 제외한 나머지 성이 전부 '地祇'로 분류된 가야의 진언계다. 진언은 서기 신무전기에 진언이 등장할 때 자신을 國神으로 소개하고 있고 성씨록에는 神 중에 격이 가장 낮은 '地祇'로 분류되어 있다.
綾君은 일본무존의 자 讚岐綾君의 후손인데 계보를 알기 어렵다. 波彌臣은 波美臣이라고도 하는데 무내의 아들 波多八代宿니를 조로 한다. 스꾸네[足尼]는 스꾸네[宿니]와 같다.
진련은 궁월군의 후손이고 서련은 왕인의 후손인데 둘 다 귀수대왕을 모델로 창작한 인물이므로 백제계인데 아스까시대 이후 백제가 망할 때까지 대장, 제장, 내장을 관리하는 藏官을 전부 漢氏, 秦氏, 文氏 등이 독점하였다 하였고 삼장은 백제의 왕서열제도를 분식한 것이므로 무령왕 이후 백제왕권과 열도왕권을 독점한 것은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왕의 직계손들이었다. 書氏는 文氏와 같은 성이므로 진련, 서련은 침류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漢氏란 倭漢直=東漢直=漢直을 가리키고 아지사주(=아신왕)가 그 조다.
○ 連
천무기 9년 정월조에 忌部首首에게 連 성을 주었다.
동 10년 정월조에 草香部吉士大形에게 難波連의 성을 주었다.
동 10년 4월조에 錦織造小分, 田井直吉摩呂, 次田倉人심足, 石勝, 川內直縣, 忍海造鏡, 荒田, 能麻呂, 大박造百枝, 足배, 倭直龍麻呂, 門部直大島, 六人造老, 山背박烏賊麻呂 등 14인에게 連 성을 주었다.
동 10년 12월조에 舍人造糠蟲, 書直智德에게 連 성을 주었다.
동 11년 5월조에 倭漢直들에게 連 성을 주었다.
동 12년 9월조에 倭直, 栗외首, 水取造, 矢田部造, 藤原部造, 刑部造, 福草部造, 凡河內直, 川內漢直, 物部首, 山背直, 葛城直, 殿服部造, 門部直, 錦織造, 만造, 鳥取造, 來目舍人造, 회외舍人造, 大박造, 秦造, 川瀨舍人造, 倭馬飼造, 川內馬飼造, 黃文造, 석集造, 勾거作造, 石上部造, 財日奉造, 泥部造, 穴穗部造, 白髮部造, 忍海造, 羽束造, 文首, 小泊瀨造, 百濟造, 語造 등 38씨에 連 성을 내렸다.
동 12년 10월조에 三宅吉士, 草壁吉士, 伯耆造, 船史, 壹伎史, 娑羅羅馬飼造, 兎野馬飼造, 吉野首, 紀酒人直, 采女造, 阿直史, 高市縣主, 磯城縣主, 鏡作造 등 14씨에 連 성을 내렸다.
동 13년 정월조에 三野縣主, 內藏衣縫造 등에 連 성을 내렸다.
천무기 朱鳥 원년(15년) 6월조에 槻本村主勝麻呂에 連 성을 내렸다.
특이하게도 귀수대왕의 삼자 진사왕의 후손들은 連의 성을 겨우 받았다는 것이다. 정통왕위계승자인 이복형 침류왕을 공격하여 자결을 강요하고 사후에 시신을 팔단을 내고 왕위에 올랐다가 조카 아신에게 패하여 8년 후에 전사하고 그 후손들이 열도로 대거 망명한 것이 숭준전기에 기술되어 있고 다른 기록에도 그 후손들이 수두룩 보이지만 침류왕의 아들 아신의 직계손인 무령왕이 집권한 이후 아스까시대가 열리면서 백제가 망할 때까지는 침류왕의 후손들이 열도의 후왕을 독점하였으므로 빛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川內直은 河內直과 같고 선사의 조는 서기 민달기의 王辰爾인데 진사왕을 분식한 인물이다. 혈수부는 안강천황의 후손인데 안강은 진사왕을 천황으로 꾸며 등재한 인물이다.
'박(개시랑 변+ 白)'은 고구려를 가리키는데 '박'자가 붙은 성씨는 고구려출신일 가능성도 있으나 가야나 백제도 본기나 성씨록에서 고구려로 분식한 경우가 있어 단정하긴 어렵다.
忌寸 성과 連의 성 사이에 道師와 臣 성이 있으나 서기에 특별히 성을 주었다는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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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위와 같이 眞人, 朝臣, 宿니, 忌寸, 連 등의 성을 받은 열도 지배층의 출신성분을 분류해 보면 대략 가야계가 최소 1/3 정도고 나머지가 백제계로 구성되어 있다. 겉보기로는 전부 일본인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인이 아니고 전부 韓人들인 것이다. 열도 지배층의 두 축은 가야왕족과 백제왕족이며 그들 외에는 아무리 눈을 닦고 보아도 안 보인다. 그런데 위의 결과는 형식과 예우에 치우친 것이고 실질적으로 七末八初의 열도를 좌지우지한 실세호족들은 지통기에 별도로 기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