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런데 그때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의 많은 제자들이 땔감을 가지러
총림으로 찾아왔다.
3.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서 그 총림에서 결과부좌를 한 채 몸을 곧게 세우고
주의를 기울여 마음을 새기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4. 돌아가서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제자들]"아무쪼록 스승께서는 한 수행자가 총림에서 결가부좌를 한 채
몸을 곧게 세우고 주의를 기울여 마음을 새기고 앉아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5. 그래서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그 젊은 제자들과 함께 총림으로 찾아왔다.
그는 세존께서 총림에서 결과부좌를 한 채 몸을 곧게 세우고 주의를 기울여
마음을 새기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시로서 여쭈었다.
[바라문] "깊숙해서 많은 위험이 도사린
텅빈 숲 속에 홀로 들어
동요하지 않고 확고하고 아릅답고
단정하게 수행자여,명상에 들었네.
노래도 없고 음악도 없는 곳에
홀로 숲 속에서 사는구나,현자여,
홀로 기꺼이 숲 속에 살다니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네.
생각하건데 나는 위없는 세 하늘의
세계의 주재자와 하나가 되길 원하는데
왜 그대여 홀로 숲 속에서 지내길 원하는가?
여기서 절대자가 되려고 고행을 닦는가?"
6. [세존]"소원이나 기쁨이 무엇이든
여러가지 대상에 범부가 항상 집착하듯
무지의 뿌리에서 생겨나 갈망하는 것
모든 것은 나에게 뿌리째 제거되었네.
소망도 없고 집착도 없이
모든 존재에게 청정한 시선을 보내니
위없는 행복의 올바를 깨달음에 이르리라.
바라문이여,나는 홀로 두려움 없이 명상하네."
7.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바라드와자 가문의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존자 고따마여,훌륭하십니다.존자 고따마여,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 서는
이와 같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제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
두려움 없이 가는길....무릇 종교는 항상 인간에게 겁을 주곤 한다.
세존이 얘기 하고 싶은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모든것의 그 원인을 알아
집착도 갈망도 없어지는 그 청정한 마음......
그것은 신을 갈구하는 인간의 마음에 새로운 불씨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이미 자신이 느끼고 알았으니 두려움은 없었으리라....거기에서 당당함이 나왔으리라...적어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의 눈에는....
우리는 늘 절대자를 갈구하고 보살펴 주기를 원하고 기대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두려움 없이 가는길을 아셨다.
신을 거세한것인지,신을 비껴가는 법을 아신 것이지,신을 초월하는 법을 아신 것인지.........
그러나 세존께서는 두려움이 없다 하셨다.
인간에게는 늘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아마도 고 김선일님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예수도 아버지께 가는길이니 두려움이 없다고 하셨다.
부처는 자신이 깨달은바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었고,
예수는 아버지 하느님이 계셔서 두려움이 없었다.
인간이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로 두려움이 없는 청정한 시선을 갖게 되는것과
아버지를 의지하는 두려움이 없는 차이는 무엇일까....
이 안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의문이 존재할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다보면 협력해서 되는 것이 있지만 철저하게 혼자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들어 자신과의 싸움,갈등에서 벗어 나는것,나를 이해 하는것,타인을 이해 하는것 등등....
어찌보면 고립 되어진 자신만에 생각속에 빠져 있는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외부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하여도 그 내부로부터 철저히 자신과의 한판 승부가 있지 않는이상은 절대로 자기의 생각을 고착 시킬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만의 시간과 자신의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세존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홀로 수행하여 그 이치를 깨달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범아일여. 범천(창조신)과 나의 합일을 추구하는 브라만교. 법성무아 일체유심의 불교.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침 이전에 인도는 이미 하늘의 지배를 받아 카스트의 불평등이 당연시 되던 땅이었고 불교가 약해진 지금도 여전히 불평등한 땅으로 남아 있지요. 창조주가 있어 절대권능으로 이 세계를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과 실체적 자신(아트만)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교가 흡사 신과의 합일은 아닐지라도 신과의 관계 속에 보호받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비슷하다면 이건 너무나 재미있는 점이지요. 불교는 바로 절대권능의 존재(신)를 부정하며 출발하는 점에서 혁신적입니다. 절대신의 존재에 대한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신(하느님,예수,등)과의 합일. 신에게 의지하여, 신을 통해서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천국을 가며 지옥행을 면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과 합일되지 않는다면, 의지하던 신을 놓아버린다면, 내가 신을 찾지 않는다면.. 어떠한 구원도 용서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불성이다 라고 하는 이 한마디는 누구도 깨트릴수 없으며 빼앗아 가지도 못하며 불생불멸하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오묘한 진리입니까... 그러니 부자던, 가난한자던 배운자던 아니던, 형색이 좋은자나 아니던 모두가 같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마음이 이상이라면 몸은 현실일수 있다..그런 가정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마음만닦고 의식만 확장시킴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이르를수 있을까 ..마음은 순식간에 태양계 은하우주를 넘나들어도 몸은 문밖을 나서는데도 한참인데..깨닫는다는것.보통마음으로도 않되지만 웬만한 육신의건강으로도..
첫댓글 범아일여. 범천(창조신)과 나의 합일을 추구하는 브라만교. 법성무아 일체유심의 불교.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침 이전에 인도는 이미 하늘의 지배를 받아 카스트의 불평등이 당연시 되던 땅이었고 불교가 약해진 지금도 여전히 불평등한 땅으로 남아 있지요. 창조주가 있어 절대권능으로 이 세계를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과 실체적 자신(아트만)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교가 흡사 신과의 합일은 아닐지라도 신과의 관계 속에 보호받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비슷하다면 이건 너무나 재미있는 점이지요. 불교는 바로 절대권능의 존재(신)를 부정하며 출발하는 점에서 혁신적입니다. 절대신의 존재에 대한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맹신 내지 광신이 되어 버림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지각대상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불교(법)야말로 바른 견해에 기초한 믿음이라 하겠습니다. 다불님들께 차 한 잔 올립니다.
신(하느님,예수,등)과의 합일. 신에게 의지하여, 신을 통해서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천국을 가며 지옥행을 면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과 합일되지 않는다면, 의지하던 신을 놓아버린다면, 내가 신을 찾지 않는다면.. 어떠한 구원도 용서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불성이다 라고 하는 이 한마디는 누구도 깨트릴수 없으며 빼앗아 가지도 못하며 불생불멸하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오묘한 진리입니까... 그러니 부자던, 가난한자던 배운자던 아니던, 형색이 좋은자나 아니던 모두가 같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자신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 스스로가 내팽개치지 않는 삶... 당당함 , 외부힘의 작용이 아닌 스스로 바른 견해와 바른행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됩니다.
위험이 도사린 숲속에 홀로들어 동요치않고 확고하고 아름답고 단정하게 명상에 들었네..부처는 마음만이 아닌 건강하고 유연한 육신을 가졌었다..마음을담은 그릇인 몸이 건강치 않고서야..(일체유심.그말은 필시 어떠한 한계를 갖고있을수밖에 없을듯한데..)
결가부좌를 하였으되 부처의 혈관은 어느한곳 막힘이없어 다리어느곳도 고통스럽거나 저려오지 않았기에 선정에 들어서도. 그이후에도 육신의 어느한곳이라도 고통 있었을까..그러함으로 그모습마져 단정하면서도 확고한 아름다움에 이르르지 않았을까..
마음이 이상이라면 몸은 현실일수 있다..그런 가정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마음만닦고 의식만 확장시킴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이르를수 있을까 ..마음은 순식간에 태양계 은하우주를 넘나들어도 몸은 문밖을 나서는데도 한참인데..깨닫는다는것.보통마음으로도 않되지만 웬만한 육신의건강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