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모든 해석의 참된 표준이 되십니다.
창세기1-3장의 역사성에 대한 해석도 그렇고 요나서의 역사성에 대해서도 그렇고
바로 여기 창세기6장 노아홍수때의 상황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이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를 비교하셨습니다.
누가복음17장26-27절에서 그러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노아의 이 때와 함께 롯의 때,곧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때를 또한 동시에 비교하고 있는데, 이 표현들을 비교하면 아주 인상적인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28-29절,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금에서 나가던 날에....멸하였느니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노아의 홍수직전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이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전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입니다.
여기서 노아홍수직전의 상황과 소돔고모라의 멸망직전을 비교하면서 특이한 것은, "먹고 마시고"는 공통적인데,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에서는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라는 부분이 특징적이고, 노아홍수직전은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는 표현이 특징적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노아 홍수 직전의 상황의 특징이 "장가들고 시집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은 것을 기록한 창세기6장1-4절을 염두에 두셨음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문제는 누가 "장가가고 시집갔"다고 예수님께서 보시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여는 열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다시 본문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이 말 뒤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바로 이 말입니다.
" 사람들이.....장가들고 시집 가더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홍수직전의 상황을,
"천사들이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이야 말로, 창세기6장1-4절을 해석하는 안내자여야 하고 좌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주님으로 믿고, 참으로 구주로 믿고, 참으로 인생의 안내자 참된 지도자로 믿는다면 말입니다.
"사람들이....장가들고 시집가더니"
창세기6장1-4절을 해석하면서
왜 이 예수님의 말씀을 간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함께 숙고했으면 좋겠습니다.
홀리죠이.
첫댓글 노아 홍수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다르게 해석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어떤 논리인지 궁금합니다.
창세기 6장에 대해... 하도 궁금해 하니...홀리죠이님께 성령님이 영감을 주셨나 봐요^^
이럴 때는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하지 않고 "조명"(illumination)이라고 합니다. 날마다 주의 성령이 저의 영혼과 지성과 마음을 비춰(illuminate)주시길 소원합니다. ^^
결정적이고도 분명한 지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수 주석하시기를 사람들이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하셧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창6장의 결혼문제를 천사와 사람간의 결혼으로 주장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헬라어본문으로 보면 27절에서 실제로 <사람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쓰로포이>이라는 말은 없지만, 27절의 문맥상 분명히 장가가고 시집가는 자들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죠 ^^
(1)지금 위의 성경구절에서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 자체가 죄/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2) 설사 위 구절의 시집/장가가 죄/타락의 구절이라 하더라도, 타락천사가 육신을 입은 경우와 그 자손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결혼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하나도 위반됨이 없습니다.
좋은 말씀을 찾으셨습니다.^^ 아주 예리한 지적같습니다. 이것은 천사설 견해가 사람에게만 심판을 내린것을 쉽게 설명하지 못한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결론이 난다면 난해구절이라고 하기가 무색할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직 결정적이지는 않습니다 . 좀더 숙고하시기를 바랍니다.
(1)먹고 (2)마시고 (3)장가들고 (4)시집가고 (5)사고 (6)팔고 (7)심고 (8)집을짓고 의 8가지가 모두 동등한 수준으로 언급되고 있음을 다시한번 주의해서 읽어보신다면, 위와같은 이상한 해석은 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발가락이 닮았다>가 생각납니다.
선입견 없는 눈으로 저 구절들을 감상하신다면, 종말의 경고가 내려져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일상사에만 관심을 가진 당시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죄악됨을 말씀하는 구절입니다. (1)먹고 (2) 마시고 (5) 사고 (6) 팔고 (7) 심고 (8) 집짓고의 6가지가 모두 타락이나 죄와는 관계 없는 일상사임을 고려하신다면, (3)시집가고 (4)장가가고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간파하실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7)심고 (8)집을 지어 하나님의 분노를 산 것이 아닙니다./인간에게 일하고 결혼하라고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구원의 길은 외면하고 그것만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반론을 펴시려면 문장의 핵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윗 글에서 홀리죠이 형제님이 강조한 점은 <장가가고 시집간다>가 아니라, <천사설>이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노아시대의 <타락한 천사들의 일상사>가 아니라, <타락한 인간들의 일상사>를 지적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말씀 속에 천사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입니다^^
위의 예수님 말씀에 다른 설도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반론을 펴시려면 문장의 핵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셔야 합니다. 위의 일상사 자체가 타락이 아님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결혼을 문제삼는 구절이 아닙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결혼이나 하고 있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지요.
아래에 간단한 댓글도 달았지만, 제가 새롭게 빛비춤이 있는 것은 성경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이부분에 대해 함께 숙고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어쩌면, 위의 말씀이 역설적으로 천사설을 더욱 지지해줄수도 있습니다. 좀더 정리가 되면 글로 올리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로 형제님. 성경은 <천사를 위한 책>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천사설>에 그토록 집착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창 6장은 분명히 <사람의 사악함>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성경이 <사람을 위한 책>이라면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기를 사모합니다.
천사는 성경 어디서도 주인공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천사와 사탄은 성경에서는 조연일 뿐 늘상 주인공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입니다. <천사설>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것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건강한 마음 같지는 않습니다. 제 마음이 전달되기를 사모합니다 ^^*
형제님..<과도하게 집착>으로 보여지는가 보군요. 저도 집착인가에 대해서 더욱 점검해 보겠습니다. 허지만, 더불어 이 토론이 빚진자님에게도 <집착>으로 보여지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이 부분만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부분>만을 보시면 집착으로 보이시겠지만, 저는 이 <창,부분>이 많은 중요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그렇습니다. 일종의 균형점이 어디인가 입니다. 저의 이 집착(?)이 불필요하다면 멈추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빚진자님의 토론들도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 토론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천사설,사람설의 견해에 대한 성경적논리성에 대한 것만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계속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면에 들어있는 사람냄새입니다. 무의식중에 풍기는 그무엇이 있습니다. 아직 그 무엇이 무엇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홀리조이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집착>만으로 보여지신다면, 여기서 멈추는것도 상관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입니다.
사실, 저는 천사설이든, 사람설이든 어떤 결과에 저는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막연한 출발은 천사설이라도 결론은 사람설일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들이 불태워지고, 진리의 명료성이 더욱 빛을 발하리라는 소망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할때에 천사설에 기대는 많은 불건전한 것들이 기생할수도 있고, 사람설에 기생해서 더욱 타락의 길을 갈수도 있습니다. 이 토론이 더욱 격돌되어서 함께 뛰어들어서 불태워지기를 바랍니다. 홀리조이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확실히 성경은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천사와 같은 존재에 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하다고 봅니다,,,주님이 노아의 홍수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결혼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심각하여 도저히 회복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인간 생활에서 먹고 마시고 결혼은 아주 정상적인 생활이지만 그 도가 얼마만큼이나 ,,,,하나님 조차 인내하기 힘든 상황의 결혼은 과연 어떠한 수준까지 타락 했는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혼잡한 결혼이 근친상간, 남색, 여색, 수간 심지어 논란이 되고 있는 천사들까지도 볼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유다서에 나오는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는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 구절이라 생각됩니다.
저스티스님과 하나로님의 결론을 먼저 들어보아야 겠네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는 설이 왜 타당한지... 그래야 문제 해결될 듯 합니다.
아.. 죄송.. 빚진자님이 아니고 저스티스님과 하나로님.. 수정합니다.
얘기가 어떻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군요. 지금 자료을 모으고, 토론하고 정리하고 하는 과정인데, 빚진자님께서 <집착>한다고 하셔서, 저의 생각을 표현한것인데, 결론을 먼저 들어보신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지금 토론중에 있는데, 무슨 결론을 얘기하라는 것인지요...
바로미님 지적 잘 하셨습니다. 천사들의 사람과의 성적 결합을 인정함으로 인하여 성도들의 경건생활에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사들의 성적 유혹에 조심하라는 것 외에 또 다른 유익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천사들의 성적 유혹이 지금도 육체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의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들의 육체로 변화하여서 사람들과 섹스를 한다는 견해는 반대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육체의 정욕을 자극해서 사람들끼리 거룩한 섹스를 혼잡스럽게 만든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도대체 천사들이 성적인 결합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대할때에 사람의 유익에 따라서 설을 취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은 창6:4의 말씀의 천사설,사람설의 견해에 대해서 어떤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한지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는데, 어떤것이 유익이 있느냐에 대한 결론에 따라서 설을 취한다는 방식은 극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무엇을 잘 지적하셨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지금까지의 토론이 무색하게 말씀하시는군요...
바로미님과 같은 지적이시라면 제가 조금 성급했습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그동안의 질문들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타락한 천사들과의 혼잡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부패하였다는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떠난 상태가 어느정도까지 타락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장래의 심판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취된 세상을 보여줍니다,,타락하고 범죄한 천사는 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였으며, 결국은 불못에 던져 질 것입니다,,또한 세상에 마취되어 하나님을 떠난 저주받은 사람들도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못에 던저져 심판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에게 깨어있게 하는 경고의 본입니다,, 우리는 노아처럼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설계도를 따라 높은 산에서 방주를 건조하는 데 전념하며 헌신의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로님 제 말은 이미 홀리조이님과 빚진자님은 결론적인 언급을 다 하셨고 이제는 하나로님과 저스티스님의 결론만 기다릴 뿐이라는 소리입니다.
예..제가 조금 민감했나 봅니다. 차분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