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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저는 50사단 121연대 1대대 원전중대 소속 일병 이선기 입니다. 저희 대대는 동해안 일대 경계 작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별히 제가 복무하고 있는 중대는 국가 중요 시설인 울진 원자력 발전소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원병역이행자로서 타인과 다른 특별한 군 입대 과정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제가 군대를 자원해서 입대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IQ ? 몸무게 고등학교 때 저는 뚱뚱한 걸로 유명했습니다. 저만 특별히 많이 퍼줬던 학교 급식에도 성이 차지 않아 야간 자습시간이 되면 매점에서 수시로 라면을 즐겨 먹어 친구들 사이 에서 식신(食神)으로 불렸습니다. 잡지에 나오는 멋있는 몸매들이 부러워 한때는 다이어트도 진지하게 고려해 봤지만, 그런 고민도 배가 고프면 잊었습니다. 그래서 체중감량 계획은 세워만 놓으면 항상 작심삼일로 돌아가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는 한때 숫자상으로 저의 몸무게가 IQ보다 더 클 때도 있었습니다.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어차피 학교 체육시간에서도 많이 봤던 모습이여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어떤 사유 없이 순전히 이 살 때문에, 저는 과체중으로 현역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되어버렸습니다. 결과지를 받고 한동안 기분이 묘하고 멍해졌습니다. 막연하게 군대는 나이가 차면 간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과체중 때문에 당연히 가는 군대도 못 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도 잠시, 신검 전날, 결식을 했기에 배가 고파서 그 날도 다름없이 고 칼로리 음식을 먹었습니다. 출장을 갔던 도중 저의 신검 결과를 들으신 아버지. 퇴근 길 현관문 앞에서 자장면을 한입에 먹는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아버지의 꿈은 군인이었다.'
처음이였습니다. 평소에 딱히 큰소리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였기에 저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마루에서 저를 지켜보시던 어머니, 저를 방으로 데려가 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독한 가난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고, 어린 나이부터 가장 노릇을 해서 저의 할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냉정한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심적으로 방황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밥벌이가 우선이여서, 가족들을 위한다면 궂은일도 도맡아서 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삶은 순탄치 못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도 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빨간 마후라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늠름한 군인의 모습을 선망하셨다고 합니다. 위풍당당하게 적과 싸울 수 있는 진짜 사나이의 모습, 그것은 아버지의 한결같은 희망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생계유지라는 이유로 군 면제를 받는 시절입니다. 아버지는 간절히 입대를 지원하고 싶었으나 할머니의 강한 만류와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군인의 꿈을 고이 접어두셔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감춰진 사연을 듣고 저는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제가 사는 부산 옆 진해 군항제 때 찍었던 낡은 가족사진 속 아버지. 항상 제가 본 어느 누구보다 남자다웠고, 큰 소나무처럼 언제든 기댈 수 있던 우리 아버지. 당신에게 이런 말 못할 아픔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아 온, 그러고도 무감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사연을 들은 적막한 밤.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 몸과 마음도 어느 때보다 초라해 보였습니다.
현역 입대를 약속했습니다. 제 자신과도 무조건 해낸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약속으로 저의 의지는 탄탄해져 갔습니다. 평소 다니던 학교 언덕도 귀찮아서 돌아갔던 제가 매일 아침 아버지와 같이 금정산을 등산했습니다. 아침 등산으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헬스장에도 매일매일 도장을 찍었습니다. 무리한 운동으로 정형외과를 드나들었지만 병상에서도 항상 체중감량 생각만 했습니다. 자주 먹던 야식과 기름진 음식도 단번에 끊었습니다. 칼로리 계산도 철저히 하면서 식이요법을 해왔습니다. 저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목표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1차 신검 때 130kg에 육박한 체중은 어느새 다이어트 80일 차가 되던 날, 103kg가 되었습니다.
좋은 꿈꾸고 편히 자는지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울 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력한 게 있으니깐, 잘 될 거라고 침묵으로 응원하시는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릴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긴장과 설렘을 안고 신검 받는 곳에 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결과만을 기다렸습니다. 짜릿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군인으로서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전했습니다. “고생했데이, 억수로 고생했다” 벅찬 감동에 표현이 서툴렀던 부산 사나이, 아버지께서는 연신 고생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아들이 이런 남모를 노력을 통해 자원입대를 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셨 습니다. 아버지가 품은 군인의 꿈은 저의 자원입대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변화는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저의 모습. 저는 자신감과 남자다운 패기를 가졌고, 그에 맞춰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입대날인 2012년 9월 10일, 아버지와 함께 논산 훈련소 앞에서 이제는 군 생활을 잘해내겠다는 또 다른 약속을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여러분께 신고합니다! 남들은 쉽게 가는 길, 하지만 저에겐 포기하고 뒤돌아 갈 수 있었던 그런 길을 저는 끝내 멀리 돌아서라도 갔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영웅도 위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고 저의 운명을 의지와 노력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운동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게 군대란 21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저는 군 생활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올바른 안보관, 가족과 조국의 소중함과 인내심 등 많은 것을 배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군 입대로 비롯된 저의 변화상은 저에게 모두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들도 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두려움 등을 떨쳐내고 군 복무를 통해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또한 진정으로 애국애족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저와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일 때 거침없이 나섰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입시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군 복무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과 조국에 헌신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현역 복무 지원의 출사표를 던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글을 마무리하며 저에게 용기를 북돋운 아버지 같은 조국을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상 마음만은 홀쭉한 멋진 사나이 일병 이선기였습 니다. 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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