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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사역의 우선순위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
기도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하나님과 자연스럽게 나누는 부자(父子)지간의 대화이며 응답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정상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만 한다(참고로 막7:24-30에 등장하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기도와 응답은 정상적인 기도의 응답이 아닌 특별한 예외의 은총임을 알아야 한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알고 순종하여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여야 하며, 둘째로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구체적으로 아뢰며 자녀로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무와 특권을 갖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특권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기에, 하나님의 약속일지라도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무효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우선사역 1순위는 기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역 1순위인 기도사역에 있어서, 어떤 것부터 기도해 나가야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기도내용의 우선순위 첫 번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보통의 경우에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평화와 복음전파, 교회와 이웃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먼저 해야 하고, 그 후에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개인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교회, 어느 설교자를 보아도 거의 모두가 다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가르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진짜로 그 가르침이 성경적으로도 맞는 것일까?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관한 그러한 가르침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굳게 세우며, 그 일을 위하여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하며, 그러한 전제 위에서 중보기도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1:20-23)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며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 자신을 세워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거룩한 믿음 위에 세웠다면 이제는 주변을 돌보며 가정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인류평화와 복음전파를 위하여 점차적으로 기도내용의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의 모범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기도순서는 어떠했는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먼저,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로 시작하여 제자들과 세상을 위한 기도로 점점 확장시켜 나간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5)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주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하여 가족과 우리교회, 지역사회, 나라와 민족 그리고 전 지구촌을 위한 기도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다. 그분의 책이라면 거의 다 빠지지 않고 구입해서 꼼꼼히 신중하게 읽어보는 입장이며 그분을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배웠으며 또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분만큼 성경에 정통하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 충만한 분도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어제, 며칠 전 출간된 그분의 따끈 따끈한 책,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가 있기에 기쁨과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우 당혹스러웠다. ‘아니?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케네스 해긴도 이런 설교를 하셨었네? 그분의 초창기 책을 이제 번역한 건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그분도 역시 이상에 언급된 잘못된 가르침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계시네!’ 라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성경을 잘못 이해했었나?’ 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는데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관한한 케네스 해긴목사님의 주장은 명확히 틀린 부분이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리라). 그분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를 진지하게 점검해 보기로 한다(그분의 명성까닭에 그분의 잘못된 가르침까지도 여과 없이 그대로 퍼져나가는 것은 주님께서도 원치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분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1-4).
중보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의 성경 구절에서의 “첫째로”라는 말씀입니다. 안내가 있을 때는 그 안내를 잘 따라야 일의 진행이 순조롭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보기도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안내서 역할을 하는 성경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중략).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라고 하며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먼저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 첫째 자리에 놓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덜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느라고 정말 중요한 일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삶에서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중략).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모든 삶의 우선순위 앞에 놓기 쉬운데, 이것은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할 때는 자신의 문제점을 너무 앞세워서 기도했기 때문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농부처럼 기도하곤 하지요. “주님, 저와 우리 아내, 그리고 아들 존과 며느리 부부, 그렇게 저희 가족 네 사람을 축복해 주세요. 그 이상은 신경 안 쓰셔도 관계없습니다.”
똑같은 기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도 이 농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많은 기도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말씀 서두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할 대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나라를 위해, 국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부터 우리가 사는 지역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중략).
그래서 기도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선행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1,2절)라고 말하는 이 부분을 살펴봅시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쓰던 시절에는 각 나라마다 지도자로 왕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대통령쯤에 해당되는 직위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절) 여기의 ‘모든 사람’은 국회의원이 됐든, 도지사가 됐든, 시장이 됐든 간에 나라 안의 모든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경찰까지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중략).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다면, 우리는 어떤 기도 제목을 우선순위에 두고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 자신? 우리 자녀들? 우리 손자? 우리 교회? 물론 대답은 전부 ‘아니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내 우리는 첫째로 국가의 모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Kenneth Hagin.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 정승혜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1). pp.9-18.]
우리가 국가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해야 한다는 그것은 틀림없는 성경의 가르침이고 당연히 우리가 순종하여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30-31)
이상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중보기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뜻이라도 좌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만 한다. 기도를 드리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려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사역보다 더 중요하고 기도보다 더 급한 사역은 없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사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이 디모데전서 2장 1-4절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사역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역들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역이 기도의 사역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이고,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국가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말고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등장하는 전, 후 문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므로”라는 말로 이 구절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의 앞부분과 연관되어 제시되는 구절이라는 말이다. 이 구절의 앞부분에 나오는 디모데전서 1장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에 “바른 교훈”(10절)이 아닌 “다른 교훈”(3절)이 퍼져나가고 있었고, “바른 교훈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길”(5절)을 걸어가게 하였지만, “다른 교훈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여 변론을 내게 하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고 사탄의 유희에 놀아나 음행하고 남색하며 인신매매를 하고 거짓말과 거짓맹세”(4,10,19,20절)를 하게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6장 3-21절에서는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전 6:3-21)라는 권면을 하였던 것이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의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당시에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에 자기 자신의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고 “다른 교훈”을 따라 “바른 교훈”을 거스르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하여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이 있었기에, 사도바울이 그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디모데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기 위함이었던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 제일로 급하고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점검하거니와 이 구절은 기도사역의 우선순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들도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되,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들을 위한 기도로 우리자신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굳게 세워야 하고, 성령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우리 자신의 믿음을 굳게 세운 상태에서 가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점차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며 기도해야하는 것이다(유1:20-23).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자신의 믿음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다른 교훈에 빠져 교만하며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다가 믿음에 파선하고 결국 사탄에게 돌아갔던 에베소교회의 교인들과 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아멘.
이미 밝힌 대로 나는 개인적으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무척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수많은 가르침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최근에 출간된,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의 내용 중 이상과 같은 부분만큼은 성경적으로 다시 진지하게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 이 글이 그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분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남기지 않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나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 그분만큼 훌륭한 성경교사와 설교자 그리고 영성사역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다. 가능하다면 그분의 모든 책들을 다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다만 이 글은, 그분의 가르침 중에서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관한 이상과 같은 부분만큼은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주님 안에서 거듭난 우리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서, 그것을 원하며 기도한다면 100%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시면 하늘로 승천하시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고 장래 일을 우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34)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기에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 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믿음과 반대되는 그 어떤 장애물일지라도 떠나가도록 명령할 권세가 있다는 것도 알고 누려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2-24) 아멘.
이것과 연관된 예화 두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해본다.
브라질 사오 파올로 주 내륙에 있는 깐탄두바라는 마을에 돼지와 닭을 기르며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기르고 있는 가축들이 전부 죽어가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한 마리씩 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R.R 쏘아래스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특별한 안내를 받지도 않고, 사실 특별한 안내가 필요하지도 않기에, 그는 부엌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서 손을 들고 외쳤다. “예수 이름으로, 돼지 한 마리도 닭 한 마리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그의 농장의 가축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이것은 쉽다. 이것은 당신도 할 수 있고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14:13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핵심이다.
[R.R. 쏘아래스. 복을 취하는 법.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p.28.]
마헤쉬 차브다의 사역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다.
한 어린아이를 물어뜯고, 그것을 제재하는 아버지를 물어 죽이고 있는 독일산 미친 세퍼트견을 만났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묶어라!”는 음성을 주셨고, “묶으라고요? 밧줄이 없는데 어떻게...”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개가 마헤쉬 차부다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마헤쉬 차브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너를 묶노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그 개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고 깨갱거리며 엎드린 채로 얌전히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과도한 출혈로 인해 호흡이 중지되고 사망한 상태였다.
마헤쉬 차브다는 ‘주님, 이 남자가 죽는 걸 보여주시려고 저더러 이곳까지 오게 하신 건가요? 이건 아니잖아요?’라는 생각을 하며 그 남자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호흡은 돌아올지어다!” 친구와 함께 앉아서 몇 분 동안 기도하자 갑자기 그 남자가 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마헤쉬&보니 차브다. <폭풍의 전사>. 심현석 옮김. (서울:순전한 나드, 2009) pp.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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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사용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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