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럽은 지금의 독일이니 프랑스니 영국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을 유럽인들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을 유럽인이라고 지칭하가 시작한 것도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놀랍게도 자신들을 그때까지도 로마인들이라고 불렀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자신들을 유럽군 내지 십자군이라고 지칭하지도 않았다.
끽해야 프랑크족 내지 프랑크인이라고 불렀으며 로마군이라고 지칭하는 기록도 있다.
로마는 영원했다.로마가 망한지 벌써 700년이 넘도록 그들은 자신들을 로마라고 지칭하였고 아랍인들 마저도 로마군이 성지를 침공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지금의 국경개념은 최근에 와서야 정립된 것일뿐 당시 중세에는 유럽은 전혀 력사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보면 인류사에서 소외된 세력들이 그 소외감에 일으킨 문화전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1차 십자군 성공은 정말 어떻게 저렇게 우연의 련속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정도로 행운이 따랐기에 가능했던 력사였다.
이 1차 십자군 성공 이후 예루살렘왕국의 100년은 어떻게 보면 유럽중세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살라딘 등장 이후 아랍에 의한 재점령 이후 단 한번도 유럽군들은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했다.
그만큼 유럽은 군사 경제 측면에서도 인류사의 주역이 되지 못하는 세력들이었다.
말만 로마라고 지칭하는 것을 좋아했지 거의 야만에 가까웠다.
글 해독 능력 자체가 없었던 사람들이 왕족과 귀족 기사를 이루고 있었던 유럽사회였다.
글을 알아야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데 당시 유럽은 문맹률이 거의 99%였다.
이런 유럽에 유럽인이 알지 못하는 력사를 가진 세력들이 동쪽에서 침공해 왔으니 이들이 몽골제국이었다.
망구다이 전술로 러시아를 격파하더니 헝가리 ,폴란드 ,독일 슐레지엔 체코 오스트리아 빈.알프스 이북. 일부는 프랑스 파리 외곽까지 진출하니 옛 훈족의 재침공을 연상시키는 력사가 진행되면서 유럽을 공포로 몰아 넣더니 이내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륙조선사에는 또 다시 유럽을 침공한 세력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태종의 유럽 침공이 그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k2ClNl8lM&list=PLXAJh6iIMpnHd0T8bxA_DFOQAlR2NNGOA 23분부터
이 그림은 중국황제의 서방원정도 라는 그림.
당시 중국황제는 태종 리방원 밖에 없었음.
조선 건국 자체가 몽골세력과 대륙고려 사람들간의 련합정권이었다라는 것은 이미 설파했다.
태종 리방원이 세종대왕에게 양위를 바로 하고 상황이 되서 원정 길에 올랐던 것이 이렇게 해서 설명이 되었다.
나는 태종 리방원의 행동에 대해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는 서구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빨리 자신의 아들로 내부를 정리하고 권력 구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기에 세종에게 황태자 만든 후 2달만에 양위를 하고 자신은 상황이 되었고 이때 리종무 장군과 함께 서역을 정복했던 것이다.
이 리종무장군이 그 유명한 림팩 환태평양 해군 훈련 당시 엄청난 가상 전과를 올렸다는 그 리종무함의 원 주인공이다.
태종 리방원은 태조 리성계의 아들 중 유일한 급제경력이 있었던 재원이었다.
그만큼 공부도 잘하고 머리 비상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이 태종은 력량과 배경이 엄청난 기린아였다.
그리고 자신이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제국에 일정지분도 있엇던 제후 군사 군벌이었다.
원래 몽골제국이 인구감소로 인해 군사력이 약해져서 몽골제국이 없어졌다고 주장되어지는데 이 태종은 고려군을 이끌고 다시 자신의 몽골세력군사력과 결합하여 다시 유럽을 침공하였고 유럽은 이 치욕이 력사를 지우기 위해 조선을 한반도로 옮기는 술수를 쓴것이다!
왜 조선 력사를 숨겨야 했을까?
유럽주도의 력사를 유지해야 유럽제국주의가 융성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들은 철저히 세계사를 조선중심에서 로마중심으로 왜곡시켰다.
력사왜곡이 정점이었던 시기와 유럽제국주의가 정점이었던 시기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1,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왜 그토록 프랑스 파리점령에 열을 올렸을까?
당시 세계는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랑스 식민지 열거 해볼까?
베트남 수리남(남아메리카) 서인도제도 일부, 아프리카 해안 국가의 거의 3분지 1.
프랑스 하나만 점령하면 세계의 상당수 나라가 독일의 식민지가 되는 이런 도박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1차 대전 당시 프랑스 파리를 점령하기 위해 독일은 사정거리 50km의 파리대포를 만들어 파리를 폭격했다.열차포.
드디어 2차대전 파리점령. 독일 히틀러가 독일내에서 당시 어떤 지위였는 줄 아는가?
거의 신이었다.
독일제국의 숙원 사업을 이룩하게 해준 하늘이 내려준 총통(?)이었다.
당시 제국주의의 리념은 단지 령토니 경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력사와 인종 편견등을 제국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리용을 했다.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몽골의 유럽침공은 알아도 그 후 다시 몽골(조선)의 유럽침공은 알지 못했다.
1차 몽골침입 주체는 지금 거의 한미한 세력으로 축소되었기에 내몽골 외몽골로 분단시켜서 더이상력사에 큰 힘을 발휘 하지 못해서 징키스칸을 저렇게 띄우지만 정작 2차침공 당시 진정한 세계 정복군주였던 태종 리방원의 후손들은 지금 한반도로 분단시켜 통일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두세력 중국,미국 들이 저렇게 으르렁대지만 속으로는 한통속이라는 사실이 있기에 그 력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 주체가 한반도로 옮겨와 그나마 분단시키고 전쟁일으켜서 서로 으르렁 하도록 만든게 다 우연의
결과일까?
천만에. 다 계획된 의도된 결과이다.
중국공산당의 중국 점령,김일성의 등장과 득세,한국전쟁,계속된 분단,한반도 랭전화의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