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살아나는 희망도 죽음에 절망치 않음이니, 이제 너희들이 가는 곳에는 아무런 미로(迷路)가 없느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330)
@ 박공우가 대흥리에서 증산상제님을 모시고 구릿골로 올 때, 과교리를 지나다가 문득 울음이 나오며 동학으로 다년간 고생하던 일이 생각키워 더욱 서럽게 울어지는지라. 상제님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무슨 일로 그다지 우느냐." 공우 목메인 소리로 대하여 가로대 "어쩐 일인지 부지중에 울게 되고, 전날 고생하던 일이 낱낱이 생각키워 능히 그치지 못하나이다." 가라사대 "잘되게 하여 주리니, 그만 그치라." 하시니 울음이 곧 그쳐지더라. (대순전경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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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한순간도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을 때도 있지만 하루종일 피곤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도 눈길 한번 주기 싫을 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음을 짓는 때도 있습니다. 손발을 가볍게 무겁게 움직이는 것도 내 마음에서 나오고 웃음을 짓고 거둬들이는 것도 내 마음에서 나옵니다.
내 마음에 희망과 기쁨이 가득차면 온 세상이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차 보입니다. 상극의 끝은 독기와 살기가 만들어낸 슬픔과 절망이지만 상생의 끝은 생기와 화기가 만들어낸 기쁨과 희망입니다. 상생의 길은, 천지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나의 마음을 열어 절망과 슬픔의 사람을 희망의 기쁨의 사람으로 재생신시키는 것입니다.[]
첫댓글 생명에 대한 위협과 비관적인 전망으로 절망합니다.
상극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하여 생명을 억압하고 해하는 것으로 증심에서 일탈된 마음 입니다.
상생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상생의 실천은 고달프나 편안하고 떳떳하여 희망을 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