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에 흩어진 고려불화 귀향잔치 |
국립중앙박물관서 ‘700년만의 해후’ 사찰·수장가 2년간 설득 전시 센소사 소장 수월관음도 ‘백미’ 서하·고려 불화 비교하는 맛도 |
100여년 전 실크로드의 서하 불화
1909년 러시아 고고학자 코즐로프의 탐험대는 중국 변방 고비사막 실크로드에서 뜻밖의 그림들을 발견한다. 12~13세기 송나라와 맞섰던 티베트계 서하 왕국의 도읍 하라호토의 폐허에서 찾아낸 푸른빛 불화들이었다. 불화들의 정체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아미타불과 세지·관음보살이 손을 내밀어 저승에 오는 망자를 따뜻하게 맞는 내영도, 바위 위에 앉은 관음상이 선재동자와 문답하는 수월관음도로 밝혀졌다. 당시 탐험대는 중국 불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생각했고, 누구도 이 그림이 70여년 뒤 재발견된 고려 불화와 불가사의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32년 전 이웃나라에서 부활한 고려불화
1978년 일본 나라현 야마토분카칸 전시관에서 사상 처음 고려 불화 50여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이 열렸다. 자국내 소장처를 수소문한 일본 연구자들이 꾸린 이 전시는 고려 불화를 단박에 세계적인 미술사 명품으로 부각시켰다. 금물, 원색의 신비스런 색감과 정교한 필선으로 이름높은 고려 불화는 그때까지 미술사학자 고유섭과 일본 학자들이 소개한 단편적인 글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특히 전시 이후 실크로드와의 인연으로 주목받은 것이 저 유명한 수월관음도와 아미타내영도다. 코즐로프가 실크로드에서 발견한 서하의 푸른빛 불화와 색감은 달랐지만, 구름 위 부처가 망자를 반겨 맞거나 바위에 앉은 관음의 자태는 빼닮은 듯 비슷했다. 학계에서는 고려 불화가 중국을 거쳐온 서하의 불화를 모티브 삼아 금니(금물)와 원색의 색채, 화면 가득 촘촘한 무늬를 넣는 특유의 독창적 양식을 발전시켰다는 설이 유력해졌다. 이런 내력에다, 부처, 보살상의 옷과 몸에서 드러나는 품위 어린 원색과 다른 중·일 불화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정교한 동식물 무늬들이 들어찬 고려 불화의 화엄세계 앞에서 학자들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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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두 도판은 아미타삼존 내영도. 왼쪽이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서하 불화이며 오른쪽이 리움에 소장된 고려 불화다. 화면 왼쪽 아래 작은 망자에게 아미타 삼존이 빛줄기를 내리거나 몸을 굽히거나 손을 내밀어 맞는 구도는 두 지역 불화에만 보이는 특징이다.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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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만에 고향에서 만나다
지난 12일부터 시작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은 딸림 제목처럼 ‘700년 만의 해후’다. 약탈되거나 유출돼 이역 땅에 흩어졌던 고려 불화들의 인연들을 집대성한 귀향 잔치다. 실크로드와 일본에서 인연의 실타래를 푼 국내외 고려 불화들이 처음 고향에서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현재 일본에 130여점, 미국·유럽·국내에 30여점밖에 없는 작품들의 40%인 61점이 내걸렸다. 2년 전부터 일본 등의 소장 사찰과 수장가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박물관 기획자들의 열정 덕분에 이 전시는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고려 불화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고려 불화의 소재로 가장 사랑받았던 아미타부처와 지장보살 그림들이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한 서하의 아미타 불화 3점과 고려 아미타 불화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서하 불화를 빼닮은 명품인 리움 소장 아미타삼존 내영도를 견주어 감상할 수 있다.
‘붉은 부처’로 불리는 일본 쇼보사 소장 아미타불과 화려하고 정교한 무늬로 가득 찬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지장보살도, 처음 모인 시왕도, 나한도 그림들 또한 스쳐갈 수 없는 눈대목이다. 문양과 색감, 구도에서 차이가 뚜렷한 중·일 불화와 문정왕후가 발원한 400탱 불화 같은 조선초 불화를 보여주면서 전시는 끝난다. 11월21일까지. (02)2077-9000.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