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무생사제(無生四諦)무생사제(無生四諦)라,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경계에서 말한 사제란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불생불멸의
경계에 선다고 생각하면 새삼스럽게 닦네 안닦네 또는
선이네 악이네 그와 같이 구분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원래(元來) 안 낳아버리는 불생(不生),
생사를 떠나버린 경계에서 그
무슨 닦네 안닦네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제법문은 생멸사제
보통차원에서 할 때에 닦음이 있고 무엇이 있고 하는 것이지
불생불멸의 경계에 선다고 하면 그런 것이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고집멸도(苦集滅道)라,
고집멸도 이것도 역시 고집(苦集), 고는 내내야 인생고 아닙니까.
집은 인생고의 원인이고, 도는 인생고를 떠나기 위한
한 가지 열반에 이르기 위한 한 방법이고,..
헌데 불생불멸의 경계에 서면 고집멸도가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고집멸도 당체(當體)가 바로 공(空)이란 말입니다.
또한 동시에 멸도 역시, 멸은 본래 공이라 새삼스럽게
공이란 말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고집도(苦集道)도 바로 공이요, 멸도 공이니까
그때는 다 공이 되어서 이와 같이 다 공이지만 또 역시
현상적인 의미에서는
당연히 고(苦)가 있고 낙(樂)이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무생사제(無生四諦)는
우리가 사제법문을 닦는다 하더라도 그냥 빡빡하니
고(苦)가 분명히 다 있고, 고의 원인은 무엇이고,
집(集)이고 한다는 그런 헤아림을 떠나서
우리가 수행을 한다 하더라도 그냥 제법공이다.
당체공이다. 공을 느끼고서 자유스런
마음에서 닦는단 말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공을 알 때와 공을 모를 때와는
우리 수행이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공을 모를 때는 그냥 그 빡빡하고 또 무슨 파계(破戒)라도
좀 해 놓으면 그 때문에 고가 되어서 말입니다.
짐이 되어서 말입니다.
인생 살기가 이따금 싫을 때가 있는 것이고,
자결도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공을 안다면 절대로 자살을 못하는 것입니다.
당체가 즉공(卽空)이라,
인생고 모두가 바로 공이고,
또 인생고를 일으킨 집(集) 즉 탐진치(貪嗔痴) 3독심이나
삼독심(三毒心)에서 우러나온 선악의 행위가 모두가
다 당체 공인지라, 사실은 우리가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허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공은 공이로되
현상계에서는 분명히 나가 있고 네가 있으니까.
선악도 현상의 차원에서는 있는 것입니다.
상대유한에서는 선악이 있는 것이니까.
그 때는 닦기는 애쓰고 닦는 단 말입니다.
최선을 다 하고 닦되 아까 말마따나 우리가 그 때는
집착(執着)이 없단 말입니다. 이것이 생멸사제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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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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