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인용하면서 제게 적용하는 글입니다.
삶이 어려울때 세상을 향한 눈을 잠시 감고 하나님를 향한 눈을 뜨자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므로...)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약시대의 지도자들 (아브라함, 야곱)은 물질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재물의 축복, 번성의 축복을 말씀하셨는데
신약시대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세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이 어렵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충성함으로 물질적인 축복과 내가 원하는 성공이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복이 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에게 오지 않는 것일까? 세상적인 복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가치 있는 복이 아니기 때문이라지요. 복의 축에 들지도 못하니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지요.
구약/신약시대의 복에대한 개념이 달라졌대요.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왔고,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구약시대와 같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찾아야 할 복의 개념은 의, 평강, 희락 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무엇인가?
1.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우리를 구원하신 복, 죄를 씻어주신 복,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은 복)
2. 자족하는 복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 특히 시간과 기회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해지는 복) -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아는 복
3. 수고의 댓가를 주시는 복
자족이란 소극적으로 산다는 것은 아니지요. 물질이나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하지만, 그것을 얻어서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할것 같아요. 나에게 주시는 복, 어려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므로 왜 그것이 나에게 왔는지를 알고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미있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얼마전 평생 임기를 보장받은 대학의 교수직을 뒤로하고 캄보디아로 (평생) 의료봉사를 하기위해 떠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부가 같은 뜻으로 흔쾌히 갔다고 하는군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열심히 찾던 저는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첫댓글 정말로 귀한 적용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지금 우리는 그 나라를 누리야 되지 않을 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에 대하여 숙고하시는 집사님의 글은, 기대하던, 한국에서 들려 오는 기쁜 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인이 고백한 곳처럼 죄의 가리우심을 받은 우리는 정말 복받은 자들입니다. 바라기는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기를...
예... 집사님... 신약의 복의 개념을 잘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우리도 바뀌어야 겠지요? ^^
저는 평소에 시편 1편을 읽으면서 "복"이란 개념을 재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기복 특성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심한데, "복"을 너무 물질적인 코드로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저도 잘 모르지만 함 적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