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0년 올해의 좋은 시 1000 730
한밤의 블랙러시안
강인한
내 시력에서 너의 안부가 빠져 나간다
점점 멀어지다가
네 어떠한 표정도 다 지워지고
희미한 기억으로 너는 존재한다
한밤의 블랙러시안
갈색 차가운 소용돌이 속으로
미치고 싶은 내 혈액이 달려간다, 사랑아
허리까지 빠지는 폭설에 막혀
우편마차의 방울소리는
흰눈이 내리는 자작나무 숲을 돌아
까마득히 사라져 가버렸다
눈감고 듣는 먼 바람소리
내 귓가에 환하게 들려오는 밤의 갈피 갈피
늑대 울음은 나의 것이다
피 묻은 늑대 울음은 나의 것이다
한밤의 블랙러시안
집을 뛰쳐나와 비틀비틀 걸어가는
사랑아 네 모습이 유리컵에 어른거린다
유리에 내 더운 입술이 닿는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0년 봄호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대운동회의 만세소리〉가 당선되어 등단. 1966년 첫시집『이상기후』를 펴낸 이후, 『불꽃』(1974),『전라도 시인』(1982),『우리나라 날씨』(1986), 『칼레의 시민들』(1992),『황홀한 물살』(1999),『푸른 심연』(2005),『입술』(2009) 등의 시집과 시선집 『어린 신에게』(1998) 그리고 시비평집『시를 찾는 그대에게』(2002)가 있음.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