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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黃山)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남부에 있는 1,860m의 연화봉(蓮花峰)을 위시한 갖가지 형상의 72봉을 거느리고 있는 암봉군으로,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찬탄과 찬미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황산의 절경은 대시인 이백 등에 의해 칭송되었으며, 명나라 때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은 30년에 걸쳐 중국 천하를 두루 여행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 즉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상(嵩山)의 오악을 보고 온 사람은 평범한 산은 눈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황산을 보고 돌아온 사람은 그 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 ▲ 수백 길 벼랑 중간을 가로질러낸 서해대협곡 탐승로. 설계에 12년, 시공에 9년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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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登黃山天下无山 觀止矣(등황산천하무산 관지의)’, 즉 ’황산에 오르고 보니 천하에 볼 만한 산이 더는 없구나’라고 했으니, 오늘 황산을 찾은 이 호산아(好山兒·필자의 호)의 가슴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부터 유명한 시인, 화가, 여행객들이 이 산을 그토록 칭송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흔히들 황산의 삼기(三奇)라고 하면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를 든다. 거기에 온천을 추가하여 사절(四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기암절벽과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소나무들이 가관이고, 그 절경 사이로 깔리는, 어느 별천지 선경에나 있을 법한 구름의 바다가 장관을 이루며 시시각각 움직이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해낸다.
- ▲ 황산 들목의 2층 누각인 자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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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느 한 책자에서는, ‘소나무와 바위, 그리고 구름이 어울려 청공(靑空)과 대지(大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들을 변화무쌍하게 보여 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황산은 천하제일기산(天下第一奇山)으로 불리고 있으며, 근래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 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드디어 황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추녀 끝이 날아오르는 2층 누각의 자광각(慈光閣)에 이르렀다. 어제 저녁 날씨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날씨는 덥지만 하늘이 파랗게 열려오고 시공은 쾌청했다. 아름다운 황산의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산의 제1기착지인 옥병참(玉屛站)에 발을 내딛었다. 아아, 거대한 바위산의 웅자가 가슴에 달려든다. 그러나 이내 회색의 운무가 산봉을 휘감아 버린다. 햇살을 가로막았지만 비 올 구름은 아니다. 고산 특유의 운무인 것이다.
우선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영객송(迎客松)을 만나러 갔다. 이름 그대로 이 산을 찾은 손님을 영접하는 소나무이니 그 기품이 참으로 당당하고 우아하다. 표고 1,668m 지점에 수령 천년을 넘었다고 하는 이 소나무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옥병봉의 거벽 아래 싱싱한 가지를 옆으로 좌악 펴고 있는 품이 유별나다. 그 모습이 꼭 길손을 영접하는 몸짓으로 보였던 것일까. 그 명명의 연유야 어쨌든 참으로 특별한 품격이 느껴지는 영물이었다.
그 옆에는 옥병루빈관(玉屛樓賓館)이 있어 필요하다면 여기서도 하룻밤 유숙할 수도 있다. 빈관 뒤쪽에 거대한 암괴로 솟구친 산이 옥병봉(玉屛峰)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병풍바위 산이다. ‘황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無石不松, 無松不奇)’고 말한다. 가장 유명한 황산의 소나무는 옥병루의 영객송과 송객송(送客松), 그리고 포단송(浦團松), 천해의 봉황송(鳳凰松) 등과 함께 이들은 황산의 십대 명송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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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의 소나무는 암석 위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강인하게 자라고 있다. 소나무 씨는 바람에 실려 화강암 틈에 들어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황산의 소나무들은 생장 환경이 열악하고 어려운 것만큼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한다. 뿌리는 줄기보다 수십 배 더 길다. 3m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나무도 몇 백 년, 심지어 수백 년 자란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영객송은 그 연륜이 천 년이 넘는다.
- ▲ 황산 10대 명송 중 하나인 영객송(왼쪽). 핸드폰처럼 생겼다는 수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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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객송의 기품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 사이 하늘을 가리던 운무가 어느 새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니 저 건너 가슴을 치고 솟구쳐 올라가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거대한 암봉이 눈에 들어왔다. 천도봉(天都峰)이다. 황산 최고봉인 연화봉을 위시하여 광명정(光明頂)과 함께 삼대 봉 중 하나다. 지금 저기 가파른 암벽의 계단에 줄지어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마치 하얀 쌀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다.
원래 등정은 케이블카가 아닌 제 발로 치고 올라야 하는 것. 저 아래 케이블카 출발점인 자광각에서 오른쪽 산길을 택하여 월아정(月牙亭)과 입마정(立馬亭)을 경유하고, 반산사(半山寺)를 거쳐 천도봉 정상에 올라가는 코스가 정도다. 물론 지루한 계단길이다. 그리고 천도봉에서 노도구(老道口)로 내려와 소심파(小心坡)를 치고 올라오면 이곳 영객송, 옥병루빈관에 이르게 된다. 황산 산행은 계단을 타고내리는 고통을 즐겨야 한다. 나는 오르지 못한 아쉬운 마음으로 그 쪽을 다시 보고, 또 뒤돌아보곤 했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출렁이는 산이다.
- ▲ 천보암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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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대한 암봉을 가슴에 채우고 가는 것만으로 자족하고, 이제 올라온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 연화봉을 향하여 가야한다. 가는 길목에 송객송이란 표지가 있어 올려다보니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 덩그렇게 서 있다. 만고풍상을 겪은 허허로운 모습이다. 말없이 서 있는 노송의 환송을 받으며 연화봉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장엄하고도 기이한 풍광이 시야에 차오른다.
오어봉((鰲魚峰)을 넘어 천해(天海)에 들다
황산 탐방길은 어디를 가나 계단에서 계단으로 이어져 나갔다. 거대한 암봉과 암봉 사이의 좁은 길이거나 절벽을 돌아가거나 가파른 암벽길은 모두 잘 정리된 계단이다. 절벽에 붙여놓은 이 인공의 계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황산의 진경에 들 수 없다. 산길은 산봉을 치고 올라 숨겨진 절경을 찾아가는 통로다. 인위의 품(品)이 자연과도 잘 어울린다.
황산은 천태만상 천하의 기암거봉들이 군웅처럼 모여들어 거기에 청정고절(淸淨孤節)한 소나무가 어우러져 장엄한 비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화봉 가는 길에 운무가 머리를 스쳐가더니 원근의 산봉을 감싸고 지나간다. 서늘한 바람결이 온몸에 스며든다. 아늑하고 신선한 느낌이 좋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앞에 펼쳐지는 황산의 기묘한 진경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기암, 절송(絶松), 그리고 운해가 황산 삼절이라 하더니 허언이 아니다.
- ▲ 오어봉 백보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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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가지 않아 문득 거대한 산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물론 산봉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장대한 규모를 지닌 위용이었다.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이다. 그러나 지금 연화봉 정상은 휴식년에 들어있어 오를 수 없었다. 우회로로 돌아가는 길은 바위에 예쁜 통로굴을 뚫어 편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분명 자연에 인공이 가미되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축조한 솜씨가 놀라웠다.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이건 또 무엇인가. 불쑥 길게 솟구친 바위 덩어리 위에 검지손가락 하나가 돌출된 모양이 특이하다. 소위 수기석(手機石·Mobilephone Stone)이다. 유네스코 지정 지질공원(UNESCO Geopark) 마크가 찍힌 석판 안내문에는 ‘造型奇特的怪石是黃山地質公園一大特色 此巧石形手機’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하면, ‘만들어진 모양이 기이하고 특이한 괴석은 황산지질공원의 한 특색인 바, 이 교묘하게 생긴 모양이 휴대전화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럴 듯하다.
산행은 물 흐르듯 계속 이어져 나갔다. 오늘 따라 길에는 사람이 많다. 진행의 오른쪽은 연화봉이요, 좌측 계곡 건너 맞은편에 솟은 것이 연자봉(蓮慈峰)이다.
가파른 계단길을 한참 올라가니 시야가 탁 트이고 새로운 정경이 가슴을 열어준다.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연화정(蓮花亭)이다. 오른쪽 위로는 연화봉이요, 왼쪽은 낭떠러지 절벽이요, 전방의 발아래는 깊은 골짜기인데, 그 건너편에는 다시 거대한 암봉의 큰 줄기가 뻗어가고 있었다. 저기가 바로 일선천(一線天) 암릉에서 이어지는 오어봉(鰲魚峰)인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내리고 돌아가서 그 암봉으로 오르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길 위에는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유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로 내려가는 발아래는 백보운제(百步雲梯), 절벽을 뚫어 만든 100개의 가파른 돌계단이 구름 속을 뚫고 오르는 사다리 구실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황산에는 사람이 많다. 가는 곳마다 좌우로 줄을 서서 비껴서 가야 한다. 천하명승 황산을 찾는 내국인은 물론 사해(四海)에서 모여든 탐방객이 많은 까닭이다.
백보운제는 가파르고 좁은 바위계단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초췌하다. 절벽에 가까운 계단을 올라오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내려가는 발길도 위태롭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균형을 잃고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오어봉(鰲魚峰) 반석 위에서의 조망
연화정에서 바라본 길을 따라 다시 암봉을 오른다. 오어동(鰲魚洞) 표지석이 동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동굴 통로를 지나니 왼쪽 위로 오어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길 옆 절벽에 ‘大塊文章’(대괴문장)이라고 새겨놓은 긴 붉은 색의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저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장엄한 하나의 문장이란 말인가. 아니면 어느 문장가의 바램이었을까?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저 큰 바윗덩어리 같은 무게 있고 선 굵은 문장을 쓰고 싶은, 가슴에 울림이 오는 문구다.
눈앞에는 다시 새로운 천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날아가고 시공은 푸르고 청명했다.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산빛이 깨끗하다. 저 아래 보이는 숲과 건물이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지인 천해(天海)인 것이다. 그리고 건너편에 높고 거대한 산봉은 황산 제2봉인 광명정(光明頂)이다. 오어봉 아래는 전망 좋고 시원한 반석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들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이당(怡堂) 형의 웃음소리가 장쾌하다.
천해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날아갈 듯이 높은 2층 누각이 인상적이다. 천해의 명물 봉황송(鳳凰松)을 배경으로 하여 지은 해심정(海心亭)이다. 그 위 2층 누각에 오르면 천해의 아름다운 장관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천해찬청(식당) 앞을 지나 최고급 산중 호텔인 백운빈관(白雲賓館)에 당도했다. 시간은 정오를 넘긴 12시20분.
백운빈관의 둥근 식탁에 오른 음식은 기름지고 푸짐했다. 중국 음식 특유의 향내가 풍기는 먹음직한 식단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천해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해심정 앞에서 올려다본 광명정은 커다란 백색 원구(圓球)를 이마에 이고 있는데, 서울의 관악산이나 설악의 중청봉에 있는 것과 같은 기상관측소였다.
광명정에는 명물 비래석(飛來石)이 있다. 오늘 우리 일행은 험난한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을 탐사할 계획이므로 아쉽지만 광명정 등정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사실 천해에서 광명정까지는 겨우 500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광명정은 기상대 시설이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광명정에서 산릉을 타고 40분 가면 북해빈관(北海賓館)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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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은 하나의 큰 바다다. 황산 입구의 천도봉을 중심으로 한 남쪽 영역은 전해(前海)라 하고, 그 반대 광명정 뒤쪽을 북해(北海)라 하며, 광명정 좌측의 대협곡과 배운루가 있는 영역을 서해(西海)라 하고, 운곡삭도(케이블카)의 오른쪽을 동해(東海)라고 명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천해(天海)인데, 그 중심에 높다란 망루 같은 해심정(海心亭)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황산을 바다에 빗대어 표현한 연유는 무엇인가. 운해의 장관으로 말미암음일 것이다. 아니면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있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저 수많은 암봉들의 모습을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읽어낸 것인가. 그렇다. 황산에 오면 산이 바다요, 바다가 산이다. 산이 바다가 되어 장엄하게 뒤채며 절묘한 몸짓으로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이로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안으로 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에 출렁이고 있다. 참으로 그 풍류가 멋지고 신선하지 않은가.
암릉길 조망, 그리고 환상의 보선교(步仙橋)
일행은 천해를 떠나 서해대협곡 탐방길에 나섰다. 황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길이다. 길이 아니면, 험준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선 황산 구석구석의 그 아름다운 비경을 조망하거나 탐방할 수 없다. 길이 있음으로 하여 황산의 진면목은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우리의 눈에 담을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 ▲ 해심정(왼쪽). 서해대협곡 절벽에 낸 계단길을 가고 있는 탐승객. 밑은 아찔한 허공이어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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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의 그 기막힌 절경도 절경이지만, 절묘한 솜씨로 만든 탐방로를 보면 그 수공(手工)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이 편하게 비껴갈 수 있는 노폭, 일정한 너비로 만든 탐방길은 파인 곳은 돌을 쌓아 축조하고, 비탈진 곳은 바위를 깎아서 평로를 만들었다. 아찔한 절벽과 절벽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 연결하고, 절벽이 길을 막으면 예쁘게 통로굴을 뚫는다. 관망하기 좋은 지점에는 일정한 공간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 같이 자연을 훼손했다거나 무리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그러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삶의 진경이 있는 법이다. 황산의 길은 바로 그러한 진리를 자연스럽게 발현해 놓았다. 황산은 이 절묘하게 만든 탐방길을 통해서 무한진경에 이를 수 있다.
천해에서 보선교(步仙橋)에 이르는 2.8km의 길은 아득하게 높고 날카로운 암봉의 능선길이다. 나는 편의상 이 천해~보선교 구간을 ‘천보암릉(天步岩稜)’이라고 명명한다. 천보암릉은 좌우가 천인단애의 절벽이다. 눈길을 잠시 돌리면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에도 길은 단아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보암릉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는 좌우의 비경이다. 좌로는 천해의 협곡이요, 우측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서해대협곡이다. 천해의 계곡은 좀 너비가 넓고 밋밋하고 소박하게 흘러내려간 형상이라면, 서해대협곡은 기기묘묘하게 용출한 수많은 암봉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골짜기 절벽이 어우러진 험난한 협곡이다. 파란 하늘을 향하여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와 바위, 그것들이 겹겹이 이어져 가면서 기암절경을 연출하고 있고, 그러한 암봉에 뿌리 내려 시퍼렇게 살아있는 갖가지 형태의 소나무들이 장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그러한 풍경은 천해에서 보선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臥石披雲’(와석파운), 지나는 길목의 절벽에 내리 새겨놓은 글이다. ‘누운 돌이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을 가른다’니, 내가 보기에는 누운 바위가 아니라 다 예리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바위뿐이다. 이제 보선교에 이르면 우리는 저 대협곡의 가슴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 ▲ 보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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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선교(步仙橋), 글자 그대로 신선(神仙)이 거니는 다리다. 천인절벽과 또 하나의 절벽 사이를 연결한, 길이 10여m 정도의 석교(石橋)인데. 아래 부분은 아치형으로 받치고 있고 그 위에 평상의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 좌우의 난간은 아름다운 석조물로 조형해 놓았다. 다리 양단의 암벽엔 통로굴을 뚫어서 탐방길이 연결되도록 해놓았다. 그 통로굴을 따라 그대로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8.5km) 조교암(釣橋庵)에 이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참으로 아찔하면서도 절묘한 풍경이다. 정말 신선이나 지날 법한 묘경이다.
아아, 장엄한 서해대협곡
일행은 보선교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통로굴로 접어들었다. 여기가 대협곡의 남쪽 입구다. 굴을 지나고 나니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 여기서부터 황산의 진경인 서해대협곡인 것이다. 이제 산릉에서 눈으로 보던 협곡을 온몸으로 걸어 나아가야 한다. 날씨는 쾌청하고 햇볕은 뜨거웠다. 시계는 아주 맑아서 상하좌우 협곡의 모든 풍경이 천고(千古)의 순결한 자태로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산봉이 천인단애의 절벽을 이루며 첩첩이 도열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고, 아래로는 끝없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어디에 길이 있다는 말인가. 서해대협곡의 트레킹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은 기암괴석과 괴송이 이루어낸 아찔한 무한비경이다. 그 험난한 절벽을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황산은 ‘길’을 통해서 그 모든 아름다움의 진체(眞諦)를 드러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서해대협곡은 길을 낼 수 없는 수직의 절벽에 길을 만들어냈다. 길을 절벽의 옆구리에 붙여 놓았다. 특히 천 길 절벽의 중간에 느닷없이 콘크리트 기둥을 수평으로 박아 통행로와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이 구조물의 시공은 어떻게 했을까.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만리장성의 축조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것 또한 참으로 기막힌 명물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찬탄을 연발하며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 통행로 계단, 길목에 ‘絶壁深壑, 斷崖絶壁, 注意安全’(절벽심학 단애절벽 주의안전)이라고 오석(烏石)에 노란 글씨로 새긴 경고판도 설치해 놓았다. ‘절벽 깊은 골짜기에 깎아지른 길이니 주의하여 안전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절벽 옆구리를 감고 돌며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저 건너 암봉 아래 대협곡복무참(大峽谷服務站)이 시야에 들어왔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햇볕은 뜨겁고 대원들의 몸도 많이 지쳐 보였다. 각자 지니고 온 물이 다 바닥이 났다. 그리고 일부 대원에게는 몸에 무리가 오는 듯했다. 우선 이당(怡堂) 형께서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고, 죽파(竹坡)와 일송(一松)도 무릎보호대를 장착하며 아프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관절에 많은 부담이 된 것 같았다.
대협곡복무참(보선교에서 1.7km 위치한 산중휴게소)의 화장실은 깨끗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보아 온 황산의 모든 탐방로 주변도 아주 깨끗했다. 길목의 요소요소에 설치해 놓은 쓰레기통은 바위에 홈을 파서 만든 듯이 자연스럽고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황산에 대한 그들의 섬세한 정성이 느껴졌다. 관광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쉬고 난 뒤 일행은 휴게소 뒤쪽의 약 20여m 동굴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길은 외줄기 낭떠러지로 쏟아지는 급전직하의 경사, 그냥 아래로 내리꽂는 가파른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암벽의 옆구리에 붙여진 좁은 계단인데, 그 거리도 만만치 않은, 길게 쏟아지는 심학(深壑·깊은 골짜기)이었다. 좌우로 올려다보니 아득하게 치솟은 기암거봉이 전후좌우에서 창공을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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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 햇살은 성가시게 따갑고 우리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래로는 내려가는 발끝이 위험천만이고, 위로는 쏟아질 듯 높은 절벽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길옆에 영어와 독일어와 불어를 곁들인 ‘峽谷地帶 當心落石’(협곡지대 당심낙석·험악한 협곡지대이니 마땅히 낙석에 조심)이라는 석판이 눈길을 끌었다. 이 길목에선 상투적인 주의가 아닌 절실한 말이었다.
이렇게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계단을 수백 미터 걸으면서 대협곡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힘든 가운데에도 간간히 피어 있는 소담한 야생화는 피곤한 길손의 눈길을 끌었다. 보랏빛 넝쿨에 핀 개나리 꽃잎 모양 같은 것, 팬지꽃처럼 생긴 분홍 꽃, 그리고 무리지어 피어있는 하얀 꽃무리들. 그 티 없이 맑은 기운이 상큼하게 가슴에 와 안긴다.
- ▲ 서해대협곡에서 배운정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온갖 형상의 기암들을 지척에서 만난다. 탐승로를 그렇게 기암들을 돌아볼 수 있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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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관절이 아픈 사람에게는 내리막은 지옥이다. 일송과 죽파, 그리고 이당 형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때때로 아픔으로 호소하기도 하다가 그냥 말없이 견디며 묵묵히 걷고 있었다. 안쓰러운 산행은 계속되었다. 황산은 그냥 황산이 아닌 것이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아래로만 내려가던 산길도 다시 가파른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가파른 계단길은 예의 암벽을 끼고 오른다. 오늘 일정은 배운루(排雲樓)를 거쳐 숙소인 서해빈관(西海賓館)까지 가는 것이다. 내려온 것을 보상이라도 하라는 듯 오름길 또한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사정없이 위로만 치고 올라가는 팍팍한 길,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곳에 만들어진 계단길, 그 경사가 가슴에 와닿도록 가파른 길, 아래로는 천길 벼랑이요, 위로는 아득한 산봉이 이마 위에 쏟아지는 길이다.
햇볕이 뜨겁고 숨이 차고 땀이 흐른다. 이제 깊은 협곡을 벗어나 고도를 높여 올라만 가는 길이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산 중턱 어디쯤 쉼터 역할을 하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뜨거웠다. 여기서 잠시 대협곡의 장관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하였다. 모두들 같이 늘어서서 추억의 사진도 한 방 찍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대협곡복무참에서 2.6km 지점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환하로구(二環下路口·두 번째 갈래길의 아래쪽 입구), 여기서 좌측으로 가든 우측으로 가든 0.5km를 가면 이환상로구(二環上路口·위쪽 입구)에서 만난다. 일행은 두 갈래 길이 만나는 지점의 전망대에서 잠시 피곤한 몸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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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천인절벽의 옆구리를 타고 계속 오른다. 황산은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이 절묘한 계단길이 유별나고 기찬 명품이다. 오르기도 아찔하고 쳐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길,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구조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행은 또 일환하로구에서 갈래길이 만나는 지점인 일환상로구까지 힘겹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왔다.
약 1km 오르고 산봉을 하나 넘으니 대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대에 이르렀다. 따가운 빛살을 뿌리던 여름해도 많이 기울어졌다. 산곡에는 곳곳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서해대협곡 북쪽 입구에 이른 것이다. 아, 드디어 대탐험이 끝나는 지점이다. 낙락장송이 부드러운 그늘을 만들고 그 사이로 아득하게 펼쳐진 대협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운루 절벽에서 서해대협곡 조망
아아, 서해대협곡! 그 장엄한 규모에 놀라고, 갖가지 기이한 형상에 놀라고, 천 길 낭떠러지에 설치한 인공의 절벽 계단길에 놀라고, 줄곧 찬탄과 경탄 속에서 탐사를 마쳤다. 한국인인가 보다. “어이, 몸서리나는 계단길!” 바람결에 흘러드는 행인의 소리도 들린다. 너무 힘들어 그냥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의 온몸에 저 장엄한 황산의 정기가 살아서 출렁이고 있지 않은가.
배운루 절벽 위 전망대는 서해대협곡을 조망하는 데 최적의 명소다. 대협곡을 가운데 두고 두 줄기 장대한 암봉이 기묘한 절경을 연출하면서 춤을 추듯 내달리는 모습이 지친 우리의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그런데 맞은편에 우뚝하게 솟은 저 봉우리가 무엇인가, 광명정(光明頂)이다! 천해에서 바라보던 광명정이 남쪽 부분이라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광명정은 그 뒷면이겠다.
백구(白球)의 기상관측소는 여전히 하얗게 떠있고, 그 오른쪽 절벽 위에 곧추선 바위가 바로 비래석(飛來石)이다. 그 주위에 아직도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다 뭔가? 배운루 앞 낭떠러지 안전철망에 걸려있는 수많은 자물쇠! 왜 하필 자물쇠가 여기 이렇게 많이 걸려 있는 것인가. 연인끼리, 부부끼리 이곳에 오른 후 평생의 반려자로 헤어지지 말자는 언약으로 열쇠로 자물쇠를 채운 후, 그 열쇠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 버린다는 것이다. 열쇠가 없으니 자물쇠를 열 수도 없는 것, 결국 둘은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평생을 해로할 수밖에 없다. 그래, 철석같이 굳은 마음으로 변치 말고 살아야지. 인간의 아름다운 소망일 것이다.
배운루에서 숙소인 서해빈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숙소에 이르렀을 즈음 태양은 서서히 서쪽 산너울 가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황산의 석양은 그 자체가 한 폭의 수채화다. 그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도 며칠 안 된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 그윽한 장관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참으로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제 저녁 황산시에 들어올 때는 잔뜩 흐린 하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심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하늘은 청명했고 시야는 더없이 맑고 깨끗했으므로 황산의 절경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 안복(安福)을 누렸다. 어찌 하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어느덧 구름 사이로 마지막 빛을 발하며 황산의 태양이 지고 있다. 청명한 고지의 산중에 내리는 석양은 곱다. 얼마 전에 다녀온 몽골 태초원에서 뜨는 해는 장엄했고, 지금 황산에서 지는 해는 그윽하고 아름답다. 한국의 초가을 같은 선선한 바람결이 부드럽다. 더구나 험난한 대협곡의 탐방을 무사히 끝마친 성취감과 안도감이 은은히 스며든다. 장하고도 멋진 여정이었다. 열병 같은 뜨거운 고행을 끝내고 난 후 맛보는 이 넉넉하고 상쾌함이란….
서해빈관은 산중 관광타운이다. 즐비하게 지어놓은 건물에는 호텔 객실, 대형 식당, 슈퍼마켓, 가라오케 노래방 등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술과 음료수 등도 살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발 마사지도 편하게 받을 수 있다.
낮에 그렇게 뜨겁던 더위의 위세도 해발 1,600m 이상 되는 산중에서는 자취 없이 물러가 버렸다. 지정된 객실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고 밖에 나오니 선선한 바람결이 쾌적하다. 온몸에 실린 황산의 노독도 씻은 듯이 날아가 버렸다. 꼭 한국의 가을 바람결처럼 부드러운 감촉이다. 경내는 많은 산행객들로 왁자한데, 사위는 서서히 어둠 속에 잠겨든다.
황산의 별은 총총하다. 자정을 넘기자 대원 몇 사람은 객실로 들어갔다. 야심한 별밤이다. 얼마 전 몽골의 초원에서 보던 별과는 달리 산중의 별은 또 다른 느낌이다. 여기가 고지의 산중이므로 주위의 어둑한 산너울 위로 뜨는 별, 깊고 그윽한 분위기가 좋다. ‘아, 하늘엔 우리들의 별이 빛나고 우리들 마음에 뜨는 소중한 사람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아, 저기 아기별도 예쁘게 반짝이네!’
/ 글·사진 오상수 ksbpoh@hanmail.net">ksbp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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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 햇살은 성가시게 따갑고 우리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래로는 내려가는 발끝이 위험천만이고, 위로는 쏟아질 듯 높은 절벽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길옆에 영어와 독일어와 불어를 곁들인 ‘峽谷地帶 當心落石’(협곡지대 당심낙석·험악한 협곡지대이니 마땅히 낙석에 조심)이라는 석판이 눈길을 끌었다. 이 길목에선 상투적인 주의가 아닌 절실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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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은 하나의 큰 바다다. 황산 입구의 천도봉을 중심으로 한 남쪽 영역은 전해(前海)라 하고, 그 반대 광명정 뒤쪽을 북해(北海)라 하며, 광명정 좌측의 대협곡과 배운루가 있는 영역을 서해(西海)라 하고, 운곡삭도(케이블카)의 오른쪽을 동해(東海)라고 명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천해(天海)인데, 그 중심에 높다란 망루 같은 해심정(海心亭)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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