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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오 스님의 추천으로 작년 가을 봉암사 순례에 이어 이번에 정선 정암사와 영월 법흥사 순례를 하게 되었다.
5대 적멸보궁 중에서 가기 힘든 세 곳을 무사히 다녀 온 것이다.
순례 전날 장맛비처럼 종일 주룩주룩 내리던 빗님도 우리들 성지 순례를 위해서 애써 참아준 듯 간간히 가랑비가 흩뿌렸지만 다니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 김천고등학교에서 오전 7시경 출발해서 상오스님과 단양휴게소에서 만나서 동승했다.
첫 순례지는 안호대 원장님의 제의로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이다. 보물 제459호로 지정된 잘 생긴 모전석탑이다. 상륜부 중에서 노반만 남은 석탑은 높이가 9.1m이며 점판암으로 조성되었다. 특이한 것은 탑의 1층 부분 네 귀퉁이에 굵다란 화강암 기둥을 세우고 북쪽면에 화강암으로 문틀과 문짝을 만든 것이다. 2008년 봄에 보았던 영양 봉감오층모전석탑과 닮았다. 그 날도 잿빛의 차가운 날씨였다. 흥선 스님은 봉감오층모전석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명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석탑입니다. 장중하지요. 상륜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높이가 11m나 되는 장대한 석탑입니다. 모전석탑은 다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여기 봉감 모전석탑이나 분황사 모전석탑처럼 돌을 벽돌처럼 잘게 잘라 쌓은 석탑(분황사 계열)과 의성 탑리 오층석탑이나 선산 죽장동 오층석탑처럼 돌을 크게 잘라 쌓은 석탑(의성 탑리 계열)이 있습니다. 두 종류는 돌의 크기가 다르고 지붕돌의 층급이 다릅니다.”
<충북 답사여행의 길잡이 12>에는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은 생석회 등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쌓아올린 수법으로 볼 때 삼국시대 말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라고 씌어있다. 내 나름대로 정리하면 분황사 계열은 돌의 크기가 벽돌처럼 작아서 굳이 접착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석탑이라는 설명인 것 같다?
오전 11시 30분경 정선 정암사에 도착했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하여 정암사淨岩寺라고 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넉넉한 계곡물이 기운차게 흘러가고 나무들은 긴 겨울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적막했다. 적멸보궁 입구에는 ‘선장단禪杖檀’이라는 키는 그다지 커지 않지만 둥치가 굵은 주목이 있다. 자장율사가 평소 사용하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회생해서 성장한 나무이다. 회생한 주목은 자장율사의 분신과 같다. 주목을 보면서 이정 선생님도 나도 내생에는 천 년을 견디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적멸보궁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반야심경 독송 후 공양간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암사의 가장 높은 곳, 적멸보궁 뒤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자장율사가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칠층모전석탑이 나온다. 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곱게 선을 세운 스님의 두루마기같이 정갈하고 날렵한 여성적인 맛이 나는 탑이다. 돌의 크기와 색깔이 조금씩 달라서 전체적으로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수려한 석탑이다. 정암사를 세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탑이고, 마노 앞의 ‘수水’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용왕이 마노석을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주었기에 ‘물길을 따라온 돌’이라 하여 덧붙여진 것이다. 상륜부까지 완벽하게 갖춘 석탑은 전체 높이가 9m이다. 상륜부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노반 위에 청동제 장식이 순서대로 얹혀있고, 꼭대기 바로 밑에는 네 가닥의 풍경이 앙증스럽게 달려있다. 각 지붕돌에도 몇 군데를 빼고는 네 모서리마다 풍경이 가지런히 매달려 있어서 그 미려한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석탑 근처에는 붉은 노송과 노오란 꽃을 피운 생강나무가 보였다.
김창순 보살님이 생강나무꽃을 보여주면서, “생강나무는 꽃자루가 없다고 했는데 여기 있네.” 하신다. 생강나무 꽃받침 근처를 자세히 보니 산수유보다 길지는 않지만 꽃자루가 보였다. 덧붙여 “강원도 사투리로 생강나무를 동백이라고 하는데 동백은 남쪽지방의 붉은 동백에게 어울리는 말이고, 여기 생강나무는 동박이라 해야 어울려”라고 하신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김창순 보살님의 뛰어난 미감과 적절한 언어 사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석탑 앞에서 백승환 선생님이 금강회 단체사진을 찍었다. 늘 고마운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답사 때마다 정성이 담뿍 들어간 간식을 보시해준 정경지 선생님에게도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 아라리> 중에서 대표적인 가사를 흥얼거리면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첫댓글 풍부한 답사자료집과 후기가 생기가 넘치는 군요.늘 감사합니다.
선장단 고목의 창연함이 느껴지는 줄기둥치는 자장스님의 준엄한 법문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