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이 살아온길을 되돌아 보고 현재를 생각해 보는것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 보기 위한일이 될것이고. 가끔은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해 보며 사색에 젖어 보는것 또한 풍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자가충전 하게 되는일 일것이다. 민족이나 국가가 역사적 진실을 소중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된 내용의 교육을 후세 세대들에게 교육해왔다면, 그 어떤 민족도 그들의 미래는 불안해 질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 한다. 2000년 동안 세계를 방황하던 유태민족이 1946년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것은 역사의 기록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태복고주의의 폭력성을 혐오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내개인의 경험을 타인에게 들려줄 만큼 훌륭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이 흐름으로써 희미하게 잊혀져 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부터 현대사를 기록한 서적과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공부해 보게 되었고 눈물이 앞을 가리며 충격과 분노가 교차되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은 뭔가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2년 인터넷을 사용해 보면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의 활동내용을 알게 된 것이 그 계기가 된 것이다. 오랜 노동자 생활 장시간의 근무이후에 밤을 지새며 많은 시민단체의 활동 내용을 살펴보기도 하였고 또 가입하여 사람들과의 소통도 해 보았다. 민주화가 진행 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진정한 민주화의 길에 들어서기 까지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그것은 역사속의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 된체 반세기 넘도록 교육되어오게 된것을 바로잡는 일이 쉽지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이땅의 사람들은 머릿속의 생각 까지도 통제 받아야 했고 역사속의 진실에 대하여 침묵을 강요 받아야 했다. 일제식민시기 36년 세월 민족을 배반한 반역의 죄과가 분명한 반역자들에 대한 처벌이 전무하였고, 해방이후 전쟁시기 군과 경찰 그리고 서청과 대청 이라는 반역 집단에 의하여 저질러 졌던 반인륜적인 집단학살의 진실은 침묵을 지키며 통한의 반세기가 지났다. 한줌 거리도 되지 않았던 그들의 힘은 바로 미군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과거사라 치부 될지라도 피해자에 있어서는 결코 과거가 아닌 현재이며 그들에게 있어서는 50년의 세월은 시계바늘이 멈춰져 있었다. 부모 형재의 비참한 죽엄을 목격 하였으면서도 오로지 끊질긴 생명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살아온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체 무시된 상태의 반세기 넘는 세월 이었던 것이다. 노예생활을 강요 받아 왔던 식민시기를 지나 해방된 조국에서 뚜렸한 죄과도 구분되지 못한체 참혹한 집단학살의 범죄에 의하여 희생된 이땅의 의인들과 500만 유족들의 한을 풀지 못한다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은 우리시대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1960년 4,19 학생혁명 으로 만고역적 이승만이 하와이로 도망간 이후 전국의 유족들이 들고 일어나 유족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였고 제4대 국회에서 조사활동을 한 결과가 114만 여명에 이른다는 것을, 통상 100만 민간인 학살 이라 칭하는 것도 유태인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홍보해온 히틀러의 600만 유태인 집단학살의 내용과 조금은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학살의 사례는 해방후 반역집단의 테러에 의한 소규모 학살에서 부터 10,1 항쟁에서의 약 5000명에 이르는 인원의 피해, 보도연맹원 예비검속학살, 형무소 재소자학살, 미군에 의한 직접학살, 전국의 형무소에 넘처나던 수감자의 학살 국민방위군 동사 사건 등 도저히 인간의 행위라고 믿기 어려운 추악한범죄에 의한 피해로써 전국의 산야가 그 무덤이었다. 나주부대 사건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과 극우쳥년단 혼성부대인 나주 부대가 퇴각중에 인민군 복장으로 위장하고 읍내나 마을에 진입한후 환영나온 주민들을 학살 하였으며. 해남 완도 진도 등지에서 피난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천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아무른 죄도 없이 학살 되었다. 금정고양굴학살. 강화 화순 거창 함평. 함안 목포 대구 경산 영천 경주 전국의 시 군 읍 면 단위에서 수백명 에서 수천명에 이르는 이땅전체가 학살 지역이 아닌곳은 거의 없으며
경산에 있는 폐코발트 광산엔 수직 130미터 이상되는 동굴속에 약 3500에서 4000구로 추정되는 유골이 57년간 방치되어 있다,
1961년 일군 장교출신들로 구성된 쿠테타 군에 의하여 유족회는 와해되고 유족회를 구성한 간부들과 일부 유족들이 군사혁명 재판소에 의하여 군법에 회부되어 1명이 사형에 처해지고 11명의 유족회 간부들이 5년과 10년 15년 형을 선고 받아 실형을 살았으며 나머지수명은 집행유예로 판결을 받았으나. 유족회의 결성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민주인사들은 별도의 죄명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복역하였으므로 범국민 위원회에서 마져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다. 억울하게 희생된 것만도 서러운데 어찌 부모와 형제의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죄가 되어 또다시 죽어야 하고 감옥 생활을 해야 하는가?
이글을 쓰면서 10,1 항쟁에 대한 자료를 좀 올려 볼까를 생각하였으나 평범한 한 노동자가 민족문제 연구소의 회원이 되고 현대사를 공부해 보게된 이유부터 설명이 되어야 하겠기에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민간인 학살의 내용을 조금 소개해 보게 되었고 114만 여명에 이르는 학살의 실상은 정부의 기록 과 수많은 증언과 물증은 범국민위의 자료실에 기록 되어 있으므로 민족문제 연구소의 회원 이시라면 꼭 검색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바로 민족문제 연구소의 연구 대상이며 회원들의 지원대상일 것이 분명할것 이라는 생각이다. 비무장민간에 대한 집단학살의 실태를 철저하게 파악해 보지 못했다면 우리의 현대사를 안다는 말을 해서는 알될것이다.
범국민위원회의 활동과 민족문제 연구소의 설립 취지나 의미 역시 별도로 분류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 드리고, 우리 민족내부에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 되지 안게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후대에 물려 주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해방후 3,8선 이남에서 우리민족 유사이래 최대의 인원이 참여 하였던 1946년 10,1 항쟁의 시작은 미군정의 실정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농민에 대한 수탈로 기아에 허덕이던 이땅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평화스러운 집회에서 경찰의 강연자에 대한 조준 사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식민시기를 지난 후에도 우리 민중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왔고 그것은 전쟁시기 까지 이어 졌으며, 뚜렸한 죄과도 없이 감금된 사람들은 몇푼의 돈을 주고도 목숨을 구해 낼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어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이승만 독재와 군부독재를 이어온 우리사회는 확실히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거꾸로 가는 사회였다. 황금만능 시대 결과지상주의 철저하게도 이기적이며 약육강식 폭력이 난무한 시대 였다. 이웃과 소통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은 어리섞은 사람이며 마음약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사깃꾼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 이었다. 오랜 군부독재 시기를 이어오면서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의 존엄성 도덕적 사회를 강조하고 유지할만한 정치는 이땅에 없었다. 오히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가로 막으므로써 인간의 존엄성 마져도 무시하고 인권을 탄압해온 세월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의 머리속까지 통제한 다는것은 그들 스스로가 아예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민간인 집단학살의 실상을 철저하게 파악해 보아야 할것이라는 생각에 덤성덤성 건너뛴 현대사에 대한 부족한 글이나마 전해 보고 싶었다.
민족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반복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처할 능력은 기대하기 어려울것 이며, 우리의 경우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이땅의 사람들은 머릿속의 생각 까지도 통제 받아야 했고 역사속의 진실에 대하여 침묵을 강요 받아야 했다." - 예, 그렇습니다. 생각할 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 범국민위'는 어느 사이트를 말하는 것인지요?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기다리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바쁜실 텐데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http://www.genocide.or.kr/info/news_list.asp 혹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라고 치면 나옴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피해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 모두일것입니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께닫지 못한것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