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3 난 경복이로 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유운선이 하고 10일(11.6-11.15)
일정으로 뉴질랜드. 호주 여행을 가는데 같이 갈 의사가 없느냐는 이야기였다.
참 황당스러운 전화였다.
출국일자가 11. 6 이어서 단 사흘의 시한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10일간의 해외여행
은 상당한 Big trip이여서 섣불리 간다 안간다 즉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삼성동 가게를 때려 치우고 지난 번 이태리 여행을 국비유학생으로 다녀온 나로서는
경복이의 이 여행 제안이 몹시 흥미롭고 가슴 셀렌 사건이었다.
그러나 나이 좀 든 남자들이 어찌 집사람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있으리오.
집사람한테 조심스레 이야기했더니 뜻밖에 두 말없이 다녀오란다.
젊었을 적엔 세파트처럼 용맹무쌍했던 내가 어이타 이처럼 여자 눈치를 살피는
치와와로 변질되어 나이 육십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는가?
그러나 신혼 초 얌전한 고양이같았던 지금의 내 마님은 영용한 호랑이로 자라난 형국임
을 부인할 수 없음을 어이하랴.
그러나 문제는 내가 이태리 여행시 새로 발급받았던 전자여권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밤을 새워 온 집안을 찾아헤멨건만, 내 여권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경복이한테 전화를 받고, 1시간 후 여행대금을 입금시킨 나로서는 참 난감한
일이었다. 사실 난 내 여권을 11.3일 밤새 찾아헤메다 끝내 찾기를 포기하었을 때,
여행대금을 입금시키지 않았다면 난 내 기질상 이 여행을 포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권찾기를 포기하고 11.4일 오전 10시경 구청 여권과에 가서 여권분실신고를 하고
신규로 여권발급 신청을 하면서 11.6일 오후 5시 출국을 하니 당일 오전 12시까지는
여권을 찾아야만 차질없이 여행할 수 있다며 도와달라고 사정을 말했다.
여권발급절차는 구청 여권과에서 나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스캔을 떠서 조폐공사에 보내
신규 발급된 여권을 특송우편으로 받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난 11.6 오후 1시 정각에 새 전자여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의 민원행정서비스가 이처럼 신속하게 처리되다니,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다
라는 생각 뿐이었다.
출국 짐가방을 꾸리기 전 집사람이 뉴질랜드는 지금 초봄이라니 추울거라며 새 점퍼를
하나 사왔는데 난 그 사이즈가 100이어서 95사이즈가 맞다며 까람을 부렸다.
집사람이 말했다.
아이고! 이 양반 여권 잊어먹고 정신을 쪽 빼놓질 않나, 사다 준 옷 사이즈도 점퍼는
100을 입어야 하는데 입어보지도 않고 크다고 말썽을 부리지 않나,
그냥 서천댁한테 웃돈이라도 부쳐 념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내가 응수했다. 언더테이블 머니를 얼마나 넣을거냐고.
난 늘 이렇게 아기같이 말썽을 피우며 사는 아직도 철부지 코흘리개인가 보다.
근래에 개통된 인천대교를 쌩쌩 밟아 약속시간 5분 전인 오후 2시 2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동행하는 친구들에게 내 전자여권 재발급 경위를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출국
수속을 밟고 트랩에 올랐다.
오후 6시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장장 13여시간의 비행이 참 지루하였다.
더군다나 난 비행기를 타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육지에서는 차면 타면 조는데,
비행기는 기압차 때문에 그런지 거의 뜬 눈으로 날을 새기 일수이다.
11.7 오전 8:30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여행이련가?
오클랜드에 착륙하기 직전 남태평양의 일출을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그 장엄함을
나의 짧은 문장력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바다는 검고 검은 현현(玄玄)한 빛인데
동녘 하늘은 무수한 작은 조개껍데기 같은 검은 산들을 머금고,
태양은 기침하여 아직 어두운 댓돌위의 신발끈을 잡아매려는 듯
등잔의 심지에 불을 붙이더니
그 여린 빛이 점차 강렬한 붉은 빛으로 온 세상을 밝히는
그 웅대하고 강렬한 해돋이가
마치 인상파 화가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드로잉하고 있는 듯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음을
어이 경탄에 경탄을 마다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오클랜드 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곧 버스를 타고 에덴동산에 도착하였다.
오클랜드시의 전경이 한 눈에 굽어 뵈이는 에덴동산은
글자 그대로 천상의 공원이었다.
이곳은 초봄이었다. 이름 모를 풀꽃이 소담스럽게 그 방향을 쏟아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과객이고, 주인장은 풀꽃이었다.
주인장이 나를 반기며 비행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테니
잠시 쉬어가라며 포근하게 맞이하는 그 모습은
풀꽃의 얼굴이 아니라, 정령의 얼굴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이 에덴동산의 분화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제주도의 산굼부리에 비하면 정말 작고 아담한 분화구였다.
초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에덴동산에서 굽어보는 오클랜드 시가지 전경이
시원스레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전인구의 1/3이 모여사는 뉴질랜드 북섬의 최대 도시이다.
뉴질랜드 전 인구가 430만, 오클랜드의 인구가 140만이란다.
뉴질랜드 북섬은 전체가 초지이다. 목축업이 주된 산업이고,
정부 행정부처중 농수산부의 힘이 가장 세다고 한다.
국민소득은 25,000불 정도이나 국민들이 살아가는 생활수준은
한국에 못미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에덴동산의 분화구 입구에 피워있는 우리의 쑥부쟁이 같은 들꽃이
지천으로 봄의 향연을 노래하며
삽상한 북섬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에게 참 잘왔다며 손짓을 하며
환영해주는 듯한 환상에 젖어들었다.
이 노란 풀꽃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짙은 체취에 취한
나는 지구 남단의 대자연에
포근히 안긴 행운아였다.
에덴동산을 한바퀴 걸으며 봄동산을 완상한 우리 일행은 오클랜드 시내를 지나
1번 국도로 들어서서 틸포드로 향했다.
틸포드 한식당에서 스테이크로 점심이 예약되어 있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1시간여 버스여행길에서 난 150여년 전 영국인들이 이 땅으로
이민와서 나라를 세우면서
어떻게 이 광대한 땅을 전부 초지로 만들어 목축업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외경스럽고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초기 이민자들이 이 땅에 들어와서 삶의 정착을 위해
원시림을 개간하여
전 국토를 초지화 하기까지의 그 노고가
얼마나 고달펐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초원과 농장이 아니던가?
그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틸포드 한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스테이크(등심)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뉴질랜드나 호주 사람들은 마블링이 있는 고기를 먹지 않는단다.
우리나 일본인들만이 마블링이 있는
고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스테이크는 마블링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연하고 먹을만 했다.
뉴질랜드의 링컨대학교에서 매년 우수한 품종의
목초 종자를 개발하여
이 곳 뉴질랜드 소고기의 육질은 곡물사료를 먹인 소의
육질맛의 95%수준까지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한다.
뉴질랜드 정부의 최종 목표는 천연 목초만을 먹여
미국산 쇠고기 육질을 능가하는
그런 쇠고기를 생산하는데 국가적인 총력을 기울인다니
앞으로는 난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시중에서 사먹는 것이
말썽 많은
미국산이나 캐나다산 보담 훨씬 더 건강에 좋을 것 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연 목초만을 먹고 천국과 같은 초원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란 소와
우리에 갇혀 곡물사료를 먹고 사육되는 소와 비교한다면
비록 마블링이 없더라도 당연히 무엇을 먹어야
옳은지 굳이 묻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이 한식당 주인은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다 이 곳으로 이민와서
이 가게를 운영하며
시간 나는 대로 골프와 사냥, 낚시를 즐기고,
간혹 마을의 마오리 원주민들과
술도 한 잔씩 나누며 인생을 여유롭게 즐기며 산다는 것이었다.
한식당 정원에 심어져 있는 동백나무를 바라보니 마치 고향 까마귀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었다.
텃밭엔 상추와 고추 배추가 심어져 있어,
역시 한국인의 입맛은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도 세계 어디서나
이 채소류를 먹지 않고는 못배긴다는 민족동질성이 새삼스러웠다.
우린 점심을 끝내고 와이토모 동굴을 찾아갔다. 이 동굴은 와이토모 ·루마쿠리 ·아라나우이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불가사의한 신비와 비밀을 간직한 이 와이토모 동굴을 보기 위하여 매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니 궁금하지 않는가?
석회석 동굴이 다 그렇듯이 이 동굴도 천정엔 종유석 커튼과 종유석이 동굴 바닥엔
석순이 자라고 있었고 물도 흐르고 있었다.
종유석과 석순이 서로 맞닿아 생성된 거대한 석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동굴
천장엔 놀랍게도 수백만 마리의 반딧줄이 유충이 눌러붙어 앉아 푸르스름한, 아니
청보라빛 에메랄드 같은 푸르고 푸른 미광을 반짝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글로웜이라는 이 반듯불이는 애벌레 단계일 때 푸른 빛을 보이며 실타래같은 끈적끈적한
촉수를 길게 늘어뜨리고 그 푸른 불빛에 몰려든 작은 곤충들을 유인하여 잡아먹고 산다는
것이다.
이 글로웜을 보기 위해 우린 작은 나룻배같은 보트를 탔다. 레포츠라기 보담 관광을 위한
필수 코스로 15명 정도의 인원이 보트에 얌전하게 앉고, 현지 동굴 가이드인 마오리족이
천정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기며 컴컴한 동굴을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다.
환상적인 청보랏빛 반딧불이 유충이 내뿜는 그 선연한 날빛이 마치 은하수가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반딧불이 유충이 소리와 불빛을 싫어해 우린 말없이 사진도 찍지 못하고 그냥 경탄의 신음
소리만 여기 저기 새어나올 뿐이었다.
난 엉뚱하게도 이 청보석을 그냥 천정에서 하나 빼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이 몽환적인 길이 너무나 아쉽고
짧게 끝나버림을 영탄할 수 밖에 없음을 어이하랴.
뉴질랜드는 이 반딧불이 하나로 짭짤한 외화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반딧불이는 참으로 슬픈 곤충이었다.
비극적이라기 보담 성인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았다.
시발된다는 말이 다시 곰곰 되씹혀졌다.
와이토모 동굴은 특별한 명칭이 붙여진 명소로도 유명했었다.
명칭도 참으로 아름다운 동굴이었다.
파이프 오르간, 성당, 제방등이 그것이다.
마치 공연장과 같은 음향효과가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단다.
가수의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있어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버스를 몰았다.
여장을 풀고 바로 호텔 앞에 있는 폴리네시안 스파에서 노천 온천욕을 즐겼다.
만 했다.
(지열로 익히는 마오리 원주민들의 음식) 디너파티에 참석하였다.
미지의 문화를 접하는 설레임이 잔잔한 파문처럼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한 병을 몰래 숨겨가지고 갔다.
발렌타인 병마개를 다시 땄다.
키득키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있었지만, 술맛은 조금 나지 않았다.
좋은 술을 마음 껏 즐길 수 없다니...
내 등을 떠밀어 난 무대위에 올랐다.
키오라(마오리 인사) 카파이(끝내준다, 원더플)을 연발했다.
마오리 전사들이 Oh, No good하며 나를 제지했다.
나는 이 무대위에서 계속 NG를 펑펑 낸 꼴이었다.
슬그머니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샀다. 담배 한 갑이 우리 돈으로 15,000정도였다.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난 꼴지를 했다.
이 날 우리 셋은 오징어채에 발렌타인 한 병을 끝내 다 비워버렸다.
우리의 술 여행은 이렇게 테이프 커팅 세리모니를
조촐하게 치루며 시작되었다.<끝>
첫댓글 첫번째 사진은 인천대교 사진 인것 같구먼, 오늘은 추수감사절 휴일이라 내 좀 한가 하구만. 그래서 니 사진을 감상하고 있구먼. 멀리 보이는 항구는 평화로와 보이고, 소들이 노니는 시골? 풍경 또한 여유로워 보이는 구만. 30년쯤 지난 세월을 한 삼일쯤으로 생각하고, 자 ! 이제 친구들 얼굴좀 보자 하고 한국에간 나는 많이변해 버린것들에 대해서 슬픔을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그리움을! 느꼇네.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게. 깡소주/깡위스키 속 상하네.
인천대교 사진 맞네. 사실 난 이 번 여행은 생각지도 않은 여행이었다네. 친구(은행) 두 놈들이 가자 해서 따라 갔었네. 물론 남자 친구들끼리 여횅이라 옆에 여편네들이 없어서 정말 프리한 여행이었지. 매일 밤 술 마신 여행이었다네
셋이서 여행 재미잇엇겟구먼, 혹시 이 친구들 중에 니 상도동에 살때, 항시 옷벗고 지내길 좋아햇던 (나체주의자?ㅋㅋㅋㅋ) 그친구도 끼어잇나? 이름은 기억을 못하네, 내 광수한테 운은 띄워놓앗네 한번 이야기 해보게, 여건이 맞아서 여행 올수 잇으면 좋고, 바빠서 못와도 OK 네, 니 친구들은 머리도 희고 안경도 끼네, 니는 안경도 않쓰나? 술많이 마신게 무슨자랑이라고 (부러워서 하는푸념)! 미주 중앙일보에 전화해서 니 미국 횡단 계획이 잇는데, 글과사진 올릴테니 협찬 해라 말해보면 어떨까? 글도 신문에 올리고 경비도 보태고 일석이조네.
나도 그 친구가 누군지 기억이 안나네. 미주중앙일보에 한 번 제안해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같다. 광수가 갈수 있을까 모르겠다. 같이 기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