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미황사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템플스테이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인생에서도 그렇듯이 길을 걷는데 있어 동행이 있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연재를 시작, 2회에 걸쳐 홀로 걸어왔다. 관광지와 자연공원을 홀로 걷는다는 것은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태작가연하면서 새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길가에서 만나는 꽃과 나비들과 대화하고 카메라에 담아 본다. 온갖 해찰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무섬증은 솔직히 숨겨왔지만 발걸음을 무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평소 땅끝관광지, 문화유적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후배가 자꾸 동행을 요구해 왔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이번 코스는 지난번처럼 순환이 아니라 출발지와 도착지가 10여km에 이르기 때문에 누군가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것, 코스가 정비된 탐방로가 아니라 길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망설였지만 결국 동행하기로 했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달마산 미황사의 창건설화가 어린 미황사 천년숲길을 나서기로 했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여기저기서 걷기 열풍 속에서 천년역사길을 걷고 싶었다. 이 길은 미황사 창건설화가 서려 있다.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 검은 돌을 실은 석선(石船) 한척이 땅 끝에 도착, 검은 돌이 갈라지면서 소한마리가 나와 달마산으로 향해 결국 미황사가 창건하게 됐다는 것이다.
차 두 대로 이동했다. 한 대는 미황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둘이 땅끝관광지 군부대 입구도로변에 주차했다. 땅끝관광지의 석선댓곶을 가장 가까이 가기위해 군부대진입도로를 이용했다. 땅끝석선댓곶에서 출발, 미황사에 도착해 차 한 대로 다시 출발지로 간다는 것이다. 군부대입구에서 왼쪽으로 땅끝탑방향으로 서너개의 쉼터를 지나 목재데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계곡을 따라 10여m내려가면 해안가 초소 인근에서 땅끝석선댓곶 입간판을 만날 수 있다. 작년에 미황사에서 설치한 밋밋한 철제 입간판이다. '이곳은 신라 경덕왕 8년(749)8월12일, 인도에서 1만분의 부처님이 있는 달마산을 찾아온 석선(石船)이 도착하여 배를 댄 곳이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세문장의 설명만이 담겨 있다. 작년 이맘때 우연히 이 입간판 설치작업을 도와준 일이 있어 감회가 새롭다.
입간판을 걸어 한 컷 촬영한 후 오늘의 정상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땅끝관광지 탐방로를 벗어나 군사도로를 1.5km걸으니 땅끝오토캠핑리조트에 도착했다. 캠핑장에는 벌써 피서객들로 꽉 찼다. 송호해변에도 피서객들이 조금씩 눈에 띠기 시작했다. 아스팔트길을 걷는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새록새록 생겨날 즈음 동행이 제안을 해 온다.
어차피 이 무더위에 포장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무리다. 숲터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멘트 포장과 파쇄자갈이 깔린 임도인지라 생각해 보라. 미황사측도 천년숲길을 걷는 일정을 마련할 때 일부구간은 차량이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걷다보니 두사람의 사이가 냉기가 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땅방울은 이미 등산복바지를 적시고 있다. 하는 수없이 점심을 하면서 생각해보자고 한발 물러섰다. 결국 임도를 걸어야 하는 일부구간을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 구간은 삼남길과 같이 간다. 그러나 홀로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코스다. 이정표나 안내판도 아직 부족하다. 삼남길 리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지만 한참을 멈춰서 두리번거려야 찾을 수 있다. 임도는 풀이 많이 자라 승용차로는 이동하기 힘들 정도다. 다행해 지프형인지라 별 무리없이 일부 구간을 이동할 수 있다. 내리쬐는 땡볕아래 왼쪽으로 송지면소재지와 송지앞바다가 한눈에 들어 온다. 임도 개설당시 벌목으로 인해 나무 그늘이 없어 무더위를 더 느낄 수 밖에 없다. 도보와 차량이용을 번갈아 가면서 송지면 마봉리 약수터에 도착했다. 시원한 약수물이 스텐레스 파이프를 통해 쏟아졌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물맛이 꿀맛이다. 벌써 다 마셔버려 배낭에서 쓰레기취급당한 물통에도 생명수를 가득 채웠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해야 한다.
시멘트포장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왼쪽으로 넓은 비포장임도를 만났다. 큰바위 세 개를 놓아 차량통행을 막아 놓았다. 이 임도가 바로 지난 4월 산림청이 임도를 개설하다가 미황사측의 항의로 중단한 막개발의 현장이다. 이 임도개설공사로 천년숲길이 훼손됐던 것이다.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 대형바위로 찻길을 만든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임도변의 일부 나무에는 공사에 필요한 흰색 페인트 표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막개발은 우리의 중요한 자연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을 일순간에 사라지게 한다.
중단된 임도 끝부분을 200여m 남겨두고 오른쪽으로 천년숲길로 들어선다. 다행이 막개발에서 벗어난 곳이다. 여기서부터 명실상부한 숲길이 시작된다. 숲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무더위를 달래준다. 서로 교행하기에도 힘들정도로 비줍은 숲길이지만 시멘트 임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감이 드는 길이다. 오로지 사람들의 답압으로 만들어진, 선조들의 삶과 나뭇잎으로 다져진 그런 천년숲길인 것이다. 이미 도솔암을 지났다. 오른쪽으로 달마산의 마루금을 두고 동북방향으로 올라가는 형국이다. 도솔암은 달마산 산행코스때 가 볼 계획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대규모 너덜지대를 만난다. 마치 채석에 야적해 놓은 석재처럼 바위들이 쌓여 있다. 숲길은 하단부를 통과한다. 이 너덜지대가 마봉리 임도와 미황사사이의 절반정도로 알려져 있다. 사실은 반을 훌쩍 넘은 거리지만 걷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다지고 걷는 데 좋을 듯 싶다. 숲길인지라 야생화도 여기저기서 자신을 봐달라고 손짓하는 듯 하다. 하늘을 향해 피는 하늘 말나리, 잎이 우산모양인 우산나물, 바위나 돌사이에서 자라는 바위채송화, 이미 꽃이 지고 씨앗들이 머리를 풀어 헤친듯한 엉겅퀴.
부도전과 부도암이 가까워질 무렵 동행이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낸다. 소나무위에서 청설모가 한참 식사중이다. 몇 컷 촬영하는 사이 나뭇가지가 무성한 꼭대기로 몸을 숨긴다. 미황사는 부도전이 유명하다. 천년숲길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 문양들이 특이하다.
부도전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드디어 미황사에 도착한다. 미황사는 눈 밝은 사람에겐 볼거리가 많다 한다. 대웅전 돌받침의 문양이 용이 아니라 게 형상이다. 위엄과 권위의 상징인 용이 아니라 정감이 더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달마산 기암괴석을 마치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대웅전이 인상적이다. 비록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씨였지만 하늘만큼은 차가울 정도로 파란색이 짙어만 간다.
다시 미리 주차해 놓은 차를 이용, 또 다른 차를 찾아 나섰다. 이 지역에서도 밭일 하던 90대 할머니가 폭염으로 변을 당했다는 라디오뉴스가 흘러 나왔다. 동행을 고집, 큰 도움을 준 후배가 라디오볼륨을 올리면서 입가에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놀리는 듯한 시선을 애서 피해 오랜 장마에서 벗어나 햇볕을 반기며 훌쩍 자란 밭작물이 스쳐가는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첫댓글 초등학교 다니때 가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