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사
현재까지 이곳에 어떤 사찰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사찰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사찰 경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석불입상을 통해 고려시대 이곳에 사찰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사찰내의 전언에 의하면 현재 사찰 경내 이외에도 사찰 진입부등에서 사찰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기와편 등이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논과 밭으로 개간하고 흔적이 사라졌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한때 이 사찰을 천광사라고도 불렀다고 전하지만 이 역시 명확한 자료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현재의 광덕사는 사찰이 위치한 지명을 따라 광덕사라고 칭했다고 한다.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언제 폐사가 이루어졌는지 역시 자료가 부족해 알 수 없다.
이후 1949년에 이묘련 보살이 현몽과 더불어 석불 옆에 3간의 초암을 짓고 절을 중창했다. 이때 현재 사찰의 명칭인 광덕사로 불렀다고 전하다. 사찰 내에 위치하고 있는 법당은 상량문에 의하면 1959년 기해년에 상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법당은 아마도 이 보살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
광덕사 안내석
광덕사 전경
광덕사 전경
광덕사 요사
광덕사 석불입상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75호 (지정일자 1980년 11월 13일)
광덕사의 한 중심에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석불입상이 위치하고 있다. 석불입상은 법당과 더불어 남동향을 바라보고 위치해 있다.
이 석불은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다른 고려시대 석불에 비해 그 비례가 뛰어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4.8m이며 하부의 대좌를 제외한 불상 만의 높이는 4m이다.
이 석불입상은 정면만을 강조해 표현했으며 배면에는 별다른 조각 없이 마무리 했다.
석불 하단에는 따로 대좌가 만들어져 있으며 대좌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연꽃무늬는 대담하게 커다란 연잎을 표현하고 있다.
석불의 수인은 심하게 마모되어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우나 오른손은 가슴에 위치시켰고 왼손은 배부분에 위치시켰다. 석불의 복식은 통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강하게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다른 고려시대 불상과 마찬가지로 머리 부분이 크게 표현되어 있으며 정수리에는 육계가 크게 표현되어 있다.
광덕사 산신각
광덕사 산신각
대적광전의 정면 주련.
내용은 “석문의범(釋門義範)”의 대례참례(大禮懺禮)의 내용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螟眼睫起皇州(초명안첩기황주)
사마귀 눈동자 속눈썹에 황제가 사는 마을 일어나니
玉皇帝侯次第投(옥황제후차제투)
옥황과 제후들이 순서대로 늘어앉은 세계가 벌어지네.
天子臨軒論土廣(천자 임헌론토광)
천자가 헌에 나아가 국토가 얼마나 넓은가를 논하니
太虛猶是一浮漚 (태허유시일부구)
오히려 태허를 가리키며 하나의 뜬 물거품이라.
광덕사 요사와 대적광전
광덕사 찾아가는 길
광덕사는 괴산군에 위치하고 있으나 진천보다는 증평에서 훨씬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증평은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다.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을 통해 증평에 진입한 후 괴산 및 음성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계속 따라 3km 가량 차를 몰면 괴산방향과 음성방향으로 국도가 갈라지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음성방향으로 약 2km 정도 달리면 광덕사거리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도안농공단지방향으로 우회전 한 후 약 800m 가량 지나 왼편으로 작은 포장로가 나타나게 된다. 이 포장로를 따라 약 300m 지나면 왼편으로 작은 길이 나타나고 이 길 끝에 광덕사가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