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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 궁궐 | 즉위공간 | 즉위왕 | 비고 (인원) | |
개경 | 수창궁 | 강안전* | 태조(개국), 태종(선) | 2 | 2 |
한양 | 경복궁 | 근정전 | 정종(선), 세종(선), 세조(선), 중종(반) | 4 | 9 |
근정문 | 단종(사),성종(사), 명종(사), 선조(사), 경종(사) | 5 | 8 | ||
창덕궁 | 인정전(처마) | 연산군(사) | 1 | ||
인정문 | 효종(사), 현종(사), 숙종(사), 영조(사), 순조(사), 철종(사), 고종(사) | 7 | |||
창경궁 | 태화문** | 인종(사) | 1 | 2 | |
수강궁 중문 | 예종(선) | 1 | |||
경희궁 | 숭정문 | 정조(사), 헌종(사) | 2 | 2 | |
경운궁 | 행궁서청 | 광해군(사) | 1 | 4 | |
즉조당 | 인조(반) | 1 | |||
태극전 | 고종황제(개국) | 1 | |||
돈덕전 | 순종황제(선) | 1 | |||
기타 | 영릉대군사저 | 문종(사) | 1 | 1 | |
계 | 28 |
주 1) 등극방식에서 (선)은 선위, (사)는 사위, (반)은 반정임
주 2) 창경궁은 수강궁자리에 지은 것으로 처음 광연정廣延亭이 있던 자리에 수강궁을 지었고, 태조(1408년)와 세조(1468년) 승하한 곳이다. 이후 성종 때 창경궁이 건설되었다.(조선왕조의 궁궐건축과 정치/237쪽)
주 3) 연산군이 인정전(처마)에서 즉위했다는 기록은 연산 즉위년(1494년) 12월 29일 4번째 기사에도 나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근시가 대보를 받들고 앞서고 종친 문무백관이 차례로 나갔다. 왕(王)이 인정전(仁政殿) 처마 밑에 자리 잡고 의례대로 백관의 하례(賀禮)를 받고서, 여차(廬次)로 돌아가서 면복(冕服)을 벗고 도로 상복을 입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이 맞는 것인지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종때 만들어진 오례의에 의하면 근정문에서 즉위식을 하도록 하였고 이에 따라 세종 이후 사위를 한 문종, 단종, 예종, 중종이 정전의 문에서 즉위하였고, 사위의 경우 정전의 문에서 즉위하는 것이 조선 내내 이어져 왔으므로 연산군도 그에 준하는 예법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 아닌가 한다.
* <즉위식, 국왕의 탄생>에는 태조와 태종이 즉위한 곳을 ‘강안전(터)’라고 하였는데 본인이 실록을 검토한 결과 ‘강안전’이 맞는다는 판단에서 ‘강안전’이라고 고쳤다. 태조의 즉위에 대한 내용에 대해 태조실록 1년 7월 17일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이날에 이르러 태조가 마지못하여 수창궁(壽昌宮)으로 거둥하게 되었다. 백관(百官)들이 궁문(宮門) 서쪽에서 줄을 지어 영접하니, 태조는 말에서 내려 걸어서 전(殿)으로 들어가 왕위에 오르는데, 어좌(御座)를 피하고 기둥 안[楹內]에 서서 여러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았다. ....
실록에는 태조나 태종의 즉위 때 수창궁에서 했다고 하였고 특히 태조의 경우 강안전이라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殿’에 들어갔다고 하므로 건물은 ‘강안전’일 수밖에 없다. 태종은 정종 2년 11월 13일 즉위하였는데 이후 정종 2년(1400년) 12월 22일 수창궁이 소실되었다. 이후 강안전이 기록에 나오는 것은 태종 1년 1월 1일 기사에서 ‘강안전터’에서 하례를 하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수창궁이 불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태조나 태종은 수창궁이 소실되기 전 즉위하였으므로 ‘강안전’에서 즉위한 것이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 원래 ‘명정전(처마)’로 되어 있던 것은 앞 설명에 의거 ‘태화문’으로 수정하였음
참고문헌
즉위식, 국왕의 탄생/김지영 외/돌베개/2013
동궐/고려대박물관, 동아대박물관/2012
조선왕조의 궁궐건축과 정치/이강근/
조선왕조실록 사이트/http://sillok.history.go.kr/
첫댓글 경종의 즉위식은 경덕궁으로 알고 있는데..요?
景宗 卽位年 6月 13日
숙종 46년 6월 13일
○ 상복을 입다
○ 복제 절목과 백관 복제 별단
○ 예조에서 입계한 사위 절목 단자를 받아들이다
○ 경덕궁에서 즉위하다
○ 즉위하여 반포한 교서
○ 공제 전에는 모든 공사를 출납하지 말도록 하다
○ 숙종의 병에 약을 제대로 쓰지 않은 의관의 죄를 다스리게 하다
○ 이이명·이조·박성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총호사가 자신의 릉을 인조의 릉에 따르라고 한 숙종의 유교를 아뢰다
肅宗 65卷, 46年(1720 庚子 / 청 강희(康熙) 59年) 6月 13日(戊申) 2번째기사
사시에 세자가 숭정문에서 왕위 계승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