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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 레드 쿠르즈선에서 피오르드 해안을 관조한 나는
천주교 주교님의 모자와 같은 형상인 마이터봉과 하직하고 귀로에
올랐다. 마이터봉 앞엔 산의 형상이 사자와 닮았다는 사자산이 있었
는데 가까이서 보니 산 전체의 모습을 볼수 없어 과연 사자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버스로 되돌아가는 도중, 난 키위새는
아니지만 날지 못하는 이름을 알수 없는 이 남국의 새를 디카에 담았다.
<CHASM RIVER>
퀸스타운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른 길이 없이 우리가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하는 외길이었다.
호머터널에 도착하기 전의 캐즘강을 스처갔다.
풍화작용으로 거대한 암석이 구멍이 뚫려 그 구멍사이로
만년설이 녹아흐르는 원시의 절경을 품고
도도히 흘러가는 청담옥류였다.
<CHRISTY FALLS>
가는 곳곳마다 설산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수천미터 높은 정상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설움이 극에 달했는지
물줄기가 때로는 거대한 폭포수로
떨어져 내리고
또 다른 석산에서는
산의 정상에서부터 산자락 끝까지
실타래와 같은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하늘은 푸르고
설산은 희고도 흰데
석산의 나무들은 생명력이 살아 넘치는
짙푸른 초록빛이었다.
<ROAD SLIP>
길은 험하고 험했다.
산사태가 나 길이 허물어진 곳도 있어 여기저기
안전운행을 경고하는 표지판이 많았다.
<WINDY ROADS>
우리 일행은 귀로에 세계 최초로 야생사슴 목장을
인간이 경영한
MOSSBURN 마을에서 버스를 세웠다.
귀로의 퀸스타운까지 가기 전
유일하게 버스가 쉬는 휴게소였다.
이 조그마한 휴게소에는 60대 후반의
한국인이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는 남섬 교포사회에서 유명인사였다.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 이런 가게을 하며 목가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이 가게는 얼마 정도면 살수있냐고?
그가 말했다. 난 지금 쉬고 싶은데
만약 당신같은 사람이 하겠다면 그냥 주겠다고
여기 와서 살라고 한다.
같이 낚시도 하고 사냥도 하며
말벗고 하고 친구로 지내자고...
나는 껄껄 웃었는데
곧 생각을 바꿨다.
너무 적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연조건이 천국이라 할지라도
혈혈단신 이런 곳에서 살려면
아마 도인의 경지에 들어서지 않으면
쉽게 적응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한국인은 남섬에서 권박사로 통하는
전력이 한의원 원장이었고,
가수 조영남하고도 친하고
또 돈도 많고 자식들이 다 잘 된
그런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그의 얼굴 어딘가엔 노년의 외로움이
물씬 묻어있는 듯 하였다.
그렇지만 비록 빈말일지라도
그분이 고마워
난 이 가게에서 막내조카 은지에게 줄
키위새 인형을 하나 사주었다.
버스에 올라 퀸스타운으로 향하는 도중
가이드가 이 MOSSBURN 마을과 한국인의
인연을
이야기 해 주었다.
★★★★★★
★1970년대 초 한 원양어선 선장인 한국인이
밀포드 사운드 근처에서 배가 기관고장을
일으켜 그는 배가 수리될때까지
3개월 이상을 근무도, 귀국도 하지못하고
배에서 그냥 빈둥거리며
지내야 할 형편에 처했다고 한다.
그는 무료하게 허송세월하기가 싫어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이어서
그는 일본인 관광객들 틈에 끼워
남섬 일대를 여행하다
이 MOSSBURN 마을에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쓰레기 처리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녹각이었다.
그는 이 녹각을 본 순간 무릎을
쳤다고 한다.
그는 목장주들을 만나 자기한테 이 녹각을
그냥 줄수 없느냐고 했더니
목장주들이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당시만 해도
어서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직을 미련없이
던지고 본격적으로 녹각을 수집하여
수십콘테이너를 경동한약시장에
풀어놓으니 경동시장이 난리법석이 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짭짤하게 돈을 제법 벌었는데
경동시장측에서 녹각보담 녹용을 보내달라고
거듭 애원하여 그는 녹용수출을 준비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사슴의 뿔은 숫놈들이 자웅을 겨루려고
준비하고 가다듬는 무기이다.
사슴은 매년 새뿔이 돋게 되는데
45-50일까지 자란 뿔이 바로 녹용이다.
이 기간을 넘기게 되면 사슴의 뿔은
발정기의 숫놈들이 암놈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
발정기가 끝나면 이 녹각은 그대로 떨어져 나가
폐품처럼 이곳에서는
처치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뉴질랜드 정부당국과 협상하여
녹용을 자르게 해달라고 했지만
뉴질랜드 당국에선 녹용이 동양에선
보약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물학대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그럼 당신네 나라에선
양의 꼬리를 자르는 것은 동물학대가 아니냐고 하면서
이 녹용은 75일 이상 자라면 녹각이 되어
아무 쓸모없는 페품이 되니
45-50일 자란 녹용을 잘라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서로 윈윈작전이 아니냐고
설득하면서,
한국에서는 녹용을 자르고 찹쌀을 되게
반죽하여 자른 뿔위에 싸매면
쉽게 지혈이 되고
또 사슴의 뿔은 매년 새로 돋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득하여
그는 마침내 뉴질랜드 정부의
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그는 거상(巨商)이 되어 뉴질랜드 재계의
저명인사가 되었고
개인으로서는 최고의 납세자가 되어 정부의
표창도 받고
크라이스트처치의 대저택에서 사는
남섬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IMF가 터진 후
그 잘 나가던 회사의 경영권을
미국자본에 팔아넘겼다고 한다.
해외여행시 이처럼 유망한 아이템을 발굴하여
초일류 상품을 개발한다면
좋은 비지니스를 펼칠 수 있으련만...
그러나 그분의 앞선 식견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처럼 뉴질랜드의 녹용산업이
이처럼 단단한 반석위에
오를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북섬에서 가이드의 안내로
사슴의 녹용을 만져보니
그 녹용의 외피가 마치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그런 연유인진 몰라도
뉴질랜드에서는 녹용 자체를 바로 벨벳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사슴의 녹용은 마치 죽순처럼
쑥쑥 자란다고 한다.
45-50일 동안 자란 녹용이
가장 좋은 약효를 지니며
최대 75일 까지 자란 녹용도 약으로 쓰이지만
약효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슴은 쓸개가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사슴피가 피를 자체정화시키는
능력이 있어
쓸개가 없다는 것이다.
사슴은 호랑이한테 쫒길때,
그 순발력과 속도가 뛰어나
결코 호랑이는 사슴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슴은 뛰다가
자기가 호랑이한테 쫒기고 있다는 사실을
곧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슴은 뛰기를 멈추고 서있다가
호랑이한테 잡아먹힌다고 한다.
쓸개 없는 놈이라는 말뜻을
난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린 장장 5시간의 여행끝에 퀸스타운의 와카티푸 호수에
도착하였다.
와카티푸 호수는 그 둘레가 84Km이고
네개의 강과 연결되어 있는
남섬 최대의 호수였다.
와카티푸 호수는 8분에 한 번씩
그 심장부에서 물이 용솟음친다고 한다.
우린 악마의 계단 앞에서 버스를 멈추고
잠시 푸르고 광대한 호수앞에서
머리를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가이드한테 왜 악마의 계단이라고 부르냐고 물었더니
이 계단밑이 수십길 낭떨어지이고
수심이 390m여서 그렇게 불린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이어 말했다.
이곳 남섬의 보름달은 한국의 보름달보다
서너배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언젠가 자기가 술 한 잔 하고
이 와카티푸 호수 악마의 계단길을 운전하며
보름달을 가슴에 안고 달리는데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적막한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커다란 쟁반같은 둥근달을 바라보며
홀로 운전하면서
이역만리에서 고향을 그리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그는 분명히 이 악마의 계단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굴러떨어져
행방불명이 된 자동차가
수십대 수장되어 있을거라고 말했다.
수심이 390m나 되니
그 자동차는 영원히 건져올릴 수 없을거라고....
와카티푸 호수의 끝자락에서
난 좁은 협궤의 기찻길을 보았다.
옛날 협궤열찻길을 타고 오가며
이 땅위에 이민역사를 써나간 뉴질랜드인들의
삶과 애환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있는 협궤었다.
마치 영사기를 돌려 되돌아 보는 듯한
아련한 옛풍경이 내 시야에 펼쳐졌다가
이내 사라져갔다.
남섬은 상수도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 청정한 물이 무한대로 있으니
언젠가는 뉴질랜드는 지구상에
가장 많은 청정수를 보유한
자원대국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퀸스타운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글자 그대로 주목할만한 리마커블산의 산세가 웅장하기
이를데 없었다.
퀸스타운은 리마커블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와카티푸
호수를 임수(臨水)로 자리잡은 가히 영국여왕도 살만한
천하명당의 명품도시였다.
호반의 도시가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이 지구상에 어디
있으랴!
리마커블산을 휘덮고 있는 긴 흰구름이 산의 중턱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과연 천하제일경이었다.
리마커블산이 자신의 그림자를 이 호수위에 드리울때 분명
이 긴 흰구름도 함께 따라와 호숫물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선경을 그려내리라!!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의 길이 1,300km에 걸쳐 펼처져
있는 이 긴 흰구름은 동쪽에 있는 호주쪽에서 불어오는
습하고 더운 기류가, 남극에서 불어오는 한냉성 기류와
이곳에서 상충작용을 일으켜, 구름속의 수증기가 무거워져
구름이 낮게 내려앉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뉴질랜드 어디에든 이 길고도 흰 구름이 전 국토를
휘감고 있다는 사실, 이 자체 하나만이라도 얼마나 신비로운 볼
거리인지를..........
쿠페가 감격에 겨워 외친 긴 흰구름은 지구 마지막 빙하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어느 누구나 영탄해 마지 않을 수 없는
신비로운 기(氣)를 간직하고 영생불멸의 삶을 살아온 운신(雲神)임에
틀림없었다.
우린 선착장에서 Z-보트를 타고 리마커블산을 향하여 나아갔다.
리마커블산 중턱에 드리워진 구름의 그림자가 그 거대한 산의 가
슴을 덮고 있는 풍광아래, 호수의 물빛은 이 지상에서 가장 청정한
푸르고 마알간 빛이었다. 호젓히 날아가는 물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탄 Z-보트는 쾌속으로 달리다가 잠시 보트의 캡틴이
운행을 멈추더니, 우리를 보고 검지 손가락을 뱅뱅 돌렸다. 360도
급회전을 하겠다는 수신호였다.
우리 모든 일행은 곧 비명소리와 환호가 엇갈리는 웃음속에서
보트가 360도 급회전하는 쾌감을 여러차례 맛보며 보트놀이를 즐겼다.
호수의 석산을 깍아 건설중인 호텔신축 공사장을 지나니 왠 검은
소 두 마리가 호숫가에 나와 한가롭게 목을 추기고 있는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