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자태를 닮은 바위-
서석지 연못에서 또하나 주목되는 것은 연꽃 사이로 보이는 수십개의
바위들이다.
석문 정영방 선생은 이 바위들이 문채가 있으면서도 외형이 소박한 것이
선비의 자태를 닮았다 해서 서석이라 불렀다.바위마다 특별한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탁영반.선유석,통진교,난가암,상경석,옥계척,화예석,희접암,
와룡암,어상석,봉운석, 상운석,낙성석,분수석,기평석,관란석, 조천촉,수륜석,
쇄설강 등이다. 바위에 붙여진 이름들은 선생이 평소에 생각 했고 또 알고
있었던 유교와 신선사상에 연관된 개념들에서 나왔다.
탁영반은 정원 북쪽에 있는 서재인 주일재에서 볼 때 사우단 왼쪽 모서리
가까이에 있다. 이 바위는 연못물이 불어나면 잠기고 줄어들면 수면 위로
드러난다. '탁영반'이라는 이름을 이 바위에 적용한 것은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탁영'은 말 그대로 갓끈을 씻는다는 뜻이다.중국 전국시대 초
나라의 시가를 모은 "초사"의 '어부편'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도의와 정의가 지배하는 올바른 세상을 말하는 것이고,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세상이 올바를 때면 나아가 벼슬을 한다는
뜻이다.창랑의 물이 흐리다는 것은 도덕이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을 비유한
말이고,탁한 물에 발을 씻는다는 것은 풍진에 찌든 세상을 멀리하고 숨어
산다는 의미다.
난가암은 탁영반과 관란석 사이에 있는 비교적 큰 바위다. '난가'는 '썩은
도끼자루'라는 뜻이다.신선이야기 중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진나라
때 왕질이라는 나무꾼이 있었는데.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우연히 바둑을
두는 두 동자를 만났다.바둑을 보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그사이에 도끼자루가 썩어버렸다.마을로 내려와 보니,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죽어 없어졌더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의 상식과 다른 신선세계의 환영에 관한 얘기다.
난가암 옆에는 바둑판 형태의 기평석, 신선이 노는 바위라는 뜻의 선유석,
신선이 사는 선계를 왕래하는 다리라는 뜻의 통진교,상서로운 구름이라는
의미의 봉운석과 상운석 등의 바위들이 있다.이런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은
난가암의 의미를 강조함과 아울러 정원을 선경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보여진다.
이밖에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 위의 서울, 즉 백옥경을 상징하는 옥계척,
꽃술을 말하는 화예석 등다양한 이름의 바위들이 그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탁영반 옆에는 희접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이것은 장자의 '나비꿈'이야기
와 관련이 있다.옛날 장자가 낮잠을 잠깐 즐길 때, 나비 꿈을 꾸었는데,
훨훨 날아 다니는 나비가 되어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일까. 그 황홀한
경지에서 나비와 장자 사이에는 주객의 구별은 없었다. 장자의 이런
경지를 동경하는 마음에서 석문 선생은 바위 이름을 희접암이라 한
것이다.^^
-사우단과 은행나무-
주일재 앞에는 연못 안으로 들여 쌓은 네모난 석단이 있는데 이를 사우단
이라고 한다.이곳에 석문 선생은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었다.
흔히들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일러 사군자라고 한다.그들의 고아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가 고결한 군자를 닮았기 때문이다. 한편 소나무.
대나무.매화를 일컬어 세한사우라 하는데,여기에 국화를 포함시켜 사우라
부르기도 한다.
선비들이 이들을 특별히 사랑한 까닭은 아름다운 자태와 은은한 향기
때문이다.그리고 자신들이 흠모해 마지 않던 옛 성현들이 사랑했던 초목
이기 때문이기도 했다.석문 선생도 서석지에 이 네가지 초목을 심고는
사우단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옛 성현들은 저마다 각별히 사랑한 초목이 있었다.조선 시대 때 대표적인
충신으로 인식되었던 초나라 굴평은 난초를,동진의 시인 도연명은 국화를,
북송의 시인 임포는 매화를,동진의 명필 왕희지는 대나무를 특별히 사랑
했다.
그들의 사군자에 대한 생각은 미묘했고,사군자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자신이 즐거워하는 바를 남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정영방 선생이 사우단을 조성하고 거기에 사우를 심은 것은 옛 성현과
정서를 공유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눈을 돌려 남쪽 담 모퉁이를 보면 우람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선생이
이 마을에 처음 들어 왔을 때 심은 것이라면 나이가
400살이다. 이 은행나무 아래에 행단이 있다. 정원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은 예를 우리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서울 성균관 대성전과 전국 도처의
향교.서원 등 유교 교육 기관이나 사당 마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 유학자들은 공자를 유교철학의 비조로 추앙했고,그의 학행과 덕행은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면서도 조선의 선비들은
항상 공자를 흠모하여 가까이하기를 염원 했다.행단은 일반적으로 공자가
강론한 장소를 상징한다.
그것은 공자가 제자들을 위해 은행나무 아래서 강론했다는 고사와 관련돼
있다.
서석지 주인과 그를 찾아온 벗들은 이 은행나무를 보고 공자의 모습을 떠
올리고 학행에 게으름 없기를 스스로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서석지의 은행나무는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공자에 대한
흠모의 정과 학문에 정진하는 유학자들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고아한 한국적 건축미와 성리학적 정신세계가 투영된 경정과 주일재,
군자의 상징인 맑고 향기로운 연꽃, 출처의 도리와 신선세계에 대한
향수가 반영된 서석들,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사우단의 송.죽.매.국,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강학하는 공자의 환영을 떠올리게 하는 은행나무,
이 모든 것이 서석지정원이라는 하나의 공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결국 서석지 정원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즐기는 정원이 아니라 보면서
느끼고, 느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수양하는 은둔자의 생활공간이라
할 수 있다.^^
-군자의 모습.연꽃-
서석지에 있는 못과 연꽃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그냥 못이라 하지 않고
연못이라 하는 데에 이미 그 뜻이 드러나듯이 연못은 연꽃을 심고
감상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송나라 성리학자 주돈이는 '애련설'이라는 글에서 연꽃을 이렇게 칭찬
하고 있다.
"나는 특히 연꽃이 진흙에 자라면서도 그에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은 것을 사랑 한다.줄기 속은 비었고,
겉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 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다.
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일한 것이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것이요,
연꽃은 꽃 중의 군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름이면 경정 앞 연못에는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석문 정영방 선생이 그의 정원에 연꽃을 심은 것은 그것이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군자는 덕성과 교양을 두루 겸비한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이다.빈천과
외형을 초월하여,내유외강하며,세속을 멀리 떠나 있어도 그의 정신적
향기가 세속을 덮는다.선비들은 이런 군자의 모습을 연꽃에서 발견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연못을 '군자못'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중기의 선비 허목의 문집에도 '샘물을 끌어대어 세 못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짓되 제일 위쪽 못을 관어지,그다음 못을 군자지, 또 그다음 못을
열물지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성리학적 상징의 집합 서석지 정원 '허균' 글을 참고하였습니다.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