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들었던 입시를 어렵사리 끝낸 직후 몇몇 악동들이 모여서 수작을 벌였다.
원래 공부 안하고 선생님 애 먹이던 친구들이 더욱 은사의 정이 그리운 법이다.
마침 학교 인근에서 남의 문간방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 댁을 초저녁에 급습하기로 모의를 했다. 어떤 친구 말이 신혼부부가 득남
불공을 올리는 시간은 한마디로 시도 때도 없다는 것이다. 밥상을 들고 식사를
할려고 마주 앉았다가도 전깃불이 튀기기 시작하면 웃목으로 잽싸게 밥상을 밀어
놓곤 지체없이 열과 성을 다해서 정성스레 득남불공을 올린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란 생각이 들어서 해 떨어 지기 무섭게 와하고 몰려 들어
가니 사모님은 부엌에서 식사 준비 중이셨고 선생님은 방에서 티비를 보고 계셨는데
큰 오봉에다 감자깡,새우깡,죠리퐁 등등을 수북하게 부어 놓고는 연신 입으로 털어
넣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선전에 나오는 말이 맞기는 맞어.
아무것도 묵고 접은 생각이 안 들때도 입에 들어 가고, 뭔가가 묵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기 더욱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 들고 간 정종 두어병이 순식간에 없어 지면서 몇 몇은 화장실을 들락거리
면서 궥 궥 거릴 즈음 되자 선생님께서 용짜 얘기를 꺼내신다.
예상대로 전기대에서 여지없이 쓴맛을 본 용짜가 후기대 입시를 써 왔는데 약학과
를 1 지망으로 써 왔드란 것이다.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돌려 보내니 며칠 후에 새로
원서를 써 온 용짜의 1 지망이 글씨 가정학과라서 그 삐딱한 용짜의 의도를 알아 챈
선생님께서 용짜의 손을 부여 잡고 얌마 니가 만일 가정학과에 입학을 했다 손 치드래도
닌 학교 몬 다닌다. 와 그런줄 아나? 화장실이 엄써서 닌 오줌을 절대로 눌수가 없는
기라 임마 하면서 돌려 보냈더니 하룻밤을 지내고 나선 아예 집으로 찾아 왔는데 손에는
정종 한빙하고 담배 한보루 들고 왔더란 것이다.
웃목에 꿇어 앉아 무언의 시위를 하는 용짜를 보다 못해서 이왕 너가 들고 온 정종이니
함께 마시자면서 권커니 잔커니를 몇번 하다 술이 얼큰해 지자 이 넘의 용짜가 슬며시
선생님의 담배를 한대 빼서 입에 무는게 아니던가? 그래서 선생님께서 황급히 용짜의
손을 부여 잡으며 용짜야 내 얼굴을 똑 바로 쳐다 봐라 안직은 내가 니 담임 선생님이다.
졸업하고는 맞담배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지금은 안된다고 통사정을 하면서 집으로
돌려 보내고 본인의 의지가 저러하니 떨어져도 후회는 없을것이란 생각에 약학과로
원서을 써 주었는데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합격을 해 버린 것이다.
왜소한 체격에 큰 눈과 약간 위로 밀고 올라 간 윗입술과 들창코가 특징인 용짜가 관심
을 가지는 유일한 일은 오직 키타를 뜯는 일이다. 어느 날 우연히 학교 근처에 사는 용짜
네 집으로 찾아 가니 어무이가 내다 보지도 않고 건넌방을 가르키신다.
큰 방에 엘피 레코드 판을 한가득 쏟아 놓고는 연신 이곡 저곡을 틀어 제키는데 아무래도
신 들린 넘 같았다.
약대를 가면 박카스 같은 걸 잘 파는 상술을 배우는 줄로만 알았던 용짜는 화학이 주 과목
인 약대에서 도저히 진도를 맞출수가 없어서 만부득히 한해 휴학을 하면서 재수 학원에서
일년간 화학을 새로 배워서 어렵게 약대를 졸업한 용짜가 대로변에 커다란 공터가 있는
약국문을 비시시 밀고 나오는 순간에 갑짜와 내가 차를 들이 밀었다.
변해도 엄청 많이 변하였다. 체격도 엄청나게 커졌고 머리통도 두배나 더 커진것 같았는데
귀 부분에서 부터 시커먼 구렛나루 수염을 길러 놓으니 처음엔 우리 둘 모두 제대로 알아
보지를 못 하였다.
가관인 것은 약국 좌대에 거만스레 걸터 앉아선 찾아 온 환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내가 준 약 잘 묵었닝교? 시간 맞추어서 제때 약 잘 드시면 틀림없이 그 병 나을끼라예.
시골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면서 머리를 조아리신다.
면단위 시골인지라 말 동무가 없는 용짜는 학창시절처럼 약간의 자폐 현상인지는 모르겠으
나 부인의 말에 의하면 약국 문 닫으면 음향기기로 도배를 한 자신의 방에 들어 가선 밤이
이슥해서야 나오고 일주일에 한번은 여지없이 영천으로 가서 혼자서 이집 저집을 돌아 다니
면서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고 오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부인을 만난 것도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결혼상담소를 하는 어머니 친구분이 중
매를 했다는 것이다.
얼마 후에 용짜는 간다 온다 소리도 없이 서울로 약국을 옮겨 버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
면 자식들 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하였다. 천호동 어디에서 꽤 많은 돈을 벌어 들인 용짜는
명성에 걸맞게 또 다른 기행을 한다. 기리스탄이 되어 외국으로 선교사업을 가 버린 것이
다.
이곳에서 네비게이션의 추적도 끝이 나고 만다.
용짜와의 가장 큰 추억은 여름방학 때 약간의 유전만 갖고 간 여행 겸 캠핑이었는데 어느
지방도시의 번화가에서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를 다 떨어진 비닐 우산과 낡은 멕고 모자만
쓰고 어슬렁 거리면서 대범하게 담배를 빼 물고 촞점없는 큰 눈을 멀뚱거리며 다니던 용짜
가 교육위원회 선생님이란 분에 걸렸던 일이다.
이미 여러 차례 정학 조치를 받은 용짜에겐 참으로 낭패스런 일이었다.
물론 해결은 내 몫이었다.
서부영화에서 달리는 포장마차 뒤를 인디언들이 활을 쏘면서 추격을 한다. 계속 도망을 가
다 보면 끝내는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몰살을 하게 된다. 가장 좋은 반격은 갑자기 마차
를 돌려 인디언들의 중심을 향하여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방법이다. 군사 용어로 종심돌파란
것인데 적의 심장 부분이 의외로 가장 취약하고 방심을 하는 곳이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 그 선생님을 대 했는지는 현재의 내 사회적인 위상과 명성 때문에 차마
글로 쓸 수가 없다. 상상에 맡길 따름이다.
어느 아파트 맨 꼭대기에 붙은 내 오두막에서 난 항상 탄천을 내려다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흐르는 개울물 위로 자유롭게 비상을 하는 여러 무리의 철새떼를 보기 위함이다.
저 새들은 어디에서 와서 또 어디로 가기 위함일까?
우리네 인생도 저 강물과 철새들처럼 한순간 빤짝 머물다 소리 소문도 없이 가고야 말터이
다.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도 어느새 남의 일처럼 되어 어느 한적한 산속에서 조용히 그 일생을
마치고 들어 누운 낙엽처럼 세인들의 뇌리에서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마냥 그립고 아쉬울 것 같은 우리네 인생사가 이처럼 무상한 것이라면 내가 자빠져 누운
관 뚜껑에 못 박는 소리를 들으면선 또 얼마나 땅을 치고 머리를 박으면서 후회를 할 것인
가?
고집멸도,탐진치,오욕... 부처님의 말씀은 첫째도 둘째도 집착과 탐욕을 버리고 지글거리는
욕망의 불길이 소멸된 니르나바를 성취하란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어제는 법당에 올라 금복주 영감처럼 젊잖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오랜 시간 기도
에 매진하였다. 제불보살님들의 가피로 난 어제 내 본연의 모습을 보고 환희에 젖었다.
한마디로 정신을 차렸단 뜻입니다. 구래서 올 한해 꽉찬 해외 로케 촬영 스케쥴을 과감히
캔슬 해 버리라고 탑 매니져에게 핸펀으로 알렸다. 발리섬에서의 항 신해씨와의 베드씬 촬영
만은 차마 어쩌지 못하고 남겨 두라는 말만은 잊지 않고 전하면서 내 전재산 그러니까 지갑
속에 든 구렁이 알같은 거금 삼만구천오백원을 몽짱 복전함에 밀어 넣어 버렸다.
마을 버스 탈 돈이 없어서 집까지 걸어 오는데 날씨가 무쟈 추웠다.
그러한 선근공덕으로 난 또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전나 덥다는 것이다.
불곡산의 화상같은 천진도인 덜삐 합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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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님 글방
용연사 명적암에서의 하룻밤 (종결편).
돌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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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12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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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1절 초등학교 3학년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더군요. 스님 잘계신냐고 이제 아프지 않는냐고....학교선생님과의 인연은 참으로 소중한듯합니다..........
덜삐님 우리도 요즘은 34년전 샘님과 대화를 터고 설레는 나날이었습니다 덜삐님 글 읽으머 항상 고향 다녀온 기분입니다 ..핳ㅎㅎㅎ
불곡산의 천진 도인 돌삐거사님의 글을 보고 문득 얼마전에 열반하신 큰 스님의 법문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봄꽃이 저토록 아름답게 피었지만 이내 져 버리고 말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걸 알면서도 저 꽃의 아름다움이 영원한 것 인양 착각하고 그 아름다움에만 끄달려 정신을 잃어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가을이 되어 잎 지는 날의 쓸쓸함도 알아야 하고 엄동설한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 봄을 준비하는 인고의 지혜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꽃나무도 저토록 절절히 법문을 하고 있건만 우리의 귀는 세상의 악행과 더러움의 소리들만 듣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 봅시다."......라는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었답니다.....
언뜻 스친 인연이었지만......거사님의 글 덕분에 다시 한번 그인연의 고마움을 느끼고 제 마음에 그 가르침을 되색일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왕손님 반갑습니다.. 그날.. 정향사에서 뵈었죠.. (언뜻 스친 인연이었지만..) 그렇답니다. 그렇게 인연지어져 이렇게 공감하고 마음나누니.. 돌삐님과는 오랜(?)사이 지만 말 한번 변변히 못나누고 펜이 되었답니다.
ㅎ.. 친구분들께 위기가 닥칠 시마다 구원병내지는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처럼 찰나에 돌변하시는 변화무쌍하신분이시네요.....복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