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시조 시향제 100주년
2017년 09월 16일 오늘은 우리 시조 시향이 봉행되는 날이다.
매년 양력 10월 03일 개천절날 시향이 봉행되었으나, 09월30일은 토요일, 10월 01일은 국군의날 10월 02일은 임시공휴일, 10월 03일은 개천절, 10월 04일은 추석 10월 05일은 추석연휴, 10월 06일은 대체공휴일, 10월 07일은 토요일, 10월 08일은 일요일, 10월 09일은 한글날이기 때문에 최장 10일을 쉬는 황금연휴이므로 오늘로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일정을 바꾸어 시행함으로 시향에 참여인원이 예전만 하지 않을까?
날씨는 어떨까? 여러 가지 상념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분당에서 아침 08시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갈아타서 회기역에서 내렸습니다. 임하군파 전계표 총무가 메시지로 안내한 대로 마을버스 2번을 놓칠 뻔했는데, 주차장 안내원이 버스를 긴급히 세워 주어서 탈 수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서울이라서 마을버스를 잘못 타지 않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계표 총무가 타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버스에서 전정원 중앙종친회 수석부회장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11시에 시향 봉행이라서 비교적 일찍 도착하여서 회장단과 청장년회원들의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숭인재에 들려서 전인구 장군님께 인사드렸습니다. 2012년에 인사드리고 두 번째로 인사를 드렸는데 기억해 주셨습니다. 종보 원고 제출 문제를 상의하였는데, 마침 중앙종친회 전남표 종보 편집주간을 만나서 명함을 받아 왔습니다.
11시에 가까워짐에 따라 강릉에서 버스 한 대로 한 30명이 올라왔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족보수단 관계로 자주 만났던 전원표씨도 만났습니다. 전원표씨와 함께 임하군파 전영래회장과도 만나 족보수단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능석 전병기 송덕비를 정독하여 보았습니다.
전병기 선생은 정선전씨 채미헌파이며, 1926년 5월 전씨 중앙 종친회 이문동 소재 단소부지 임야 1정9 반 8 묘 기와집 27 칸 대지와 연지 1 좌를 각각 무상으로 양여하여 단소 및 재실건축 등 종중 기본 재산이 형성에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씨중앙종친회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였음을 알고 널리 홍보하여 그 숭고한 뜻을 받들어 종중 번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KBS 전인석 아나운서의 사회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본인은 정선전씨 채미헌파라고 자기소개를 하였습니다.
장학금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전용재, 전현준, 전상훈, 전채리, 전남규, 전시온, 전유진, 전보경 이상 8명이 받았습니다.
秋享 諸執事 爬錄 |
薦望 | 姓 名 | 派 | 備 考 |
初獻官 | 全 鍾 得 | 玉山 | 會長 |
亞獻官 | 全 夏 洙 | 旌善 | 議長 |
終獻官 | 全 廷 浩 | 八莒 | 理事 |
執禮 | 全 東 昱 | 星山君 | 理事 |
祝 | 全 燦 鐸 | 旌善 | 副會長 |
贊引 | 全 燦 均 | 旌善 | 江陵會長 |
贊唱 | 全 先 集 | 旌善 | 宗人 |
奉香 | 全 秀 哲 | 竹山 | 代議員 |
奉爐 | 全 炳 俊 | 龍宮 | 代議員 |
司樽 | 全 仁 植 | 玉山 | 理事 |
奉爵 | 全 柳 集 | 旌善 | 宗人 |
奠爵 | 全 淳 翼 | 旌善 | 代議員 |
陳設 | 全 建 植 | 龍宮 | 代議員 |
山 神 祭 |
獻官 | 全 在 煥 | 完山 | 副議長 |
祝 | 全 今 杓 | 旌善 | 三陟會長 |
執事 | 全 龍 錫 | 旌善 | 청장년 |
執事 | 全 季 杓 | 旌善 | 宗人 |
봉향(奉香)은 향합(香盒) 관리자를 뜻하며, 봉향 후 봉작직을 행합니다. 봉로(奉爐)는 향로(香爐) 관리자를 뜻하며, 봉로 후 전작직을 행하며, 사준(司尊)은 제주(祭酒)를 따르는 자를 뜻하며, 전작(奠爵)은 제물(잔)을 제상에 올리는 자를 뜻하며, 봉작(奉爵)은 제물(잔)을 제상에서 내리는 자를 뜻합니다. 자주하는 의례가 아니므로 생소하고 자기 임무를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집례가 홀기에 의거하여 ① 謹具請享祀- ② 行 盥洗禮- ③ 行 降神禮- ④ 行 初獻禮- ⑤ 行 亞獻禮- ⑥ 行 終獻禮- ⑦ 行 侑食禮- ⑧ 行 辭神禮-
순으로 원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쾌청한 날씨와 어울려져 후손들의 정성이 잘 전달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 “笏”을 내려 놓으시오. “笏”을 드시오.」라는 홀기가 많이 들렸습니다. 제사에서 홀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홀(笏)에 대해 조사해 보았습니다.
『조선시대의 관원이 알현(謁見)할 때에 손에 쥔 물건이며 관복을 입은 관직에 있는 자의 필수품이었다. 1∼4품까지는 조복·제복·공복에 상아, 5∼9품까지는 나무, 향리 공복에도 나무로 제정하였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건데 공무원의 권한,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제례를 올리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임금을 도운 호성공신이 있습니다.
1등 공신에는 이항복(李恒福)·정곤수(鄭崑壽)의 2명, 2등에 신성군(信誠君)·이원익(李元翼)·윤두수(尹斗壽)·심우승(沈友勝)·이호민(李好閔)·윤근수(尹根壽)·류성룡(柳成龍)·김응남(金應南) 등 31명, 3등에 전룡(全龍)·정탁(鄭琢)·이헌국(李憲國)·유희림(柳希霖)·이유중(李有中)·임발영(任發英)·기효복(奇孝福) 등 53명이었습니다.
전찬택부회장님의 독축을 들으면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백제개국원훈”이었습니다. 백제를 개국한 10명의 공신이므로 조선시대 호성공신과 비교하면 1등 공신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꼈습니다.
찬인[贊引]은 제사를 거행하면서 예의(禮儀) 절차대로 도와 인도함. 또는 그러한 직책을 맡은 관원을 의미하는데, 유독 찬인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들렸습니다. 찬인의 역할을 맡은 분이 ‘전찬균’ 강릉지구 종친회 회장인데, ‘찬균’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찬인’이라고 잘못 호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분도 있었답니다. 늘 일상적으로 익숙한 의식이 아니고 1년에 한두 번 참가하는데서 오는 오해일 수 있습니다.
오늘 贊唱의 역할을 ‘전선집’ 종인과는 족보수단 업무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정선전씨 임하군파는 국한문 혼용 가로쓰기 족보수단을 2년에 걸쳐 모으고 있으므로, 올해 처음 시작하는 석릉군파도 국한문 혼용 가로쓰기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시향이 끝난 후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관내에서 문화행사로써 시향을 올려서 국태민안(國泰民安)에 도움을 주어 고맙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종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행사에 5명의 국회의원 종인들이 참석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사진 촬영이 있었는데 앰프성능이 부족하여 집행부의 뜻이 잘 전달되지 못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정선파부터 촬영하고 18파가 차례로 촬영하는지 알았는데 모든 파를 합하여 행사에 참여한 모든 인원 촬영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때 우왕좌왕했고, 점심 도시락 배분 때에도 앰프로 의사 전달이 잘 안되어 무질서함이 한 때 노출되었습니다.
앰프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예산 투자가 절실함을 느꼈습니다.
全의 표기문제가 늘 있어 왔었습니다. 중앙종친회의 공식입장은 人王 즉 “사람 인”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소 정문에 걸려있는 「全氏始祖歡城君壇所」의 “全” 字를 고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군인들의 의장대 사열처럼 행사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청장년회원들이 일찍 나와서 잘 준비해 준 덕분에 질서 있고 엄숙하게 시향을 봉행하였습니다.
전 날부터 준비한 청장년회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 시제 봉행한 정성으로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우리 종중의 명예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첫댓글 과웅종친님.. 오늘서야 님의 글을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 종친님의 지식이 해박하심을 실감합니다. 고맙습니다.
과찬입니다.
다만 우리 종친들이 조상들의 훌륭한 업적을 회상해 보고 자긍심을 갖고 명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