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원형태
축원형태 풍물굿은 위에서 살펴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서처럼
집단적으로 축원을 올리기 위하여 베푸는 주술적, 종교적 의식의 성격을 말한다.
이러한 축원형태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매귀굿,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택을 축원하는 마을굿
(당산굿), 집을 새로 마련하고 집안의 가장 으뜸신으로 여기는 성주굿, 가뭄이
극심하여 농작물에 피해가 있을 때 드리는 기우제굿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당산굿을 예로들면 먼저 당집에 가서 당산제를 지내고, 마을 공동우물에서
샘굿을 비롯해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대문에 들어가면서 치는 문굿, 가신중
으뜸신께 올리는 성주굿, 부엌에서 치는 조왕굿, 장독대에서 치는 천륭굿,
간에서 치는 광굿 등 각 처소를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등 축원형태가
풍물굿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2) 노작형태
노작형태의 풍물굿은 농사일을 하는 과정, 즉 모심기와 논매기, 풀베기,
타작 등의 순차에 따라 농민의 피로를 덜어주고 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과 함께 치는 풍물굿으로써 두레굿, 또는 두레풍장굿을 말한다. 이때는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노동요와 함께 풍물굿을 치기도 한다.
두레굿은 노동과정 이외에 칠월 칠석이나 백중날에 마을 잔치를 베푸는
'술멕이'에서도 행한다.
노작형태 풍물굿의 예를 살펴보면, 지역에 따라서 모심을 때는 모심는 소리를
하는데 이때 '못방구'라는 북을 치면서 장단을 맞춘다. 그리고 논매기 때
본격적인 두레굿이 펼쳐지는데 편성악기는 꽹과리, 장고, 북, 징이며, 각각
1인씩 단촐하게 구성된다. 마을기를 앞세우고 마을에서 작업할 논으로 향하여
가는 과정에서 두레굿을 치고, 논에서 풀을 맬 때는 풍물패도 논에 들어가
논매는 소리와 함께 역시 두레풍장굿을 친다. 또한 작업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논주인을 사다리나 황소에 태우고 돌아오면서 두레굿을 치기도 한다.
3) 걸립형태
걸립형태는 마을이나 장마당을 돌며 걸립굿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걷는
전문적인 풍물패를 말한다. 걸립패에는 낭걸립패와 절걸립패가 있다.
낭걸립패는 서낭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고사굿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걷는
형태이다. 낭걸립패는 절걸립패와 구별지어 부르는 말로 서낭을 받고
다니는 풍물패에서 유래되었으며, 풍물잽이들이 직접 걸립패를 꾸며 정초나
혹은 아무 때나 마을과 장마당을 돌며 집집이 걸립을 한다. 걸립하는
의식은 동제(洞祭)의 집돌이와 유사하다. 먼저 마을의 당에 가서 신대를
세우고 무가나 무악의 도움으로 서낭을 받는다. 이들은 신이 내린 신대를
들고 집집이 돌면서 집돌이를 하는데 각각의 집에 가서 고사를 지내주고
돈과 곡식을 걷는다
절걸립태는 사찰의 건립이나 중창을 위하여 모금하는 걸립패로 사찰의
탁발승들만 조직경우와, 다른데서 따로 걸립패를 사서 걸립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조선시대 불교가 정책에 의해서 쇠퇴함에 따라 재원의 빈곤으로
사찰의 운영난이 심각해지자 고륙지책으로 화주승을 비롯한 수십명이
사찰의 굿중패를 만들어 탁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탁발승들이 법고,
바라 같은 것을 치고 나비춤, 법고춤과 같은 춤을 추며 고사염불을 부르고
걸립다니는 절걸립패도 있고, 또 여기에 여러 놀이꾼을 데리고 다니던
절걸립패도 있었다고 한다.
4) 연예형태
연예형태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풍물패가 관람자에게 판굿과 연희를
중심으로 보여주기 위한 풍물굿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무대예술적 성격의
풍물굿을 말하는데, 이는 앞에서 살펴본 축원형태나 노작형태, 또는
걸립형태와 전혀 다른 성격으로의 변천이다.
따라서 연예형태의 풍물굿은 그 형태의 다양성에 따라 다채로운 의상을
갖추기도하고, 여러 풍물과 잡색이 따르며, 군중 진풀이를 방불케하고,
도둑잽이굿과 같은 연희적 요소를 강화하기도 하여, 궁극적으로는 무대화된
풍물굿을 통해서 흥행과 관련을 맺게된다. 다시말하면 공연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잡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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