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h-9 곤녕합坤寧閤
위치와 연혁 : 건청궁 경내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에 함광문, 북쪽에 복수당(福綏堂)이 있다. 왕비가 거처하던 공간이다.
한편 이 곳은 1895(고종 32)년 8월 20일, 일본인과 2훈련대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 때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稙, 1841~1895년) 1)도 곤녕합 기둥에서 살해당했고, 연대장 홍계훈(洪啓薰, ?~1895년) 2)은 광화문 밖에서 살해당하였다.
뜻풀이 : ‘곤녕(坤寧)’은 ‘땅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왕비의 덕성을 드러내었다.
‘곤(坤)’은 『주역』 64괘의 하나로 지도(地道)·처도(妻道)·신도(臣道)를 상징하며,<원전 1> 그 특성은 유순함<원전 2>으로 설명되었다. 이 같은 곤괘의 의미를 살려 왕비가 거처하는 건물의 이름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명과 청나라의 궁궐에도 황후가 거처하는 곤녕궁이 있었는데, 건청궁의 곤녕합도 이를 참조하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제작 정보 : 규장각이 소장한 『어필현판첩』(奎10293)에 고종 친필의 곤녕합 탁본이 수록되어 있어, 곤녕합 현판 글씨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어필현판첩』은 1885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안당과 마찬가지로 ‘御筆(어필)’이 전서로 새겨져 있고 왼쪽 아래에는 ‘珠淵之寶(주연지보)’, ‘萬機之暇(만기지가)’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13-j-9 곤녕합坤寧閤의 주련
위치와 연혁 : 곤녕합과 옥호루, 정시합의 기둥에 붙어 있다.
뜻풀이 :
(1) 陌上堯樽傾北斗(맥상요준경북두)
밭두둑의 요 임금 술잔은 북두(北斗)를 기울게 하고,
이 구절은 태평한 세상에서 백성들이 논밭에서 일하다가 근심걱정 없이 술잔을 기울이니 하늘의 북두칠성도 거기에 응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는 뜻이다.
‘요준(堯樽)’은 ‘요 임금의 술잔’이라는 뜻이지만 태평한 세상에서 근심걱정없이 마시는 술잔을 의미한다. 『공총자(孔叢子)』3)라는 책에 ‘요주천종(堯酒千鍾)’이라고 하여 요 임금이 천 잔의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요 임금이 술을 즐겼다고 인식하였으며, 아울러 그 당시의 백성들도 태평을 구가하면서 술을 즐겼다고 보았다. 북두는 북두칠성의 머리 부분이 형성하는 국자 모양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술잔이란 뜻으로 쓰였다.
(2) 樓前舜樂動南薰(누전순악동남훈)
누각 앞의 순 임금 음악은 남쪽 훈풍 불어 오게 하네.
누각 앞에서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순 임금의 음악을 연주하니 거기에 맞추어 남쪽에서 따뜻한 훈풍이 불어온다고 하여, 지금의 정치도 순 임금 시대처럼 잘이루어지는 태평시대라는 것을 표현하였다.
‘남훈(南薰)’은 원래는 남쪽의 훈풍을 뜻하지만, 순 임금이 지었다는 남풍시(南風詩)의 악곡(樂曲)인 「남훈가(南薰歌)」를 가리키기도 한다. 옛날에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 4)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원망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원전 3>라고 하였다. 순 임금의 「남훈가」는 ‘요 임금의 술잔’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말로 흔히 사용한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인 왕유의 칠언 율시 「대동전주산옥지 용지상유경운 신광조전 백관공도 성은편사연악 감서즉사(大同殿柱産玉芝, 龍池上有慶雲, 神光照殿, 百官共覩, 聖恩便賜宴樂, 敢書?事)」<원전 4> 중 제 6구이다.
(3) 天門日射黃金榜(천문일사황금방)
황궁(皇宮) 문엔 햇빛이 황금 편액을 비추고,
(4) 春殿晴?赤羽旗(춘전청훈적우기)
봄 전각엔 저녁 해가 적우기(赤羽旗)를 비추네.
이 시구가 실린 시는 두보가 문하성(門下省) 5)에서 퇴근하여 선정전(宣政殿) 6)을 나서면서 지은 작품이며, 이 구절은 저녁 빛을 받고 빛나는 궁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원래 시의 제목은 「선정전퇴조 만출좌액(宣政殿退朝 晩出左掖)」<원전 5>이며 이 두 구는 수련(首聯), 즉 1, 2구에 해당한다. 1구에서 ‘榜(방)’은‘ (방)’과 통용되며 여기서는 편액을 뜻한다. 2구에서 적우기는 붉은 깃발, 또는 붉은 새의 깃털로 만든 깃발을 말한다.
(5) 雙闕瑞煙籠??(쌍궐서연농함담)
대궐의 상서로운 연기는 연꽃을 감싸고,
(6) 九城初日照蓬萊(구성초일조봉래)
도성(都城)의 아침 해는 봉래궁(蓬萊宮)을 비추도다.
아침에 대궐 안에 상서로운 연기가 가득 끼어 연못의 연꽃을 감싼 모습과 서울 장안에 아침 해가 떠올라 봉래궁을 비추는 풍경을 묘사하였다.
‘쌍궐(雙闕)’은 옛날에 궁전이나 사당 등의 정문 양쪽에 높은 누관(樓觀)을 세운 것에서 유래하여 궁궐의 문, 또는 궁궐을 가리킨다. ‘구성(九城)’은 서울을 뜻하고 ‘봉래(蓬萊)’는 원래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산 이름이나 여기서는 궁전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봉래궁은 대명궁을 고쳐 부른 이름이다.
당나라 문인 양거원(楊巨源, 755~?년) 7)의 「조조(早朝; 이른 아침)」<원전 6> 중 함련 즉 제 3, 4구에서 따온 구절이다. 문헌에 따라 ‘서연(瑞煙)’은 ‘박연(薄煙)’으로 된 곳도 있다.
(7) 碧簫雙引鸞聲細(벽소쌍인란성세)
벽옥(碧玉) 퉁소 쌍으로 끄니 난새 소리 가느다랗고,
(8) 綵扇平分雉尾齊(채선평분치미제)
고운 부채 반으로 나뉘니 치미선(雉尾扇)이 가지런하네.
앞 구절은 두 사람이 푸른 옥[碧玉]으로 만든 퉁소를 불어대니 그 소리가 고운난새 소리처럼 가느다랗게 흘러 퍼진다는 뜻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난새는 봉황의 일종으로 원앙처럼 암수가 짝을 지어 다닌다고 여겨진다. 이른 아침 조회에서 궁중 악사 두 사람이 암수의 난새 울음처럼 고운 화음으로 퉁소를 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뒤의 구절은 치미선을 든 의장대가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으니 부채들이 늘어선 모양이 가지런하게 정돈돼 보인다는 뜻이다. 궁중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치미선은 임금이 쓰던 의장용(儀仗用) 부채의 일종으로 꿩의 깃으로 만들었다.
문징명(文徵明, 1470~1559년) 8)의 「봉천전조조(奉天殿早朝; 봉천전의 이른 아침)」<원전 7> 이수(二首) 중 둘째 수의 함련 제 3, 4구이다.
제작 정보 : 곤녕합의 주련은 1895년 경에 찍은 사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판독하여 건청궁의 복원에 맞춰 다시 제작한 것이다. 판독은 이광호와 김영봉이 하였으며 글씨는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사진 상으로는 일부 주련의 위치가 바뀌었고 대련(對聯) 중 짝을 잃은 것도 있으나 문헌에서 찾아 채우고 위치를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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