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기마민족이 세운 국가다. 터키에서는 그들의 조상이 몽골초원에서 유래한 튀르크족이며 서쪽으로
계속 진출하면서 건국한 셀주크, 오스만 제국까지 자기들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1952년 터키는 건국 1400주년 기념제를 가졌는데 그
건국기념 년도가 「부민카간」이 돌궐을 건국한 AD552년인 것이다. 터키인들은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고 자기들의 유래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터키 초등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는 튀르크의 최초 국가는 흉노(Asian Hun Empire)라고 하고 그 영역을
만주․몽골․남시베리아․북중국․위구르․티벳․중앙아시아 지역까지 포괄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튀르크라는 이름으로 건국한 최초의 나라는
돌궐(the Gok Turk Empire : AD552~744)이며 위구르가 돌궐을 멸망시키고 이어 받았다 기술하고 있다.
터키 교과서의 돌궐 영토
초등 7학년 과정에서는 아나톨리아반도에 진출한 과정과 오스만제국의 건국에 대해
가르친다. 초등8학년 과정에서는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의 현대 터키건국, 2차 세계대전 및 한국동란 참전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중급9학년 역사교과서에서는 튀르크가 중앙아시아에서 동서로 확장되는 과정, 그들이 과거에 건국했다는 흉노, 돌궐, 위구르제국의 영역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중급 12학년 역사 교과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동란참전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터키인들의
역사인식에서 한국과 터키는 남다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 하겠다. 우선 몽골고원에서 유래한 흉노제국을 터키의 고대역사로 보기 때문에 한민족과
혈통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도 돌궐이 당나라와 대결할 당시 고구려와는 동맹국가였기 때문에 지금도 한국을
형제국가로 생각하고 「칸카르데시(피를 나눈 형제)」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965년 동돌궐의 영역이었던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궁전에서 7세기경의 벽화가 발견되었고 고구려인 사신 2명의 모습이 보이는데 우리민족이 중앙아시아 지역과 활발히 교류했던
역사가 입증된 바 있다.
우리 고대사에서 본 터키
단재 신채호선생이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사」(오늘날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조선족·흉노족은 우랄어족으로 조선족이 분화하여
조선·선비·여진·몽고·퉁구스 등의 종족이 되고, 흉노족이 흩어져서 돌궐·헝가리·터키·핀란드 등의 종족이 되었는데…”, “여진·선비·몽골·흉노
등은 본래 아(我)의 동족”, “조선·만주·몽골·터키 네민족은 혈족”,“조선이나 만주나 몽골·터키·헝가리·핀란드가 3천년 이전에는 적확히 하나의
혈족”으로 밝히고 있다. 행촌 이암선생의 단군세기(※논란이 있는 기록임)는 단군시대 초기에 흉노·몽골이 고조선으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기마민족국가인 고조선에서 흉노·돌궐이 분파되었고 이들 일파가 오늘날의 터키로 이어지게 되어 우리와 오늘날 터키가 남다른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부연한다면 단군조선이 BC 2333년에 건국되었고 단군조선건국세력인 고조선족은 세월이 흐르면서
부여·선비·몽골·오환·거란·여진 등으로 이어지고, 보다 일찍이 분파된 흉노족은 이후 훈족·돌궐·위구르·셀주크튀르크·오스만튀르크·터키 등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흉노를 ‘호(胡)’로 칭하고 선비 등 그동쪽 민족을 ‘동호(東胡)’로 칭하고
있다. 당시 문헌에서 호와 동호의 구별이 분명치 않으나 대체로 ‘호’는 튀르크계, ‘동호’는 몽골·퉁구스계로 보여진다. 이들이 지내온 곳, 살고
있는 곳에서는 언어는 물론, 생활풍습, 사회체제, 전쟁양식 등에서 너무나 많은 유사점들이 나타나고 있어 고대로부터의 그들의 관계가 남다르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하겠다.
주터키 한국대사관 공관 홈페이지에는 “우리나라와 터키는 중앙아시아 부근 이웃에서 같이
활동하다가 우리나라는 동진하여 한반도에 정착하고, 터키는 서진을 거듭하여 약 8000㎞ 떨어진 아시아대륙의 서단 아나톨리아 반도와 유럽의 동남쪽
끝인 트레이스 반도에 정착하게 된 먼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려말에는 원나라를 통하여 들어온 튀르크계 위구르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하여
현재 3만명 가까운 후손들이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는 6․25전쟁을 통하여 다시 맺어지게 되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기마군단이 맹활약하던 유라시아 대초원(동·서 스텝지역)의 양단에 지금까지 건재한 국가가 한국과 터키가 아니겠는가? 터키인들이
민족의 기원과 자기 역사에 대해 인식하고 후손에 교육하고 있는데 반해, 오랜 고대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오히려 한민족의 활동 무대를 한반도
중심으로 축소하고 우리 역사를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이후로 위축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 박은식·김교현 선생은 금사(金史)를
한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으며, 손진태 교수가 여진사와 금사를 한국사에 포함시켰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겠다. 근간에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고조선사와 부여사를 비롯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와 저술활동이 계속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는
왜곡되어서도 과장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보다 넓은 시야로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이룩한 현대사의 기적을
설명할 수 있고 한국경제의 성장 에너지원을 찾아나가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다 자신감있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