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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군자염전에서 소금을 긁어 모으는 광경-지금은 도시로 변한 옛 염전터 | 옛날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일원의 지역이었던 시흥은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잉벌노현,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곡양현, 고려 태조 23년 (940)에 금주로 불러오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금천현이라 하였고 정조 19년(1795) 에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고려 성종때(991) 금주의 별호명을 취해 시흥현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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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군자염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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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께 오이도 고주리-마을 공동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트럭에게 길을 내주고 있다. 신진자동차 트럭이 반갑다. |
시흥의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의 뜻부터 풀이하면 '늠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뻗어가는 땅'이란 뜻인데, 고려 때 별호를 조선 정조 때 행정지명으로 택한 '시흥'과 같은 뜻을 지닌 '넓은 땅'을 의미한다. 지명에 걸맞게 시흥은 서울의 영등포구·구로구·금천구·관악구·동작구·서초구 등과 안양시·광명시·안산시·과천시·군포시·의왕시 등을 분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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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군자역에서 옥구도로 가는 길 |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