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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말부터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과대 건물 뒤 잔디밭에는 매주 토요일만 되면 학생 20여 명이 모여든다. 이들은 건축학과
2학기 한국건축사연구방법론 수업을 듣는 학생들. 학생들은 전공서적 대신 톱, 대패, 망치 같은 연장을 들어야 한다. 강의 시간은
하루 종일이다. 점심시간 잠깐의 휴식을 제외하곤 구슬땀을 흘리며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을 한다. 서툰 손놀림으로 이들
이 만들고 있는 것은 두 칸짜리 작은 한옥이다.
캠퍼스 안에 한옥 짓기라는 독특한 커리큘럼을 만든 주인공은 이 학교 건축학과 전봉희(田鳳熙·45·사진) 교수. 10일 막 상량식
(上樑式)을 끝낸 공사 현장에서 전 교수를 만났다.
"사실 나도 상아탑에 갇혀 이론 수업만 했지 손수 한옥을 짓는 건 처음이에요. 학생들과 함께 많이 배우고 있어요."
"서울대 학생들이 사진을 즐겨 찍는 곳이 규장각이에요. 규장각은 흉내만 냈지 콘크리트로 만든 가짜 한옥이지요. 한국을 대표하
는 국립대에 제대로 된 한옥 한 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는 "전통양식의 베이징대 옛 정문이나 도쿄대의 아카몬처럼 우리 학교에도 한국인의 혼(魂)을 느끼게 해줄 한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강 신청 5분 만에 정원이 찼다. 그래도 '꼭 수업을 듣고 싶다'는 학생들
요청에 정원 15명을 20명으로 늘렸다.
지금 짓고 있는 한옥은 학생 휴게실 용도로 쓸 두 칸짜리 맞배집 형태. 창덕궁에 있는 폄우사('어리석음을 경계하고 고치는 집'이
라는 뜻)를 본뜬 것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공사를 하고, 15주가 되는 오는 12월 6일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든 과정은 일일이
사진 찍고 VOD로 남겨 앞으로 한옥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14.58㎡ 크기의 손바닥 만한 한옥이지만 팔도의 내로라하는 장인(匠人)들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도움을 주러 온다. 신영훈 한옥
문화원장, 이재호 도편수(우두머리 목수), 여영대 부편수, 이근복 번와장(기와 장인), 심용식 창호장 등 각 분야의 국내 최고 명장
들이 참여하고 있다.
"'언제 우리가 서울대 학생들을 가르치겠느냐'며 기꺼이 와주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학생들도 요령 안 피고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요."
아직 조그만 한옥 휴게실의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교내 공모로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모을 생각이다. 전 교수는 "작지만 우리 캠
퍼스의 풍경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학교측에서 기회를 준다면 한옥으로 된 영빈관도 짓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