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라 혜공스님의 생사자재
우리 한국에서도 보면 신라시대 혜공(惠空)스님이 계십니다.
천하에 드러나기를 [ 신라 원효 스님 이상 가는 스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원효 스님의 선생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원효 스님이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물어 본 스님입니다.
그 분이 바로 혜공 법사입니다.
원효 스님 같은 분이 의심나는 것이 있다고 말하면 약간 어패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원효 스님도 수행중 의심나는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원효 스님이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혜공 스님께 물었습니다.
두 스님이 생활하며 서로서로 말씀하신 것이
삼국유사라든지 다른 곳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혜공 스님은 어떤 분인가?
천진공(天眞公)집의 종의 아들로 태어 났습니다.
평생 글자 한 자 배운 바 없고, 누구에게서도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
러나 생이지지(生而知之)입니다.
불교를 모릅니까. 유교를 모릅니까. 무소불통(無所不通),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 때 화랑 구감공이 사냥을 나가서 보니 혜공 스님이 죽어 누웠는데
몸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습니다.
[ 혜공 스님이 큰 도인인 줄 아는데 아무 소리도 없이 이렇게 돌아가시니,
묻어 주는 사람도 없고, 화장해 주는 사람도 없어 썩어 나자빠져 있는가.
가서 준비를 해 와서 화장을 잘 해 드려야 겠다.]
그리고서 신라 서울인 경주 거리에 돌아와 보니
어느 스님 한 분이 곤드레 만드레 술마시고 노래 부르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이 한번은 승조 (僧肇)법사가 지은 [조론(肇論)]을 보고,
전생에 자기가 지은 것이라고 하며 전생에 자기가 승조 법사라고 하였습니다.
조법사도 사실은 깊이 깨쳐 자유자재한 분입니다.
이처럼 스님은 배운 바 없어도 모르는 것 없어 원효 스님이 물어볼 정도였고,
신통이 자재하여 분신까지 하는 그런 스님이
조론을 보고 전생에 자기가 지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스님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겠습니까?
명리를 위해서? 아닙니다. 그런 스님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혜사 스님 같은 분도 천하에 교리적으로나 선리적으로나
불교 역사상 둘째 가지 않을 그런 큰 종사, 대법사인데
무엇이 부족하여 거짓말 하겠습니까?
분명 삼생이야기를 하고,
동시에 후에 원관이 되어 다시와서 자유자재 하게 이원이와 대화를 하고...
이런 실례가 우리 불교 역사에 많이 있습니다.
(15) 대해탈을 성취하자
이런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의미 하는가?
우리가 본래 갖고 있는 영원한 생명속에 든 무한한 능력을 개발할 것 같으면
귀종선 선사도 될 수 있고, 혜사 선사도 될 수 있고,
또 원효 스님의 스승인 혜공 스님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자유자재한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큰 스님들 처럼 자유자재한 해탈도를 성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근본 골자가 어디 있느냐 하면
영겁불망, 영원토록 영원토록 다시는 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스티븐슨 씨가 조사한 2천명 이상의 전생기억,
이것은 아이들이 장난하는 물거품과 흡사한 것이지만
영겁불망, 이것은 허공이 무너질지라도 조금도 변함없는 대해탈 경계입니다.
이 글은 조계종 성철 종정스님의 설법을 시자실에서 녹음. 정리한 내용이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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