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산예술촌 축제 2016>에서 소프라노 민은홍과 테너 민현기의 특별공연이 있습니다.
김유정의 소설<봄봄>의 실제 배경인 점순네 안뜰(춘천 신동면 증리)에서 열립니다.
2016년 6월 11일 10시~ 김유정역 근처 실레마을
제3회 금병산예술촌 축제는 <보고 듣고 놀고>라는 주제로
김희목 회장의 개막선언과 함께 도예공방 김윤선의 도자예술 특강과 라쿠소성 체험,
예술촌 일원 둘러보기,축하공연, 무료 점순네 점심,
바둑두기(전상국 국립한국문학관 춘천유치위원장, 김유정문학촌 이사장),
함섭 한지작품 창작실 관람, 예예동산 유명애 수채화 전시, 변우현 사진 전시,
소화갤러리 이양순 민화전시, 함광복, 원영희의 DMZ Story & Tea Party,
책과 인쇄 박물관 무료 개방(레플렛 지참) 등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프라노 민은홍~
<모시는 글>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 6월에
우리 금병산예술촌의 예술인들은
금병산을 벗삼아 풍성한 예술잔치상을 차려놓았습니다.
일상의 버거운 굴레를 벗고
금병산에 오셔서 자연 속에 예술을 즐겨보십시오. 금병산예술촌 대표 김희목 드림.
일시 : 2016년 6월 11일(토) 10:00~17:00
장소 : 금병산예술촌 (춘천시 신동면 증리 금병산 자락 - 점순네 안뜰)
<행사 내용>
10:00-12:20 점순네 안뜰
공연 및 체험 행사(라쿠소성을 위한 유약 바르기)
11:00-11:20 개막선언 및 김희목 회장인사, 신동면장 축사
11:20-12:00 축하공연(소프라노 민은홍, 테너 민현기)
12:00-12:20 도자 예술의 세계 속으로(흙과 불의 예술 특강)
12:30-13:50 (점순네 안뜰에서 중식 제공)
14:00-15:00 라쿠소성 체험(기물 꺼내기)
15:00-17:00 예술촌 일원 둘러보기
- 전상국 : 바둑두기(아베의 가족)
- 함섭 : 한지작품과 창작실 오픈(함섭한지아트 스튜디오)
- 유명애 : 수채화 전시회(예예동산)
- 변우현 : 사진 전시회(예예동산)
- 이양순 : 민화전시회(소화 갤러리)
- 함광복, 원영희 : DMZ Story & Tea Party
- 책과 인쇄 박물관 무료 개방(레플렛 지참)
<회장 김희목: 010-6375-9946 . 총무 김윤선: 010-9057-4787>
===
<강원도민일보 기사> 2016년 6월 6일
“주말 금병산서 문화나들이 어때요”
금병산예술제 개막… 작가와의 대화·전시
신록이 아름다운 6월 춘천 금병산예술촌이 예술로 물든다.
금병산예술촌(대표 김희목)이 세 번째로 마련한 금병산예술제 ‘보고, 듣고, 놀고’가 오는 11일
춘천 신동면 증리 예술촌에서 열린다. 개막행사는 오전 11시 점순네 안뜰에서 열린다.
소프라노 민은홍과 테너 민현기의 공연과 흙과 불의 예술특강 ‘도자 예술의 세계 속으로’ 특강이
이어진다. 작가와의 만남, 작품 전시 등 개별행사도 다채롭다. 전상국 소설가와 바둑두기 행사를
비롯해 함섭한지아트스튜디오에서는 함섭 작가의 한지 작품과 창작실이 공개돼 작가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 함광복·원영희의 ‘DMZ Story&Tea Party’가 열려 차를 마시며 DMZ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된다.
4인4색 전시회도 열려 유명애·유인애 수채화, 변우현 사진전이 예예동산에서,
소화갤러리에서 이양순 작가의 민화가 전시된다.
=== 참고 ===
■김유정의 삶 - 말더듬이 멱설이 에서 한국문학의 대작가로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다. 그때 김유정은 당대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인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활발히 작품 발표를 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이듬해인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 작품활동을 벌인다. 왕성한 작품 활동만큼이나 그의 병마도 끊임없이 김유정를 괴롭힌다.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한다.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18)를 끝으로 1937년 3월 29일(양력) 그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 <동백꽃>이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살아있다.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들 그리고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다.
그의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살아있다. 그의 모습 또한 깊이 각인되어 앞으로도 인간의 삶의 형태가 있는 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실레 이야기길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실레(증리)는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며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로서 지금도 점순이 등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금병산 자락의 실레이야기길은 멀리서 문학기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맹꽁이 우는 덕만이길> <근식이가 자기집 솥 훔치던 한숨길>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등 재미난 이야기 열여섯 마당과 만날 수 있는실레이야기길은 1시간에서 1시간 반까지의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
●그때 그시절-만무방이 살았던 농촌과 김유정
김유정이 살았던 농촌에서는 일본의 식민통치 초기부터 1910년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 [산미증식계획]의 명목으로 침략전쟁의 뒷바라지와 차질 없는 식량공급을 강요해왔다.
1920년 경제공항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일본은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등으로 침략전쟁을 확대시켜 한국을 더욱 강압적으로 약탈하고 상품시장으로 만들었다.당시의 농촌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지주와 마름, 그리고 소작농민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번이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치고 그리고 생김생기길 호박개 같애야 쓰는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됐다. 작인이 닭마리라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낙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든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안느다. 이 바람에 장인님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여들고 동리사람은 그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신굽신 하는게 아닌가 ---봄봄 중에서, 김유정 전집. 1987
소설 '봄‥봄'에는 읍내 사는 배참봉댁 마름인 봉필영감이 등장한다. 그리고 '봄·봄'과 '동백꽃' 이 외에 작품에서도 마름과 소작인의 관계가 드러난다. 지주는 토지 소유자로 농지가 없는 소작농민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마름을 시켜 소작 농민을 감독하고, 소작료를 징수했다. 그런 과정에서 마름은 소작농민을 노예처럼 함부로 다루었고, 지주와는 별개로 수탈을 하기도 했다. 당시 지주는 수리조합비·비료대 등의 각종 부담까지 소작농민에게 전가하여 80%의 소작료를 수탈하였다. 소작료 이외에 노력봉사·경조사 비용 등 각종 명목을 소작농민에게 부담시켰다. 소작농민은 지주에게 신분적,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에 따라 조선인 빈농 약 29만 9천명이 토지를 상실하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관념적 피상적 농촌소설과 달리 김유정은 실감나는 농촌소설을 썼다. 그것은 체험과 관계가 깊다. 그는 서민적인 것을 좋아했다. 또 소박하면서도 황소고집이었다. 그것은 산골에서 직접 살며 농촌 분위기를 가까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정 시대의 가난한 농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농촌문학 - 영원한 산골나그네
1930년대가 평론가 안함광과 백철에 의해 재기된 한국 농민문학이 농촌 혹은 농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이광수의 "흙",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탑", 김남천의 "생일전날", 심훈의 "상록수", 이무영의 "흙의 노예"와 "제1과 제1장", 김동리의 "산화", 현덕의 "남생이", 박영준의 "모범경작생"과 "목화씨 뿌릴 때" 그리고 김유정의 "동백꽃"과 고향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광수, 심훈, 이무영 등의 작품이 일제의식민지 농촌의 수탈현상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그 속성으로 안고 있는 취약성, 또는 한국농업이 처해있는 역사적 생산 조건 따위에 대한 통찰력이 없었으므로, 많은 문학적 결함과 이론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농촌에서 소재를 찾는 일종의 소재주의 위험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김유정의 문학은 이런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나름대로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일구어 냈다. 당대의 농촌을 모르고서 한국의 사회현실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또 그 현실에서 태어난 문학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김유정의 문학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농민의 고단단 삶이 작품 속에 그대로 배어있기 때문이다.
=== 소프라노 민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