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세번의 참극
참고로 제가 이글을 퍼옮기는 이유는 월급받고 직업으로 하는 군인과 의무복무를 지원해서 간 해병대원들과 간접적으로 평가할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에 언급합니다 .
특정부대 출신이 보면 기분 좋을수는 없겠지만 두부대간 반세기에 걸친 선의의 경쟁은 한국군의 전투력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부정적인 측면은 단순 계급구성으로 전투력을 평가하거나 오만으로 인하여 생명이 왔다갔다한 우리 현대사 군의 뒷편에서 일어났던 권력과 추종세력 그리고 소외 세력간의 끝없는 대결구도가 소모적 분쟁으로나타 났지만 또, 한편으론 단편적 전투력 간접평가를 할수 있던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좋던 싫던 역사로서 평가 되어야 합니다. 쉬쉬하는게 만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세번의 유사한 사건을 우린 잘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서로존중하여 이러한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할것입니다.
옮긴글
모두 소중한 분들이 자존심 세우기를 하는게 참 안타깝네요. 특전출신도 아니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부대를 세우기 위해 해병대를 깍아내리는 분들이 특별히 문제가 많군요.
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은 것은 당연하지만 이미 인륜에 위배되는 범죄자를 출신군 이라는 이유로 두둔하는 것도 범죄를 합리화시키려는 듯 보여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는 용서하지 말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여기서 서로간 반목이 조장되는 것은 각자 출신군의 자부심과 타군에 대한 시기심에서 빚 어지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네요.
밑의 얘기들은 실화에 대한 증언들입니다. 2번째 이야기는 제가 직접 관련자는 아니지만 87년 당시 사고현장을 목격한 사람 중의 한 명이며 당시 공수특전사와 해병대의 병력은 비슷했습니다.
첫번째 사고
** 1973년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고 **
73년 10월 1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건군25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목전에 두고 있던 해병대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착찹한 심정을 금치 못하게 한 행사 였다.
그 때 이미 약 400명의 전역 희망장교 중 약 300명은 9월 10일과 20일 두 차례 걸쳐 전역을 하고 그 나머지는 9월 30일과 10월 10일(이병문 사령관과 전속부관 각 국감실장 및 의장대장. 헌병대 보안과장 등 10여명) 부로 전역을 하게 돼 있었으므로 부대 내부의 분위기는 몹시 썰렁했고, 당시의 사령부 보안대장 임경섭 준장이 박 대통령에게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했던 것처럼 장병들의 감정이 그만큼 악화되어 있었다.
10월 10일 이병문 대장의 전역식을 마치고 그 날 부로 전역을 했던 사령부의 마지막 의장대장은 이상우 대위(해간 36기)였고 서울지구 해군헌병대 보안과장은 김무일대위(해간35기)였다.
그런데 해병대로서는 마지막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했던 그 날 여의도 5.16광장 행사 장에서는 액운이 끼어 있었던지 육군공수특전단 정예요원들의 예기치 못한 랜딩 실수가 발단이 되어 해병대 대원들과 특전사 대원들 간의 감정적인 충돌로 인해 특전사 요원 한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그 날을 마의 날로 기억되게 했다.
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메인행사인 분열식이 끝난 후 휘나레를 장식하는 육군공수특전단 요원들의 고공낙하 시범이 진행되고 있던 중 로얄 박스의 랜딩 포인트에 낙하해야 할 수 명의 특전사 요원들이 그 지점을 벗어나 그 부근에 있는 해병대 행사부대 장병들의 일부 내무실 천막에 떨어진 것이 발단이 되어 해병대의 천막 감시병들과 특전사 대원들(하사관) 간에 시비가 벌어졌다.
결국은 그 사소한 시비가 화근이 되어 수모를 당한 특전사 요원들이 그들의 내무실로 가서 수십 명의 동료 대원들을 데리고 와서 해병대 감시병들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가했다.
행사를 마치고 부서진 천막으로 돌아와 감시병들이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행사부대 대원들이 격분을 하여 때마침 행사를 마치고 그 천막 앞을 통과하고 있는 육군특전사의 지프차와 트럭을 세워 영문을 알지 못하는 특전사 요원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러한 경황에 지프차에 타고 있던 특전사 요원 한 사람이 일전을 불사할 태세로 차에서 내려 대검을 뽑아 들자 같이 덤벼 든 해병대 대원 한 명이 그 대검을 탈취하기가 무섭게 그 대검으로 그 특전사 요원을 척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자 육군헌병대와 해군서울지구 헌병대(장, 윤웅섭 중령)에서는 즉각 합동수사반을 편성하여 포항으로 내려갈 병력수송열차와 김포 여단으로 들어갈 병력수송차량을 밤늦게까지 세워 놓고 진상을 파악하는 한편 가해자의 검거에 나섰으나 결국 가해자를 색출해 내지 못함으로써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되어 있듯 훗날(87년)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 서류에 결재를 한 특전사 출신의 전두환대통령이 박구일 중장에게 특별히 지시한 그 3가지 사항 중 "싸움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던 그 말은 특히 육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그와 같은 트러블이 재발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간곡한 충고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두번째 사고
** 가납리 전투 **
87년 국군의 날 행사 때 해병대와 특전사가 경기도 가납리전투비행장에서 한판붙었다. 그 당시에 후배는 군기수로 참석했고 우리해병대는 2연대 해병들이였다.
결과는 해병대의 완승으로 끝났다. 해병 한명이 손가락이 잘리고 7명이 다쳤다. 특전사는 25명이 우리한테 포로로 잡히고 많은 특전사들이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병기 25정을 버리고 도망갔다.
우리도 1개대대병력 특전사도 1개대대병력.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 병이고 특전사는 대부분 깔구리들이었다. 특전사 사령관이 우리 2연대장이신 이덕길 대령한테 사과하고 병기25정을 돌려받았다. 그때 해병대 최갑진장군은 이덕길 연대장을 몹시 나무랬다. 이 연대장은 해병답게 옷을벗는다며 옷을 벗으셨다. 그 분은 병에서 하사관 위관을 거치며 연대장까지 올라간 분이라 확실히 달랐다. 그 때 그 싸움을 우리는 가납리 전투라 부른다.... 지금도...
가납리 전투는... 87년 이전 선배님들은 낯설은 얘긴데... 좀 더 상세히 알았으면 하여..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후배님들의 글 기대합니다.. **********************************************************
Re : 선배님 저는 557기 의장대 출신으로 일병때 국군의 날 행사로 경기도 가납리 전투 비행장에서 훈련을했습니다. 비행장 활주로가 두개가 있는데 왼쪽은 육군 여군 예비군 그리고 특전사 공수부대에서 훈련했고 오른쪽 활주로는 해병대 공군 그리고 해군(유디티) 그렇게 훈련을 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훈련준비중인 해병대 대열로 특전사가 진입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대대장이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대열로 진입하자 560기후임이 대열사이로 통과하지 말라고 했고 특전사는 어디 깔구리한테 반말이고 하며 시비가 붙었습니다. 560기 하는말 싸움하는데 계급이 뭐가 필요하나고 하면서 식스틴으로 특전사 얼굴을 공격하면서 싸움은 시작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해병대는 용감했습니다. 내가 해병이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정말 용감했습니다. 한 30분을 싸웠나 특전사 애들이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투석전이 벌어지기시작했고 우리해병은 쓰러진 전우를 같이 데려오려고 달려갔고 특전사는 쓰러진 동료를 두고 도망갔습니다. 그 과정에 특전사는 우리 해병중사를 향해 대검을 휘둘렸고 해병중사를 구하기 위해 548기 선임이 그칼을 맨손으로 막다 손까락이 짤리고 그 특전사는 M16 개머리판에 맞아 쓰러지고 그 과정에서 25명의 포로와 총기를 압수하였습니다. 세상에 총을 버리고 도망가는 군대 저는 처음 봤습니다.
참 해병은 해병이였습니다. 제병지휘관이 육군중장이였는데 아무리 하지말래도 싸움은 계속되었는데 이덕길 연대장님(그당시해병대 재병지휘관)께서 해병대 뒤로 물러나라는 말한마디에 사르르 해병대가 뒤로 물렀나습니다. 참 글로 표현 하려니 상황 표현이 잘 안되는군요... 한참뒤 특전단 재병지휘관이 사과하고 총을 되찾아같습니다.
그때 이덕길 연대장님 말씀 특전사는 해병대와 견줄만한 부대인줄 알았는데 총을 버리고 가는군요 하며 해병대의 기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말씀을 하셨습니다. 싸운건 잘못하였다. 하지만 해병대 근성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연대장님 께서는 사단으로 복귀하면서 해병답게 옷을 벗는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모두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합니다. 선배님 저는 그때 제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때 상처로 아직도 눈위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훈단에 해군기가 등장하는 지금의 해병대 실상을 보면 그때 그분이 생각납니다.
결론 :
누가 이긴걸까요?
정답은 둘 다 졌다입니다. 둘다 국군이기때문에... 국군 해병대 특전사 둘다 훌륭한 부대들이며 저는 예비역육군장교지만 해병대 전투력 인정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이어지는 전통과 지원병체제를 고수하여 징집사병체제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규전과 특수전 수행능력을 골고루 연마함으로써 끊임없이 부대발전을 위해 장.사병 전원이 일치단결하여 훌륭한 전투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장교로서 또 군지휘관으로서 이렇게 잘 단련된 병사들을 지휘해보는 것은 하나의 소망일것입니다.
병체제와 부사관체제는 딱 잘라 말하긴 쉽지 않지만 전투력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전투력향상과 보존면에 일응 해당하긴 합니다만, 주된 이유는 전문교육의 투자비용과 투자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조직구조의 효율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문화 정예화되어가는 군에서 의무복무 사병에게는 많은 물질적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조직의 전투력과 직결된다고 보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전투의 승리를 보장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단결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즉 기본에 충실한 군대가 승리한다는 말로 대변됩니다.
참 조
※ 가납리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가래비)에 육군 26사단 비행대 활주로에서 국군의날 행사 예비연습후 여의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위 사건은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당시에는 꽤 알려졌던 실화입니다
Re : 부 115기 입니다 저도 78년도에 여의도 국군의날 행사에 참가 했는데 그때도 비슷한 사건으로 해병대 지휘관은 중령이 최고 지휘관 이어서 육군 장성들 앞에서 혼줄이 나는것을보고 분개해 했던적이 있었습니다. 해병이어서가 아니라 해병대가 정신무장 에서나 결집력은 한수위가 아닌가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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