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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를 내게 처음 소개해주신 분은 작고하신 이오덕 선생이다. 이오덕 선생은 주지하다시피 평생 동안 어린이문학의 정립과 글쓰기에 혼신을 다하신 분이다. 이오덕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팔십년 대 초 내가 웅진출판사 편집장을 지낼 때였으니 이십년이 훌쩍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그때 나는 [어린이 마을]이라는 종합교육서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속에 들어갈 동화를 좀 추천해 달랬더니 서슴없이 바로 권선생의 그 [강아지똥]을 추천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 말씀이, 그이는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종지기를 하며 지내는데, 거처가 되는 작은 방에는 생쥐가 와서 함께 밥을 얻어먹고 가는가 하면 여름에는 함께 자도 유독 그이에게만은 모기가 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약간 반신반의 하였지만 이오덕 선생이 누군가. 그런 농담이나 실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실 분이 절대로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면 그런 고지식한 어른이 아니던가.
그리고나니 약간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어디 가서 물어볼 마땅한 데도 없었다. 그래서 우선 다짜고짜 아무 구멍가게나 들어가서 이 부근에 동화 쓰시는 권아무개 선생이라는 분 있어요? 하고 물었더니 가게 안에 앉아있던 촌로들 몇이 고개를 외로 틀고 서로 바라보며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교회에서 종을 치며 사신다고 들었는데.....”
그때 작은 마당에 붙은 방의 툇마루에 늙수레한 남자어른이 혼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허름한 옷에 고무신을 신은 그이는 비쩍 말랐지만 한 눈에도 매우 기품 있고 평화로운 인상을 한 사람이었다. 나는 첫눈에 그가 바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내가 찾아왔던 바로 그 권정생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이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하여 이루어졌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더니 과연 이오덕 선생의 말씀대로 그이가 식사할 무렵이면 생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가곤 한다는 것이다. 어둑한 방에는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독특한 내음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생각하면 나 역시 그런 방에서 얼마의 세월을 흘러 보냈던가. 영점 칠평의 어두운 감옥. 아무 장식도, 물건도 없이 단지 책 몇 권만 놓인 그 가난한 방.... 나는 그이의 그 방에서 오래간만에 그런 평화를 느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방송사 피디는 자랑스럽게, 그리고 약간은 거만한 마음으로, 그 사실을 알리려고 그이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런데 권선생 일언지하 왈,
고집불통인 이오덕 선생은 자신의 충주 돌집 한쪽에 권정생 선생을 위해 손수 흙집을 지어놓으셨다. 불편한 몸을 감안하셔서 정말 아늑하고 편하게 지어 놓으셨던 것이다. 두 분의 우정으로 말하자면 관포지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권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그 비좁은 교회 종지기 방에서 살고 계신다.
이십여 년 전에 콩팥과 방광 결핵 수술을 받고 단지 석 달만 살면 잘 살거라는 의사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신과 가난한 이웃, 그리고 [몽실 언니]에 나오는 것처럼 불행했던 이 나라의 역사를 사랑하며 살아오고 계시는 것이다. 나는 그이의 가난과 낮은 마음이 지금까지 그이의 생명을 지켜주었던 소중한 자산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너무나 쉽게 가질 수 있지만 아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자산이다. 다음은 권 선생께서 이십여 년 전 동화집 [강아지똥]의 서문에 쓰셨던 글이다. 소설가 김영현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남 가는 길], 장편 [풋사랑], 그리고 시집으로 [겨울 바다], [남해 엽서], 장편동화 [똘개의 모험]등을 간행했다. 1990년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출판사 <실천문학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 |||||||
김영현 2005-03-05 ⓒ 2005 i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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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면서 지키는 나무와 같은 사람, 故 전우익 선생 |
정경일 |
[필자의 말] 전우익 선생께서 지난해 12월 19일 돌아가셨다. 몇 해 전 인터뷰를 위해 찾아 뵈었을 때, 인간다운 삶의 길을 추상같이 말씀하시면서도 말없는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 정말 자연으로 더 깊이 들어가신 걸까. 소식 듣고 인터뷰 때 찍어 둔 사진을 다시 보는데, 단추 뜯어진 옷을 입고 계시던 선생도, 책과 살림살이가 마구 널브러져 있던 낡은 집까지도 이미 모두 자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떠나셨다는 소식에 슬프긴 하지만 마냥 안타깝고 속상하진 않았다. "깊은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연의 친구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이 인터뷰는 2002년 여름 구천리 고택을 방문하여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이다.) 언눔 전우익 선생은 해방 후 사회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고, 낙향한 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가 틈틈이 가까운 이들에게 보냈던 질박한 편지글은『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사람이 뭔데』등의 제목으로 출간되어 자연과 벗한 삶의 바른 길을 깨우쳐 주고 있다. 전우익 선생이 살고 있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처음 가는 길이어서 상운에서 함께 내린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니 같은 방향이라며 함께 가자고 한다. 아주머니는 내 행색을 살피더니 “총각은 구천리에 왜 가능교?”라며 묻는다. 선생님 한 분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선생님예? 이런 데도 선생님이 있능교?”라며 반문한다. 그녀는 서울이나 큰 도시에 있어야 할 ‘선생님’을 이 시골까지 찾아오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주머니께 길을 배웠다. 그녀를 포함해 여러 스승에게서 길을 배운 끝에 “나무 많은 집” 사랑채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전우익 선생을 만났다.
자연과 역사의 상처 역사로부터 물러서는 이들이 ‘생명’과 ‘녹색’을 이야기하는 것이 꽤나 수선스레 여겨질 때가 있다. 자연의 기억을 되찾으려면 꼭 역사를 부정해야 하는 걸까. “역사의식이 없어졌지. ... 하지만 자연에 대한 관심도 역사의식으로 볼 수 있어. 예를 들면, 우리는 3.1 운동에 관심 갖지만 전부 인간에 대한 관심이지 그때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관심이 없거든... 진정한 역사의식은 인간에 대한 관심만이어서는 안 돼.” 지난 날엔 국토와 국민을 함께 생각했는데 이젠 국토는 안중에 없고 국민만 보는 역사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국토를 함부로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중에서 선생은 역사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받은 상처를 함께 아파한다. “(앞산을 가리키며) 옛날에는 소나무들이 있었는데 6.25 전에 빨치산이 숨는다고 다 베어 버렸어. 그때는 치안벌채라고 해서 집에 있는 나무들까지 모두 없애 버렸지. 월남에서도 그랬고... 전쟁이 사람만 죽이는 게 아니야.” 40년 넘게 농사를 짓는 선생이지만 해방 후에는 반(反) 제국주의 통일운동에 참여하다 투옥되었다. “그땐 통일하자고, 미국놈 나가라고, 토지개혁 하자고 싸웠지. 약소민족의 쓰라림을 느낀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반제운동을 했어.” 선생은 6.25때 형무소에서 나와 1년 간 숨어 지내다가 다시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풀려난 다음부터 고향에 와서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짓기로 한 건 잘 한 것 같아. 미국놈 몰아내자고 벽보도 많이 붙였지만 그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었어. 나무 한 그루 심는 것도 중요한 거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선생이 나무만 심는 것은 아니다. 그의 현실 비판은 여전히 매섭다.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부시... 완전히 미친 사람이야... 그래도 월남전 땐 미군 중에 전쟁을 반대하고 도망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번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는 하나도 도망가지 않더라구.” 지난 해 성탄절을 앞두고 전투기에 장착한 폭탄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낙서하며 웃는 미군들을 보고 ‘배반자’ 없는 전쟁에 소름끼쳤던 기억이 난다. 선생은 시끄러운 국내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한 마디 한다. “평민에게도 자식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대통령이 자식 간수 제대로 못한 것은 문제야. 한두 명이라도 진짜 정치인이 있으면 다행일 거야. 제대로 된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할 텐데...”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무관하지 않은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자들이 인간도 파괴하고, 인간을 학대하는 자들이 자연도 학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뭔데 인권에만 매달린 사람은 가짜요, 목권(木權), 옥권(屋權), 산권(山權), 강권(江權), 천지만물에 두루 성스러움과 존엄성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받들고 대접하는 게 참사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뭔데』중에서 선생에게 나무는 세상을 사는 바른 이치와 사람의 길을 가르쳐 주지만, 같은 나무와 자연을 보면서도 악한 짓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배울 사람은 배우고 죄 지을 사람은 죄 짓는다. “이쪽에서는 좋아도 다른 쪽에서는 형편없을 수 있는 게 인간이지. 김근태를 고문하던 형사가 자기 집에 전화하더니 대뜸 ‘개 밥 줬나?’ 묻더래. 한 쪽에선 고문하면서 한 쪽에선 자기 개 밥 먹는 것 걱정하는 게 인간이야.”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좋은 일 하기보단 나쁜 짓 즐겨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는 선생은 인간을 비관하는 걸까. “그게 사실이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해. 천사도 될 수 있지만 악마도 될 수 있는 게 인간이지. 아침저녁으로 몇 번씩 둔갑하지. 인간이 숭고하고 존엄하다 말하기 전에 자기 죄를 깨우치면 다행이야. 인간이 죄를 너무 많이 지었어....” 선생에겐 요즘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도 다 죄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기본적으로 있어. 먹고사는 게 다 죄지. 새나 짐승은 저 필요한 만큼만 먹지 저축하고 좋은 옷 입고 그러지 않잖아.” 선생은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나도 짐승인데 짐승은 싫어.(웃음) 나 해 먹는 것도 귀찮은데 돌보고 밥 줘야 되고... 지금은 키우는 것 자체가 죄지. 닭은 잠 못 자게 하며 기르고, 소는 평생 흙 한번 못 밟게 하고 길러. 그러니 광우병에 걸리지. 안 미치면 돌멩이일 거야. 개도 그래. 소리 짓는다고 목청 못쓰게 하고 또 보신한다고 그걸 사 먹어. 그러니 인간이 잔인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교회 가서 아무리 회개해 봤자 소용없어. 인간이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지 알아야지. 인간을 고발해야 해. 너무 먹어 살찌고 또 살 뺀다고 약 먹다 죽고... 어이가 없어.” 이쪽엔 돌쩌귀에 불이 나는 불고기 집 즐비하게 늘어섰고, 저쪽엔 밤새 불 켜진 어마어마한 병원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뭔데』중에서
변하면서 그대로 있는 나무 사랑채 앞뜰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어울려 산다. 그 중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가 있냐고 묻자 선생은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손가락 물어 아프지 않은 것 없듯이 이 나무는 이래서 좋고 저 나무는 저래서 좋아. 다양해... 꽃도 다르고 모양과 빛깔도 달라.” 나무를 말할 때 선생의 얼굴에는 인간을 말할 때의 그늘이 없다. 말라죽은 듯한 난(蘭)을 집 밖에 놔뒀더니 비 맞고 햇빛 받아 다시 싹 틔우더라고 하자 “그러면 반갑지.” 라며 환히 웃는다. 자연을 말할 때 행복한 웃음을 참지 못하는 그.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이다. “음료수는 맛있지만 금방 갈증나고 또 너무 많이 마시면 질리잖아. 하지만 물은 맛도 없는데 평생 먹을 수 있어. 나무도 평생 봐도 싫증나지 않고 늘 편해. 사람도 그렇지. 처음엔 좋다가도 볼수록 싫증나는 사람이 있고, 처음에는 ‘뭐 이래?’ 하다가도 볼수록 좋은 사람이 있어. 세상에 부담도 안 주고 편하게 하니까. ... 나무도 아무리 봐도 보기 싫은 것 없잖아. 그래서 좋은 거야.” “한달 전 쯤엔가 대구서 꼬마 애들이 왔는데, 아파트에 있으면 자꾸 안아달라고 하던 애가 아무 소리 않고 몇 시간 동안 저 나무 아래서 잘 놀더라고. 나무는 그만치 편한 거야.” 옛날엔 흙장난만 하면서도 종일 지겨워하지 않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도 많고 놀 것도 많은 데 금방 싫증내고 짜증낸다. “그건 노는 게 아니니까. 지 스스로 하며 노는 게 진짜 노는 거지 시설이나 도구로 노는 건 노는 게 아니야. 또 시골 애들은 아침에 나가면 하루 종일 자연 속에서 교육받는 거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지. 요즘 아이들은 전부 인공 속에 있어. 자연의 품, 진짜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가야 해.” 어른이라고 다를까. 하루 내내 흙을 안 밟고 사는 날이 대부분인 우리는 자연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온 걸까. “그러니까 자꾸 약해지는 거야. 정신은 자연 속에서 나오는데, 자연과 차단되니 약해지지 않을 수 없지.” 선생은 자연과 만나는 것이 어려울 게 뭐냐고 반문한다. “책 읽고 글 쓰면 피곤한 이유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기 때문인 것 같아.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하지만 나무를 만지는 건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야. 아침에 이 문 열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 약동해. 이건 돈 안 들여도 되는 건데... 양재동 가서 천 원 주고 (묘목을) 사온 거거든.” 선생에게 나무는 가만히 멈춰 선 정물(靜物)이 아니다. “나무는 참 많은 변화를 하거든. 무수한 변화를 한다고. 변하면서 지키는 거야. 나무들은 매일 변하면서도 그대로 있어.” 선생과 나는 가끔 나무를 보며 이야기했다. 우리의 마음이 가 닿을 때마다 나무는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을 자르면 그 단면이 엉망진창일 게 틀림없는데 이 느티나무 토막의 무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형들의 삶은 이처럼 아름답기를...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중에서
깨끗하고 가난한 삶 선생의 집 여기저기에는 살림살이와 농기구, 목공 도구, 책들이 저마다 편한 모양으로 놓여 있고, 사랑채, 안채 마당에는 ‘잡초’들이 무성하다. 그 속에서 선생은 단추 떨어지고 소매 터진 흰 셔츠에 때묻은 바지를 입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살림이나 옷차림 모두 수수한 선생은 가난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옛날엔 춥고 배고픈 경험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몰라. 가난이 나쁜 게 아니야. 가난을 겪어야 쌀 소중한 것도 아는데 지금은 소중한 게 없지. 옛날에는 밥 내버리는 게 없었어. 쉬면 씻어 먹고, 더 쉬면 빨아먹고, 영 못 먹게 되면 풀 쒀 사용했지. 물자가 풍부해지니까 이웃도 없고 인간이 황폐해진 거야. 풍족하다는 게 좋은 게 아니야. 계속 비 오면 곡식도 안 되고 늘 물 고인 논에는 나락도 맛이 없어. 가뭄도 거쳐야 병도 덜 들고 맛도 있지. 없이 사는 것도 배워야 해.” 지금은 너무 많이 있어서 문제다. “쓸데없는 게 너무 많아. 정말 필요한 것은 신석기 때 다 나온 것 같아. 그 다음에 나온 것은 필요 없는 것들이지.” 가난한 선생은 자신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부끄러워한다. “혼자 사는 데 이렇게 많이 필요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 바지가 열 개는 될 거야.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남쪽에서 음식 쓰레기 나오는 양만으로도 남과 북이 다 먹고 살 수 있다고 그러데. 옷도 많고 식량도 남아도는데 뭔 걱정이 있어. 집도 전국적으로 보면 남아도는데 죄다 서울에서만 살려니까 모자라는 거지.” 선생의 가난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겠지. 80년대에 ‘구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삶에서도 구조 자체가 죄 짓게 만드는 거지. 하지만 하기 나름이야. 인간은 주인도 될 수 있고 노예도 될 수 있어. 남 따라가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면 돼.” 내게 선생의 말은 익숙하지만 그 삶이 낯선 것은, 선생은 자신의 말대로 살고 있고 나는 늘 타협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메마른 곳에서 자란 나물수록 나이테가 쫌쫌하고 단단하고 아름답습니다. 향기도 아주 진합니다.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중에서
억세고 착한 사람 “세상이 좀 바뀔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선생은 “이미 바뀌었잖아. 나쁜 방향으로...”라며 쓴웃음 짓고는, “잘 모르겠어. 시민운동이 어떻게 될는지... 민중도 그렇고...”라며 허탈해 한다. 선생은 민중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 주려고 할 때 죽이라고 소리친 사람들이 민중이야. 민중이 폭군보다 더 포악할 수 있는 거지. 정치가 썩었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 뽑은 사람들이 민중이잖아.” 민중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편을 들어 왔어요. 알게 모르게 달콤한 인공 감미료를 동경하고 선망해 왔습니다. 서울을, 나라를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책임은 민중이 져야 합니다.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중에서 민중에 대한 기대를 버린 듯한 선생의 말과 글이 쓰다. 그러나 선생은 포기한 게 아니다. ‘세상이 바뀌자면 그 알맹이인 인간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는 인간의 근본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의 ‘희’는 ‘적을 희(希)’잖아. 좋은 일 하려는 사람은 몇 안 돼. 그 몇 사람이 속으로 바라는 것이 희망이야. 안 될 것을 해 보려는 게 희망이야. 그건 꼭 성공해야 되는 것도 아니야. 하는 일이 옳으냐 그르냐가 중요한 거지....”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해봤자 소용없는 일’은 없다. 선생은 소수라 할지라도 올곧게 사는 주체적 개인들을 희망한다.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이 옳은 개인이야. 협조할 건 협조하되 휩쓸리지 않는 사람, 온 세상이 다 좋다 해도 나쁜 건 나쁘다 말할 수 있고 온 세상이 다 욕해도 좋은 것은 좋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 세상 따라가는 건 개인주의가 아니야. 전부 따라가면 희망이 없어.” 선생이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관계 없다. ‘독주를 잘 해야 협주를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자립적 개인의 연대 없이는 공동체도 희망이 없다. “자꾸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사는 것 보면 쉽지 않아. 내외 둘이 살아도 싸우는데 어떻게 공동체가 되겠어. 나도 공동체 운동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인간은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아. 인간의 문제가 중요한 거지.” 대신 그는 아주 작은 부분을 공동으로 하는 것에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저 가로등 보이지? 여기 세 집이 사는데 밤에 가로등을 켜지 말자고 했더니 그거는 돼. 공동체도 그런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해.” 아주 작고 작은 일에 서로 부담감 주지 않고,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올 봄의 소원으로 삼고 싶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중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겠다는 것도 왜곡된 욕망이다. 선생은 자연에서 사랑과 미움을 함께 배운다. “계절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듯이 마냥 따뜻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돼. 비도 있고 뜨거울 때도 있고 가뭄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사물에 대한 대처 방안을 바르게 해야 해. 난 ‘사랑, 사랑’ 말 많이 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 어떻게 다 사랑해? 사랑하려면 미워할 줄도 알아야지. 사랑만 가르치는 것은 암과 같아. 모두 가르쳐야 해. 나쁜 짓하는 사람은 미워해야지. 나는 그런 사람들은 천벌 받을 거라고 봐.” 때로는 미워할 줄도 아는 ‘억세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 선생의 말이, 사랑이라는 허위의식 아래 비겁해져 있는 나를 죽비처럼 내리쳤다.
참 인간을 만드는 종교 “옛날에는 나무 하나 벨 때도 기도했지.”라고 말할 때 선생의 눈빛은 사뭇 종교적이다. 하지만 선생은 그것을 종교라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라고 할 게 없지. 종교가 없을 때도 삼라만상과 인간이 한 형제라고 생각했어. 인간 위주로 하는 것은 말도 안 돼. 다 같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 선생은 종교적 신앙을 갖지 않지만,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진짜 좋은 사람되기 위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인들은 착한 일 하기 전에 우선 나쁜 짓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기독교든 불교든 먼저 인간이 돼야 해. 진짜 좋은 사람되기 위해 예수도 믿는 거야. 기독교도 불교도 사람답게 사는 길이야. 그렇지 않고 아멘하고 회개해봤자 소용없어. 삶을 통해 회개해야지.” 삶을 통한 회개 없이 더 많이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더 많이 죄짓게 해달라는 기도와 무엇이 다를까. “예수님이 얼마나 피곤하시겠어. 성서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온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 “성서도 읽으세요?”라는 물음에 “권정생 선생이 자꾸 읽으라고 해서 구해놨는데 별 재미가 없어.”라며 웃는다. “그분이 요 옆 안동 살아. 그분처럼 사는 게 예수처럼 사는 거 같아.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말 가난하게 살고, 말과 삶이 일치해.” 그는 종교가 자유롭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연과 자유는 같아. 정말 자유는 자연스러운 거야. 어떤 사람이든 산을 보면 좋아하잖아. 목사 만들고 권사 만들고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닌 것 같아. 하나의 구조요 인위지. 인위란 다 가짜야.”
깊은 산 속 약초 같은 사람 시인 신경림은 전우익 선생을 가리켜 ‘깊은 산 속 약초 같은 귀한 사람’이라 했다. 선생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며 약초 같다는 말엔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 말고도 쓰다는 의미도 있음을 상기했다. 선생과의 대화는 달지 않았다. 순간 순간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라고 가르친 선생은 쓰디쓴 약초 같은 이였다. 선생 댁을 떠나 봉화읍 버스터미널에서 영주 가는 차를 기다릴 때 장마 비 잠시 멈춘 사이 잠자리 한 마리가 물 고인 아스팔트 웅덩이에 부지런히 꼬리를 대며 알을 낳고 있었다. 그 순간엔 물 풍부한 자리지만 비 그쳐 해 나면 금세 말라버릴 것을 잠자리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쓰럽게 그 모양을 지켜보던 나는 그 잠자리의 하는 짓이 내게 무척 낯익은 모습이라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요즘은 밭에 가 일하며 편히 지내. 부지런히 사는 게 힘들지 농땡이 부리며 사는 건 편하고 괜찮아... 나도 처음엔 부지런했지. 하지만 부지런한 게 좋으려면 인간을 따져봐야 해. 옳은 일을 할 땐 부지런한 게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농땡이 부리는 게 더 좋은 거야.”
크고 오래 묵은 나무(老巨樹)는 이미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다만 하늘과 땅을 우러러 조용히 기도 드리고 있는 것 같답니다. 그러한 생명 앞에 섰을 때, 우리 마음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겠죠. -『사람이 뭔데』중에서 |
필자 정경일은 철학과 신학, 종교학을 공부했으며, 세상 속에서 세상을 넘어서는 성찰적, 수행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개인 사이트인 [종교적 인간탐구] http://homoreligiosus.net에 일상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진실을 드문드문 기록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