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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단풍
뉴욕의 단풍도.. 한국의 단풍만큼 세계에서 유명합니다. 그런데 올 뉴욕의 단풍은 맛이 약간 간 것처럼 별로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심한 비바람에 비까지 내렸으니.. 많은 잎들이 추루륵~ 떨어지면서 바람에 날렸으니.. 더욱 볼품없는 늦 가을 산 풍경을 연출하고 있겠지요. 자연 역시 사람의 마음과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고 새삼 느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깨치신 법이 사람들이 이해하기 너무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오해만 일으켜 분란만 일으킬 것이라 보고 침묵 속에 열반에 드시려 했는데.. 브라만 신(神)의 간청으로 법을 전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부처님의 염려대로 불제자들 가운데 불법을 잘못 이해하는 자들이 있어 그들을 질책하시고.. 깨우쳐 주기 위해 시설하신 것이 <반야심경> 내용입니다. 가장 많은 오해를 일으키는 곳은.. 부처님께서는 5온(=일체)은 무상하고 고이며, 무아이며, 공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제자들은 무아는 받아들이지만 법은 실유(實有)라고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석가세존께서 돌아가신 후 2, 3 백년이 지나 상좌부 불제자들이 저지르는 오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해서 반야부에서는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공을 정리해 <반야심경>이라 하여 상좌부의 견해를 부정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반야심경> 내용 가운데 두서너 곳을 보면.. 1. 색(수상행식)이 공(色卽是空)이라는 것은.. 석가세존께서 평소 가르치시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반야부 대승불교는 석가세존의 정법을 이었음을 보여주는 것도 됩니다. 2. 공이 곧 색(수상행식)이라는 것(空卽是色) 은.. 색이 공임을 듣고 이해했어도, 공이 색임을 실천으로 체득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보여줍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듣고 이해하면 곧 실천하는 지행합일의 시대였기에 굳이 공즉시색이란 말이 필요 없었지만.. 대승불교가 나오는 시기에는 이해와 실천이 구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여 반야부 불교의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일체(=5온)가 공임을 이해와 실천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한편 아비달마(=부파) 불교시대가 시작되면서, 무아는 인정하지만.. 5온, 12처, 18계 등의 법(法)은 실재로 받아들이는 상좌부 불교가 인도 남방지역을 중심으로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12연기법을 3세양중인과설로 해석하는 것도 이때 보편화 되는데.. 그 틀은 과거 현재 미래인 3세(世)를 실유(實有)로 보고, 그 안에 일어나는 일체(法)의 인(因)과 과(果)를 실재(法有)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4성제의 멸성제 역시 이 몸이 죽어야만 완성된다는 논리를 펼치게 됩니다. 결국 부처님께서는 무상, 무아, 공을 가르치셨는데.. 상좌부 시대에 이르러 법 실유가 되었고, 불자들은 법 실유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처럼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해설이 <구사론>과 <청정도론>입니다. 해서 반야부에서는.. 공(空)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삼 정리해 보이고.. 이어서 당시 불자들이 알고 있던 법 실유를 부정하게 되니.. <반야심경>에서는 공(空) 가운데에.. 무(無)색, 무(無)수상행식, 무(無)12처, 무(無)18계, 무(無)삼세양중인과설, 무(無)4성제 까지 빠짐없이 하나하나 나열하며 실유가 아님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무색 이하 무4성제를 보면 마치 부처님의 정법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나.. (대승불교에 대한 오해) 실은 당시 불교계(=상좌부)가 알고 있던 법 실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석가세존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됩니다.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대승불교인 반야부는 당시 잘못 이해되고 있던 불교(=상좌부)를 부정하고, 석가모니 가르침을 새롭게 세워 전하고 있는 불교라는 것입니다. ().. 4. 만일 법 실유라고 착각하는 게 상좌부 시대에만 그랬다면.. 반야부의 주장도 그때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지금도 불교를 제법 공부했다는 불제자 사이에 똑같은 실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이 항상 으뜸 경으로 존중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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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공에 대한 초기 불교의 확실한 뜻을 알려면.. "업보는 있으나 그 작자는 없다"는 <잡아함경, 335. 제일의 공경>에 나오는 뜻을 새겨야 할 것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