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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월 국회에서 한글날 국경일 통과 축하모임 때 참가자들이 “한글날 만세! 한글만세! 한겨레와 대한민국 만세!”하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이철우 기자 |
<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한글만 쓰기 운동을 넘어 한글세계화·정보화 운동 등 새로운 한글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기쁘다. 우리 말글을 강력한 세계 언어로 만들겠다는 꿈은 국민과 정부가 함께 노력하면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다. 젊은이들이 나서 우리말을 영어보다 더 강력한 세계 언어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 전택부 선생(91살, 전 한글날국경일제정 범국민추진위원장)
세종대왕이 1443년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한글)을 만들었지만 오랫동안 중국 한자에 길들여진 관리와 양반들은 ‘한글’을 천대하고 쓰지 않았다.
한글이 나라글자가 된 것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조선이 망해가던 대한제국 고종 때 ‘국문’(1894년 고종 칙령1호)이라며 공문서에 쓴 것이 시작이다. 이후 ‘독립신문’이 국문으로 나왔고,(1896년, 서재필 발행) 이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 주시경이다.
주시경은 한글을 닦고 가르치는 일에 매달렸고, 일제식민지 시절 그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우리말과 한글을 갈고 닦는 일을 하게 된다. 일제가 물러간 뒤 남녘에서는 ‘한글학회’가 조선어학회의 명맥을 잇고 있다.
북녘은 그동안 한글만 쓰는 정책을 착실히 벌여왔지만 남녘은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한국어문회(초대회장 이희승)를 중심으로 일제식민지 시절 학자들이 모여 한글 쓰기를 가로막았다.
한글학회는 학술단체이지만 한글단체와 힘을 모아 한자혼용단체에 맞서 수 십 년을 싸워왔고, 결국 남녘 기본 국어정책이 한글만 쓰는 것(법률 제6호 한글전용법, 1948년 제정)으로 되었다.
한글학회,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국어운동대학생회·동문회, 외솔회, 한글문화연대,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을 비롯한 50여개 한글 관련 단체들은 1987년 4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초대회장 안호상)을 만들어 한문에서 우리 말글을 해방·독립시키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한글문화단체, 한글만 쓰기-한글 이름짓기-한글 기계화 등 큰 성과 일궈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글문화단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글만 쓰기운동’이다. 이 운동은 사실 대한제국 말기부터 주시경이 시작한 운동이고, 48년 남녘 단독정부가 세워진 뒤 한글학회가 가장 힘들여 한 일이기도 하다.
한글학회 김계곤 회장은 “우리 학회는 지난 100년 동안 한글이 나라 글자로 자리 잡고 널리 쓰이는 데 혼신을 다했지만, 여전히 일부에서 국한문 혼용과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기도 한다”며 한글학회만의 힘으로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한글관련 단체들은 교과서와 공문서를 한글로 쓰게 했고,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게 했으며, 수구보수 신문들조차 한글을 많이 쓰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한글로 이름 짓고 쓰기 운동’도 벌이도 있다. 서울대국어운동대학생회(1967년 창립, 초대회장 이봉원)가 시작한 ‘한글이름 펴기 운동’은 그 뒤 연세대·고려대·동국대에 국어운동학생회가 만들어지면서 더 활발한 활동을 했고, 한글전용운동에 큰 힘을 보탰다.
한글이름 짓기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이봉원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동문회 회장은 “이제 한글 이름이 더욱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 '한글이름의 날' 제정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며 이 시대에 한글이름을 확고하게 정착시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통일신라’는 1300년 전 당나라 힘을 빌려 ‘삼국통일’한 뒤 관직 명칭·땅 이름·사람 이름 등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통일신라’ 이전에는 한문으로 이름을 짓더라도 연개소문(淵蓋蘇文)이나 박혁거세(朴赫居世)처럼 우리식으로 네 글자 이름을 지었지만 김유신(金庾信)이란 이름처럼 중국식 세 글자 이름이 굳어져 지금껏 이어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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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가 살아계실 때 국어운동대학생회 학생들을 많이 사랑하시고 도와주셨다. 왼쪽부터 김불꾼, 이대로, 공병우, 김한빛나리. ©이대로 논설위원 |
한글문화운동에서 한글기계화 운동은 빠질 수 없는 주요활동이며, 특히 공병우 박사(1907-1995)의 공로를 빼놓을 없다. 공병우 박사는 일제식민지 시절 이름난 안과 의사였지만 해방 뒤에는 한글 속도 타자기를 발명하고, 한글 기계화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또한 우리말을 살리고 바르게 쓰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일제 한자말과 일본 말투로 된 글을 그대로 한글로만 적어서는 한글과 우리말의 빛이 바래기 때문이다.
부산 중·고교에서 국어선생으로 있던 김정섭 씨는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을 만들어 우리말 바르게 쉽게 쓰기 운동을 했고, 고 이오덕 선생(아동문학가)도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투를 쉬운 우리말로 쓰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초등학교 선생을 중심으로 만든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공동대표 이오덕, 김경희, 이대로)는 지금껏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운동을 해오고 있으며, 해마다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로 어떤 것이 우리말을 살리고 죽이는 길이지, 누가 그런 사람인지 알리는 일을 한다.
이들은 그밖에도 국어기본법 제정운동(2004년 12월 29일 제정, 2005년 7월 1일 시행령),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2006년 12월 8일 국경일제정)등을 벌여 일정부분 성과를 내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만 적는 한글만 쓰기도 뿌리내리고, 우리 말글로 이름도 짓게 되고, 국어기본법안과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법안이 통과되는 등 기초는 닦였다고 할 수 있다.
영어 조기교육에 따른 한글문화운동의 새로운 모색 필요 그러나 1994년 김영삼 정권이 영어 조기교육을 시작하면서 불기 시작한 영어 바람은 학생·학부모는 말할 것도 없이 교육관련 기관과 정부, 국민 모두가 영어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
한글관련 단체들은 이 영어 바람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남녘 지배층인 정부와 경제단체, 일류대학이 하나가 되어 영어바람을 부채질하고 있다.
박용수 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은 “지나날 한글단체는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자와 싸우는 데 열심이었고, 결국 한글의 승리로 끝났다”며 “이제 기업과 언론 문학인과 많은 국민이 참여해 새롭고 강력한 국어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 영어와 맞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곳은 기업과 언론”이라며 “방송은 평소 쓰지 않는 외국어를 퍼뜨리고, 기업은 외국어를 써야 돈벌이가 잘된다는 환상에 젖어있다”고 밝혔다.
김수업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은 중국·일본·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의 한국어 바람을 거론하며, “나라 안에서 우리말을 지키고 나라밖에서 우리말을 더 퍼뜨리려면 한글단체뿐 아니라 언론·기업·시민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한글문화세계화협의회’같은 모임을 만들어 힘을 모을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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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회관 앞에 있는 주시경 선생 흉상 앞에서 한글사랑을 다짐하는 한글운동가들. ©이철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