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인연(因緣)에 따른 수행(3)
간탐어물(慳貪於物) 시마권속(是魔眷屬)
자비보시(慈悲布施) 시법왕자(是法王子)
“물건을 아끼고 탐하는 것은 바로 마구니 권속이요,
자비를 베푸는 자는 바로 법왕의 자식이다.”
[慳貪於物은 是魔眷屬이요] (간탐어물 시마권속)
간탐,아낀다. 간은 아끼는 것이요. 탐은 욕심내는 것이다.
그러면 간은 자기에게 있는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 것을 말하고,
탐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것을 자기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게 탐이죠.
물은 여러가지 물질입니다.
물질.여러가지 물질을 간탐하는것을 시마권속.
보통 ‘이 마구니의 권속이고’ 이렇게 새기는데 그러면 안되죠.
이 책상, 이 사람, 이 마이크, 이 노트, 이 수건, 이 물, 그러면
그건 어떻게 됩니까. 가리키는 관형사가 되죠.
이 책, 이 사람, 이 옷, 관형사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렇게 쓰는게 아니고 곧,
아니면 이것은 그렇게 해석을 하는게 좋고 그렇지 않으면 영어의 be동사 있죠.
이다,아니다 하는 그것과 같이 해석을 해도 관계가 없읍니다.
그럴 때에는 한문으로 할爲(위)자 있죠. 위할위자 하는것.
그 글자하고 같이보면 틀림이 없읍니다.
그래서 그 글자는 ‘이’하고 ‘이 -이다’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건 관형사가 되기 때문에 이, 그, 저는 관형사거든요.
이것, 그것, 저것하는건 관형사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그, 저가 관형사인데 그냥 ‘이 마권속이요’,
이렇게 해석하면 안되죠.
‘곧, 마구니의 권속이요’ 하던지 아니면 그것을 해석하지 말고
‘마구니의 권속이요’이렇게 해버리면 된단 말씀이죠.
그렇지 않으면 좀더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곧,
이것은’ ‘이렇게 하는 그 짓은 마구니의 권속 밖에 되지않고‘
이렇게 해석을 해야지 ‘이 마구니의 권속’ 이렇게 하면 그건 틀린겁니다.
이것은 마구니의 권속. 권속이라 하는건 무리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족속이라 그러잖아요.
또 종류. 마구니의 종류. 魔는 마라의 준말인데 殺者(살자). 죽일살자.
놈자라. 惡者(악자). 악할악자 놈자라 그렇게 번역을 했는데
전에는 마자를 음표이기 때문에 이것도 음표기입니다.
‘마라’라는 범어를 음표기한 글자인데
양무제 이전에는 이 글자를 삼마(麻) 밑에다가 귀신 귀자(鬼)를
하지 않았다고 그러죠.
음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표기만 하면 되니까, 그랬는데
양무제가 불교를 좋아하고 또 불교공부를 많이 한 임금이죠.
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범어에 마라라고 하는것은 다른 사람한테 나쁘게,
남의 공부를 방해하고 다른 사람을 나쁜곳으로 인도하는 그런걸 ‘마’라고 하니
거기에다가 귀신 귀자를 붙이자 이렇게해서 양무제 이후에
‘마’를 삼마麻 밑에다 ‘귀신 귀(鬼)’字를 붙였다.
그렇게 말합니다.
어쨌건 마의 종류가 되고, 마의 종족이 되고
[慈悲布施]는 (자비보시)
반대로 자비로 보시하는 것은
[是法王子]니라 (시법왕자)
원래 법왕자는 문수사리 법왕자하듯이 보살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법왕은 부처님을 가리키는데,
부처님은 법에 대해서 깨달음에 대해서 가장 으뜸가는 분이다해서
부처님을 법왕이라 그럽니다.
법화경에는 '我爲法王(아위법왕)하야 於法(어법)에 自在(자재)라.'
'나는 법으로 왕이 되어 가지고 모든 법에 자재 하다.' 이런 말씀이 있어서
부처님을 법왕이라.
또 공에대한 이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공했다고 하는 空의 이치를
누구보도 잘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空王(공왕)이라 하기도 하는데,
法王(법왕)은 부처님을 가리키고 법왕의 아들은 바로 보살이라 그 말씀이죠.
흔히 문수菩薩(보살)이나 미륵菩薩을 법왕자라 그렇게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고, 菩薩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법왕의 제자. 곧 佛子(불자)라는 의미입니다. 곧 법왕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올바른 제자가 되고,
자비보시하는 것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욕심내고 아끼고
이렇게 하느 것은 바로 마의권속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저와 함께 스님이 된 사람이 있는데 욕심이 많아요.
처음에는 큰방에서 함께 생활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 탁자 밑에는 모두 그 스님의 짐이 있을 정도로 물건이 많아요.
그렇게 물건을 아끼다 보니 그 스님은 지금도 부자로 살아요.
그런데 그 업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여전해요.
스님들의 생활이 무소유라는 것 알고 계시죠.
그렇다면 무소유의 개념이 무엇인가요?
물건을 안들고 다니는 게 무소유가 아닙니다.
자기 영역권이 없어야 무소유예요.
스님들은 절에서 결제기간 즉 석 달을 지내면 다른 절로 가야 돼요.
석 달 이상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기둥 뿌리까지 아까워져 버려요.
여러분들도 좋은 집으로 이사간다고 헌집 팔고 새집으로 가는데도
자꾸 뒤돌아 보느라고 못 가죠.
그 동안 사용했던 집이 아까워서 그래요. 그게 인간이에요.
따라서 스님들은 그 집착이 생겨나기 전에 떠나야 해요.
석달 지내고 해제되면 바랑 하나 짊어지고 떠나야 해요.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인연 닿으면 또 그 자리에 머물게 되죠.
이렇게 영역권이 없어야지 단순히 맨몸으로 다닌다고 무소유가 아닙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 참으로 기가 막힌 거예요.
간탐심을 못 버리면 사는 이 순간이 지옥인 거예요.
반대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은 법왕자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자비심과 보시하는 마음이에요.
이것은 훈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똑같이 배고플 때 자기 것을 남에게 줄 사람이 몇이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진짜 법왕자예요.
자비로운 마음, 보시하는 마음 모두 말로 기억하자는 것 아니에요.
그런 상황에 부딪쳤을 때 마음으로, 행동으로 나와야 해요.
자비심과 보시는 우리를 극락세계에 가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을 높은 곳에 끌어 올려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단지 말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와야 하죠.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자비심, 보시가 행동으로 나와야 해요.
남에게 아낌없이 주고 먼저 양보하고 해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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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세하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으로 말씀을 주십니다 제대로 이행을 못하니 참으로 부끄럽게 봅니다 이것역시 훈련으로 되어진다하니 제자의 모습 배웁니다 고운인연으로 바라봅니다 허당님 복덕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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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것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