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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십일조 헌금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자!
(히 7 : 12, 고후8 : 11 - 12, 9 : 5, 7)
현재 한국교회의 90% 이상이
소득의 십분의 일이 (십일조)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율법적인, 모세의 십일조 가르침을 철저히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재물의 축복을 주실 것임을 말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것을 바치지 않으면 도적질한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그에 따른 징계(懲戒)가 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있는 실정입니다.
과연 수입의 십의 일만이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라도 십의 일을 받으셔야 직성이 풀리실까?...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일찐데...
또 하나 문제점은,
십일조를 안 하면 믿음이 없는 성도이며
십일조를 온전히 하느냐 안 하느냐를 떠나서
월마다 하면, 믿음이 좋은 신앙 인으로 기준이 되어
집사나 장로의 직분에 오를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십일조가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잘 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대우(?)받고
나아가 신실한 신앙 인으로 존경받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현실은,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은 결코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교회가 되어버린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물신(物神)으로 섬기고 있으니,
다름 아닌 배금주의(拜金主義)와 물신숭배주의(物神崇拜主義)에
오염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축복을 빌미로
율법적 십일조의 신앙생활을 지키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율법이나, 그중 한 가지 십일조를 지킴으로
구원받고 복 받는 것이 아니고 율법의 완성자이시고
구원의 주 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영생의 축복을 얻는 것일 찐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인들이 십일조 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어떻게 교회가 존립(存立)되겠는가 묻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운영에 대한 염려라기 보다는,
교회 재정이 풍족해야 목회비도 교회건축도,
많은 선교와 구제도, 그리고 최신형 집기나 시설들을 통하여
목회자 자신과 교회의 외적 위상(位相)을 높이기 위한 때문일 것입니다.
십일조를 많이 하던 교인 하나가 이사를 가게 되면
그 교회 목회자는 힘이 잃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심으로 성도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일까요?
그러다가 십일조를 전혀 하지 못하던 성도가 떠나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가 물질에, 특히 돈에 노예가 되고 있는 실정이기에,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과연 교회를 세우신 분이
누구인가 말입니까?
교회들에게 율법주의 적인 십일조를 가르치지 말라 하고,
율법, 그리고 십일조 시대가 끝났으며 제도는 폐지되었다고
양심적으로 학설(學說)을 전개하면, 교계는 외면해 버리다 못해
심지어 이단시(異端視)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재정에
십일조의 위치가 80%이상을 차지하기에,
십일조의 노예가 되어버린 기독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 가정이 등록하였다 싶으면
먼저 신상(身上)에 대한 상담에 앞서
사회적 지위와 부(富)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이러할 진데,
특히 도시에서 돈 없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한마디로
교회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선량한 어린양들에게 “축복 받는 비결 십일조!”
또는 “십일조 학교”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일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관 일뿐, 목사나 장로나
돈 많이 내는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상에 존재케 하시든
없애시든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의 재정을 늘이고,
교회의 외형을 크게 보이려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방법도,
하나님의 일도, 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7 : 46 ~ 5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교회가 커지는 양적인 것에 있지 않고
양(羊) 하나 하나가 믿음이 소록소록 성장되어 갈 때
그것이 진정한 부흥이요 교회의 발전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십일조만 바치고 나면 나머지는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됨을 봅니다.
즉, 십 분의 구를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십의 일을 내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금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또한 냈으니
낸것만큼 그 이상 복이
있을 것이라는 의도를 갖고 헌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뇌물을 드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대한 바른 이해는 :『십일조를 넘어서』조누가 목사
지음, 1999년, 베틀․북 출판사 P65 - 76까지를 참조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따르는
십자가와 멍에를 멘 삶인 것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인은 돈으로 신앙을 살수도 없으며,
돈으로 천국열쇠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500년 전 종교 개혁의 시발점(始發點)은
그놈의 “돈” 때문이었습니다.
중세시대 엄청난 성당들을 지어서
하나님을 기쁘게(?)해 드린다하였으나,
지금은 텅텅 비어있는 고물에 불과 한 것을
두려운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바치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 가운데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면
참으로 잘하는 것이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가르치시기를
교인의 의무인 것으로 설교하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모세 율법에 의한 십일조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었음으로
율법에서 명한 십일조를 바칠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다 이루시고, 완성하시고,
마치심이 되신 율법의 실체(實體)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의 전부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을 믿고 행하는 우(愚)를 범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길로 부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견해는 우리의 견해뿐만이 아니요,
루터와 칼빈에 의한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과 북미와 남미 등 전통 있는 주요 개신교(改新敎)의 입장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 성전에서
제사장과, 회막에서 봉사하던
레위인의 생계를 위해서 모세의 율법으로 제정된 것입니다.(민 18:21)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이 드리던 동물제사의 제도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폐지되었습니다.(히 9:11-12, 10:8-9)
“제사직분이 변역 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 한다”(히 7:12)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 이후
옛 언약과 모세의 율법은 폐지되고
더 좋은 새 언약과 새 법이 들어섰습니다(히 7:18, 8:6-8.13)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으로 대체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은
모세의 율법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그러나 지금도 십일조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첫째 :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사도 바울의 초대교회는
십일조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신약에 전혀 없다.
둘째 : 갈라디아서 4:5절의 “율법아래 있는 자들의 속량하시고”
갈라디아서 (5:1, 2:4) 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할 때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셋째 : 율법의 613가지 중에 십일조 등 한 두 가지만 골라서
지키게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한편 신약의 성경구절에 대한 (마 23:23-24, 눅 18:9-14)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게된 배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새 언약”(눅 22:20)과 새 법이 발효되기 이전의 말씀이며,
예수님 자신 또한 율법의 시대에 오셨기에 십자가의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가 아닌 율법만을 신봉하는 유대인을 상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 복음이 온 후에는
옛 언약과 모세의 율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십일조 또한 모세의 613가지 중 한 가지이기에
역시 지킬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요,
우리는 여전히 신약이 아닌 구약의 종교인 유대교를 믿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구약에 말라기 3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현대인들에게 지나가 버린 조선시대의 법을 지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축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의 헌금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뇌물” 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도대체 왜 성도들에게
온전히, 정확히 지키지도 못할 십일조를
지키라 하여 죄책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려 한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우주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돈으로
만족시키려 하며, 돈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음 안에서 자유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가르치는 말씀의 종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바르지 못한
십일조의 해석으로 인하여
도둑놈의 멍에를 쒸우지 말아야 할 것이고,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완전한 법이기에
예수그리스도 외에는(하나님 자신) 지킬수 없는,
어느 누구도 100% 이땅 어떤 기독교인도 정확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수는 없는 것임을 깨닫고 기복적이고 율법주의적 십일조 생활을
가르쳐서도,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또한 물질 만능주의가
교회 안에서 가르쳐져서는 안됩니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을 가르치는 일에서 십자가의 삶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눅 12:15)
어서 속히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1 : 11 ~ 15)
오늘날 신약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폐하여지고 이미 완성 되어진
(주께서 전 존재를 드림으로) 율법적인 십일조 헌금을
가르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시대에는
십의 이든, 삼이든, 십의 일이 안되어도 상관 없으며,
또한 수입이 없거나,마음에 없으면 안 내도 되는(고후8 : 11 ~12,
9 : 5, 7)기복적이고 뇌물성 없는 순수하고 자발적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헌금의 자세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출처] 십일조 헌금을 바르게 알자!|작성자 빛과생명
첫댓글 성경에 기쁘게 바치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성경에 기록 되었다고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주는 자를 사랑한다고 했읍니다.(God loves cheerful giver).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상명령은 나누어 주라는 것이지 하나님께로 가지고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는것이 하나님께 빌려 주는 것이고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가질 것이라고 했읍니다.지극히 적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고 그에게 하지 않으면 나에게도 하지 않는것이라고 했읍니다.그리고 바치라 바치라는 고르반으로 너희들의 습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 시키고 있다고 했고 쓸데 없이 경
쓸데 없이 경배한다고 하면서 입술로는 나를 경배하나 마음에서는 멀다고 하였고 바울은 나는 많은 사람들과 같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익을 위해 행상(prddle)하지 않았고 왜곡하지 않았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며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지만 나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고 하고 내 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 돈 받지 않고 공짜로 전 한 것이라고 하였고 죽을지언정 그누구에게도 한푼의 부담(a burden)도 주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하면서 다만 어려운 성도를 위한 구제 헌금을 부탁하였는데 그것도 내 앞에서는 하지말고 미리 준비하고 수입에따라 일정량을 (정하지 않음) 따로 떼어 놓으
떼어놓으라고 했는데 이런 바울의 입에서 십일조가 나왔다면 그는 一口二言 者에 지나지 않읍니다. 공짜로 받았으니 공짜로 주라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고 이명령을 가장 철저하게 지킨 자가 바로 바울입니다.예수님은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강도라고 했고 아버지의 집을 감히 시장터로 만들고 있다고 하였읍니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신도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이리떼뜰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하고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 돈에 걸신이 들리고 환장했읍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그리고 이런 말이 마치 성경에 있는 것으로 왜곡하고 있읍니다. 만약에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돈이 보물이고 기준이고 척도로 마음을 돈에 두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과 돈에서 돈을 택한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외치는 구호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있고 네 마음을 하늘에두라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고 하였으니 네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거기에 고정시키라고 하는데 돈이 있는곳에 마음이 있다니 이 무슨 황당한 말입니까? 이말씀은 산상수훈에서 나오는 말인데 땅은 좀도 나고 녹도 쓸고 도둑이 도독질을 하지만 하늘은 좀도 녹도 나지 않고 도둑이 도둑질도 못한다. 네 보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시었읍니다. 지금 장소를 묻고 있읍니다.도대체 네 보물이 어디에 있느냐? 땅이냐? 하늘이냐? 네 보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말씀인데 네 내 보물은 땅에 있고 돈이 내 보물이고 내 마음은 땅에 있고 돈
돈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읍니다. 지금 교회는 말씀을 왜곡시키어 초점을 돈에 맞추고 돈을 섬기고 돈으로 평가하고 돈이 척도이고 기준입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함은 만 악의 뿌리이고 돈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축복을 살려는 자에게 너의 돈은 너와 함께 망하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지금 교회는 성경을 거꾸로 가르치고 있읍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제적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고 탐욕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순진한 ( 성경을 잘 모르는) 자들을 부드러운 말고 아첨으로 속이고 있다고
마태 23 장에는 7 가지 禍가 있는데 그중에 4 번째가 바로 이지구상에서 십일조 생활을 가장 잘하는 자들에게 향한 禍 입니다. 그들이 십일조 생활을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근채의 십일조까지 했다고 했으니 아주 철저하게 잘 했지만 하루살이 삽일조는 걸러내어 외치고 강조하는데 약대는 삼키어 흔적도 없기 때문 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했는데 하루살이 십일조는 제대로 보는데 정말로 중요한 약대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십일조를 부정하지는 안했지만 소극적으로 하루살이로 인정하신것이고 하루살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으로 오히려 이런 십일조를 약대화하여 강조하고 진짜로 중요한 약대는 소홀이 하기에 지금이들에게 화를 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십일조를 소극적으로 하루살이로 인정하는것을 보면서 지금 이들에게 禍를 발하고 있는 정말로 중요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소경이 아닌가?
지금 성경을 거꾸로 알고 있는것이 2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나는 율법을 페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기위해 왔다는 말씀을 마치 율법을 인정하는 것으로 율법을 내세우는 자들이 네세우는데 아니다 율법이 완전하다면 내가 올 필요가 없는데 이것이 불완전하고 이것으로는 안되기에 그렇다고 이것을 없애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이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 왔다고 하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밝힌 아주 중요한 말씀인데 이는 율법을 인정한 것이 아니고 율법은 불완전하기에 그래서 그것으로는 안되기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로는 안되기에 내가 왔다는 것이고 바울은 같은 말을 완전한 예수가 왔으니 불완전한 율법은 페기
똑 같은 오해를 이 마태 23 장 에서도 하고 있다 마치 예수님이 십일조를 인정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지금 이들에게 화를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하루살이로 인정한 것만 보고 에수님도 인정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십일조를 가장 잘하고 있는 자들에게 소경이라고하며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고 하며 화와 저주를 발하고 있는데 이것이 십일조를 인정하는 것인가?
율법이 말하는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십일조가 뭔지 아십니까? 선악과는 뭔지 아십니까? 말씀을 옳다 아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변경할 권한을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시면 어떨까요? 율법이라고, 구약성경을 하나님께서 폐하셔습니까? 복음서라고, 신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것을 우리는 다 지킬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께서 이뤄놓으신 일에 온전히 믿고 따르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머리털 하나도 어떻게 할수 없는 우리입니다.
필자의 글에 많은 부분을 동의 합니다. 그러나, 저와 의견이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일일이 반론은 하지 않지만, 위에 글로 인해서 혹 초신자들이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을까 걱정도 해 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신 것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것이 아닙다. 완성 하러 오셨다고 하셨고, 롬13:10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위에 적으셨듯이 613가지율법을 우리 힘으로는 다 지키기 어렵습니다.그러나, 성령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생각 내 힘으로 하지 마시고, 성령님과 연합 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변명 보다는 순종으로 섬겨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기도하면서 힘내요....
율법을 폐하였다. 혹은 온전케 하셨다 물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틀릴 수 있고 맞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십일조 이야기도 아니고 지키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율법을 폐지 혹은 무가치하게 여기시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이런 사고는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와 별반 차이가 없지 않나 생각 됩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언약의 백성이요, 할례 받은 백성이요, 말씀을 받은 백성 들이라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지요 그것도 참된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임으로 해석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참된 율법인양 지키면서 자신들은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율법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율법을 무시 하는 것은 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생각 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끝으로 부탁 드리고 십은 말은 십일조에 대한 말을 너무 부각 시키면 성경의 본질을 흐리게 될것같은데 말씀하심같이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여야 할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참고로 말씀 드립니다. 십일조가 교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작은 교회의 이야기이지 큰 교회의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아무리 말씀을 해도 큰 교회는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고요 더욱 작은 교회들만 어렵게 될 뿐이랍니다. 큰 교회에서는 많은 헌금을 내라고 해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냅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우리 목사님은 은혜가 많고 사랑이 넘처서 성도들에게 복 받으라고 이렇게 헌금을 자주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현재 우리나라의 80%가 미자립)가 일년에 한 두번 헌금 설교을 해도 목사가 돈이 없는 교회이기 때문에 자주 돈 이야기 하니까 부담스러워 이교회 더 다닐수 없다
고 하면서 교회를 큰 곳으로 옮기는 실정이랍니다.
yes24 님은 님 위주의 성경을 참 잘하시네요 님 생각에 옳은신대로 하는건 좋치만 그것이 만약 참신앙을 걷는 사람들에게 가라지를 뿌리는 거라면 어찌하실려고 합니까? 님보다 더 많이 공부한 신학자들도 님처럼 십일조에 대해 그리 비판한적은 없는것으로 아는데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
참 안타깝습니다. 한쪽에서는 기복신앙에 치우쳐서 성도님들 낸 십일조와 헌금으로 교회 건물 백화점 처럼 지어놓고 또는 비싼 자가용과 온갖 비리를 자행하고 한쪽에서는 십일조를 폐지 해야한다는 말로 교회의 재정부분에 심각한 존립을 만들어 자칫 교회 운영에 큰 차질될 우려가 됩니다.말세는 말세 이군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아니하며..(딤후3:1~6)
참 좋은 글입니다. 지금 적지않은 교회에서 <병아리를 키워 닭이되어 알을 받아 먹어야되는데 병아리한테 알을 낳으라고하거든요.>이것이 문제인것입니다.여러분들 십일조에 대해 옳다 그르다 쟁론할필요없어요.무엇이든 마음으로하면 아무일도 없어요.그런데 사실 많은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라하거든요.십일조를 내면 축복을 받는다고말입니다.심지어 집사선거 조건이 십일조입니다.이것이 문제인거예요.
십일조로 먹고사는 먹사들이 가득한 이땅에서 십일조 폐지운운하면 그들이 목숨을 걸수 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이후 없어졌던 십일조, 가톨릭과 유럽교회에서도 유명무실한 십일조가 왜 이땅의 개신교들만 이토록 득세를 하고 있을까요?
아직도 십일조 에 대해서 논쟁이 있군요 ,예를 들겠습니다 .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거의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또한 수학여행 을 보낼 때 수학 여행비 에다 가 별도로 용돈 도 주지요 그래서 수학여행을 잘 맞치고 돌와오면 부모는 잘 다녀온 자녀를 보고 마음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요 왜요 질병이나 사고로 자녀를 잃을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지요 그런대 그 자녀가 용돈을 거의 다쓰고 그중에 아주작은 돈으로 효자손 . 머리핀 .부러치 이런 선물을 사오면 그 자녀가 정말 대견스럽고 더 믿음직 스럽고 사랑스럽지요 왜일까요 부모의 돈으로 경비와 용돈을
주었는데 왜 좋와라 할까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는것에 철이 든는것에 대견스럽고 부모 와 관계성이 유지 대는것이 기쁜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과 자녀됨과 죄 사함과 물과 공기와 자연을 주셨는데 어찌 주님께 십일조를 드린것이 그리 못 마탕 하는지 일쌍사가 마음 가는 곳에 돈도 가는것이지요 십일조가 들어와야 교회도 운영하고 목사님들 월급주고 전도에 돈 들어 가야하고 선교에 돈 들어 가야하고 구제에도 돈 들어가지요 ,십일조를 내고 십으면 내시고 내고 십지 않으면 내지 마세요
십일조를 누가 언제 어떻게 폐했단 말인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이루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 ,, 술 담배 성물란 도둑질 사기 미움 저주 등등 악한것 했다고 지옥 가는것이 아닙니다 이세상에 죄 하나도 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 지옥 가야지요 인간은 원래 악하다고 하나님이 한탄을 하셨잖아요 율법을 다 못 지키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 주신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일조를 내라 내지 말라 하는 구절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냥 그대로 존속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 않 해서 부자가 됩니까 부자 않 됩니다 부자 된다고 칩시다 하나님 앞에 갈때 아무것도 않 가저 갑니다 %%%예수님이 설령 십일조 내지 마라 했다고 했어도 십일조 낸다고 죄 않 됩니다 십일조 내면 구제 선교 전도 교회 운연 유치부 초등부에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제발 십일조 가지고 논쟁 그만합시다 ***%%%%%%% 글을 쓰신분 한번 자신을 점검 해보세요 진정 자신이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 예수님이 오실날을 사모하고기다리고 있는지 ,,, 세상과 돈에 소망과 꿈을 두고 있는지 ,,,,
저 개인 적인 생각입니다 십일조란 ,, 금전,기도 .말씀보는것 .전도 .섬김, 봉사 .구제 .나눔. 사랑. 이런것을 하루에 24시간을 계산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십의일을 행할때 진정한 십일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