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선생님), 안습(안구에 습기 차다, 눈물), 려차(fuck를 한글로 친 것), 조낸(매우) 등 비속어나 말을 줄이는 것에서 시작해 이제는 한글·한자·기호·일본어·영어 등이 모두 조합된 형태의 이른바 ‘외계어’도 등장한다. © 이철우 기자 |
<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羅 ⓡⓖ孝, 鉉⑨ㆀ②ㅃⓔㅿ4ⓤㆀ,ズıλざ읍ㅎF_しち흐ロっㅉヴ횾_≥∇≤☆"
어느 나라 말인지, 그리고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의사소통’ 기능이 없는 언어다. 마치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암호문’ 같다. 흔히 말하는 ‘외계어’다.
해석이 필요하다. 왼쪽부터 해석해 보자면 ‘나 알지요, 당신을 위한 무척 친근한 친구, 지성이 오빠 너무 멋져요’다. 한문과 영문을 섞어 사용한 ‘나 알지요’는 해석을 보면 그나마 이해가 가지만, 나머지 글들은 해석한 것을 보고도 왜 그런 뜻인지 언뜻 알아보기가 어렵다.
“울집 지혼자 파일 지워지고 몇개의 파일 못읽고 ㅁ ㅣ ㅊ ㅣ 것넵
여태까즤 지워진파일 : 스타,한글97,윈도우 미디어,윈엠프,알집,게임파일(잡겜 많음) 뒌장 아빠한테 컴터 바끄자구 하니까 그냥쓰래 --; 나 글엄 이제 한글작성해서 프린트 뽑아서 하능것은 어케 하즷? 친구집에서 할수도 없그 참 난처하닷.. --; 컴터 부싀고 시퍼"
어느 중학교 누리집(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우리나라 중학생의 한글 맞춤법 수준을 고려할 때, 맞춤법을 몰라서 이렇게 썼을 리는 없다.
위기 - 7부 능선 이미 넘었다누리통신(인터넷)에서 한글파괴현상을 질문하자 한 한글운동가는 “7부 능선을 이미 넘었다”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답한다.
누리통신(인터넷) 언어는 그 동안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소리 나는 대로 적던가(추카추카), 말을 줄이거나(샘, 멜, 걍) 끝에 ‘ㅇ’이나 ‘ㅁ’을 첨가하거나(~하삼, ~하당), 자음과 모음을 바꾸기도 한다.
또한 은어나 욕을 변형해서 사용하고(개쉐이, 뷍신) 급기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즐, KIN, 아햏햏, 햏자 등이 그런 범주에서 생겨난 신조어고, 이런 변화는 처음 제시한 외계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 다른 한 한글 학자는 우리말이 아닌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의 누리통신 침투가 터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조어나 외계어에서는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한글과 섞여 사용되기도 하고, 한글인줄 알고 잘못 쓰이는 외국어들도 눈에 띈다. 흔히 쓰이는 ‘아싸’ 등이 바로 일본어에 해당한다. 하지만 외국어 오·남용은 누리통신에 국한한 것은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누리통신에서 한글 변형, 파괴현상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한다.
확산 - 글이 말을 바꾸고 방송을 장악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누리통신의 파급효과다. 학생들은 누리통신에서 사용하는 말글들을 현실에서도 사용한다. 최근 초등학교 글쓰기 숙제나 학교 누리집(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 통신 언어들이 거부감 없이 사용되고 있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누리통신의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무실마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여 있다. 컴퓨터 없이는 일도 안 되고 학습도 안 된다. 최근엔 핸드폰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리통신에 접속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변화하고 있다.
올해 영국의 비비씨(BBC)방송에서는 특집으로 한국 정보통신 속도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보통신 강국인 만큼 좋지 않은 면도 외국보다 먼저 나오고 강할 수밖에 없다.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기만 교수(한글문화연대 전문위원)는 “글은 말에 따라 반응하고 변화하는 것인데 최근에는 반대로 인터넷의 글이 말로 바뀌는 현상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하삼’, ‘~샘(선생님)’과 같은 말들이 일상에서 쉽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기만 교수는 “보도방송에서도 ‘얼짱’이라는 말을 쓰는데 좋아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보도방송 역시 대중 추수주의(포퓰리즘)로 경쟁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한 그는 “보도방송에서는 좀 더 신중하게 검증하여 방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오락방송에서는 쉽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오락방송’이라고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누리통신(인터넷)언어→일상사용→대중화→방송사용→파급확산→다른 신조어 개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공중파 방송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아주 가끔이지만 오락방송이 아니라 보도방송에서도 누리통신의 말글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고찰 - 좋은 점과 나쁜 점, 그 사이에서 그렇다면 누리통신 언어가 나쁘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한글’이기에 가능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또한 대부분 누리통신 언어들은 창조성과 경제성, 재미와 흥미, 실용성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나쁘게만 보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은어, 욕, 외계어, 신조어를 제외하면 사실 통신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간략화하거나 귀엽게 보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ㅇ’자를 사용해 콧소리 비슷한 소리를 표현하거나, 읽는 소리 그대로 글을 쓰거나 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런 자신들의 흐름을 지키고 있다.
언어학자들이나 한글운동단체 구성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순수한글을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지만,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제재해야 한다’부터 ‘누리꾼 자정능력으로 풀어야 한다’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홍종현 한글문화연대 위원은 “강제로 막는 것이 아니라, 누리통신 말글을 주도하고 만든 계층들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며 “강제성을 동원하는 순간부터 막는 사람도 이상해지고, 오히려 역작용으로 더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나이 많은’ 한글학자나 한글운동가 중에서는 한글의 변형 사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정부의 강한 제재 의지’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측면이 있긴 하지만 누리통신 언어를 과하게 사용하는 것이 사회 여기저기서 ‘삐익~’ 하고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 해결 - 민관 한글사랑의지, 한글단체의 노력홍종현 위원은 “오히려 학생 측에서 자정하려는 노력들이 꽤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들끼리 모임을 만들거나 학교 교사와 모임을 만들어 자정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쟁력 없는 누리통신 말글, 즉 소통의 기능이 제한된 외계어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홍 위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통신 언어가 악화된다고는 하지만 외계어들은 스스로 퇴출되는 경우도 있다”며 더욱 ‘자정 노력’을 강조한다. 정부와 한글운동단체들은 이런 대중의 노력들이 좀 더 효과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자극과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 홍 위원의 주장이다.
이기만 한글문화연대 전문위원은 “한글학회나 국립국어연구원 같은 기관에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인터넷 말글 확산 속도에는 미치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기관에서도 누리통신 말글 영역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이 있어야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만 위원은 끝으로 한글운동단체들의 ‘노력’도 당부했다. 한글운동과 한글공부를 병행하면서 이분법 사고가 아닌 전략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