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본문 해설] 한국에 90여 년의 선교 역사를 갖고 있는 안식일교회는 자칫 기성교화와 혼동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언의 소리"를 통한 방송 선교라든가, 삼육대학과 수많은 교육 기관 그리고 병원 사업, 영어 학원 등 그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이 기독교에서 펼치고 있는 사업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발생 배경과 그들의 가르침인 기독론, 구원관과 성례, 안식일과 재림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들이 강력히 구원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안식일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정통 기독교가 갖고 있는 교리와 대비하여 밀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에 얼마만큼 문제점이 있는지 판명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안식일을 지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주제 강해] 엘렌 G.화이트(Ellen G.White)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직되고 체계가 갖추어진 안식일 교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안식일 교회는 안식을 최대의 교리로 삼는 단체로서 구원을 얻기 위한 절대의 행위는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이들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이들의 주요 가르침들을 살펴보고 성경적 입장에서 비판하여 보도록 하겠다.
1. 발생 배경
한때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1844년 10월 22일이라고 단정(단8:14; 단9:24-27에 근거하여)하며 예수지림운동을 널리 폈던 단체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주장하면서 천년왕국의 도래를 외쳤다. 그러다가 그 날이 지나가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 날(1844.10.22)은 예수 재림의 날이 아니라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해서 지성소에 들어가신 날이라고 변명을 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단체를 밀러주의(Millerism, 주창자는 Willian Miller 1782-1849 미국)라고 한다. 안식일 교회의 창시자 엘렌 G.화이트 부인(Ellen G.White)은 이 밀러주의를 절대 신봉하는 자였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제임스 화이트 목사(James White; 감리교 목사)는 이 밀러주의에 찬동하여 뉴헴프셔주 워싱턴에 모여 안식일을 예배의 날로 지켰다(합2:2,3;합3:7-10근거). 그 후 안식교의 각파들은 화이트 부인에 의해 통합되고 공식적으로 1863년 5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가 창립되었다. 한국의 안식일 교회는 9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을 갔던 한국인 유은현, 손홍조 두 사람이 일본의 고베에서 교리를 배우고 침례를 받았다. 이어 1908년 미국인 전시열 목사의 내한으로 정식 교단으로 출발했다. 안식일 교회의 특이한 점은 이것이 외국 포교자들에 의해서 한국에 전해졌고 지금도 이들은 모든 행정과 포교와 사업 등을 관장하고 있다. 현재 그들의 활동은 예언의 소리 방송과 텔레비전 포교를 통하여, 현대인을 위한 "오늘의 신앙통신학교"를 운영하고 "생명과 건강", "시조"(時兆) 등의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고, "이 시대"와 "자유"라는 잡지도 발행하고 있다. 특히 삼육대학교를 비롯한 교육 기관과 서울과 부산에 위생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 외에 사회 사업 기구로 구호봉사회, 성육원, 한국절제회, 새생활협회 등이 있으며 SDA영어학원 등을 경영하고 있다.
2. 안식일 교회의 가르침
1) 기독론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주장하는 점에서는 우리와 동일하다. 그러나 안식일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유죄한 인성을 취하셨느냐 아니면 무죄한 인성을 취하셨느냐에 대하여는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2) 구원관과 성례에 대하여 안식일 교회는 구원이 예수를 믿음으로써나 또는 그의 보혈, 혹은 성령의 중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 계명을 성실하게 지키는 일과 그들의 개별적인 죄를 성실하게 고백하는 일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이는 믿음이나 은혜가 아닌 "자력구원설"의 색채가 짙은 구원관이다. 그들은 3년에 한 번씩 성찬식을 가지며, 성찬 전에 세족식을 행한다. 그들이 갖는 세족식의 의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라시기 전날 밤에 보여 주셨던 "성경의 본"에 대한 뜻이 아니랄 누적된 죄를 씻기 위해 세족식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성찬과 세족식을 작은 정화라고 일컫고 있다. 또한 그들이 갖는 세례의 의미는 큰 정화라는 뜻이며 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지킬 것과 남은 교회(안식일 교회)와 자신들의 교리를 준수할 것 등에 동의해야 한다.
3) 안식일과 재림에 대하여 "안식일"은 안식일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다. 이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최대의 행위가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태양 숭배와 짐승의 표가 붙은 멸망의 말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그들은 안식일을 주일로 대치하라는 말씀이 없으므로 안식일을 어기는 기독교인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은 할지 모르나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모든 율법을 다 범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식일 교회의 지도자인 베이츠(Joseph Bates)는 "사신 하나님의 인치심"이라는 책에서 요한계시록 7장 2절의 "하나님의 날"이 안식일이라고 해석하여 144,000명의 구원받은 자는 안식일을 지킨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1차적으로 1884년 10월 22일날 이루어졌고(예수께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변명한 날) 이제는 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4) 그 밖의 가르침에 대하여 안식일 교회는 성경 이외에 안식교의 창설자인 엘렌 G. 화이트 부인이 저술한 문헌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영감한 책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그들은 안식교 문답집을 교리의 총체가 담겨진 신앙 생활의 규범을 위한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성경 해석은 화이트 부인의 지시를 근거로 한다. 그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며 자극성이 있는 음식도 먹지 않는다. 또한 군대에 입대할 시에는 하나님이 창조한 고귀한 생명을 살상하지 않기 위해서 집총을 거부하고 있다.
5) 안식일 교회의 특색 안식일 교회의 이단적 성격은 다음과 같은 그들의 주장에서 나타난다. (1) 안식일 교회는 성경 외에 "안식교 성경 주석",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의 원리", "교리문답집" 등이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 (2) 행위로 말미암은 칭의를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낮게 평가한다. (3)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도 성경에 없는 취조 심판을 거론하거나 안식일 준수를 구원 조건이라고 하고 있다.
3. 안식일 교회에 대한 성경적 비판
1) 삼위일체 교리의 부인 성경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고후13:13).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본체는 하나이지만 단일한 신성의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하신다(마28:19).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거나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다.
2) 예수의 인성 부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마28:1 등). 안식일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구약만 믿고 구약의 교리만 지키려는 행위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아주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고 또 성취시키기 위해서 오셨다(마5:17,18). 아울러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는 아무도 모르며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마24:36). 재림의 시기는 언제라고 운운하는 것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어리석은 행위이다(이장림의 다미선교회처럼).
3) 주일에 대한 다른 해석 예수그리스도의 신성만 긍정하고 인성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며 예수의 위격을 격하시키는 행위가 된다. 성경은 점진적 계시의 방법을 사용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예언을 해왔다(사53:1-9). 만일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아래에서 사망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히2:14-17). 성경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빌2:6-8).
안식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옴으로써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교육과 의료, 사회 사업과 구호 사업, 금주금연운동 등 도덕적, 윤리적으로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행하였다. 그러나 성경적인 입장에서는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은 성경을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해 권위를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독교의 한 분파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는 양의 탈을 쓰고 행하는 이리와 같은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료 해설] Ⅰ. 용어 해설
1. 천년왕국(千年王國; (영)Chiliasm; (독)Chiliasmus)
계20:2,4,7절에 근거한 학설. 즉 세계 종말 시에 하나님이 사단을 결박하여 천 년간 감금하고, 이 기간에 부활한 신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행복을 누린다. 이것은 지상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지배하는 천 년간이므로 만물의 완성 직전에 있을 천 년 지속기의 전 단계에 속한다. 이러한 사상은 유대교의 종말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데 페르시아의 종말론과 구약성서가 결부되어 성립되었다고 본다. 특히 천년 구획은 페르시아의 구분법이었고 후에 희랍과 유대에 전해졌다.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근세 교회에서는 도외시되어 있으나 재침례파, 독일의 경건주의, 미국의 소교파에서는 하나의 신조로서 지금도 신봉되고 있다. 특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을 믿는 자들 중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임의로 계산하여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2. 밀러주의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는 1844년 8월 21일에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여 안식교 창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신앙에 회의론자였으나 회심하여 다니엘서와 계시록을 연구하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일자를 결정하고 설교하였다. 많은 성직자들과 추종자들이 그를 따랐으며 밀러는 사람들에게 광신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대화재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주장은 청중들을 당황케 했다. 그러나 밀러가 제시한 날짜에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1844년 10월 22일을 두 번째 재림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날에도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재림파들 사이에서 "대실망"이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림파 상호대회"가 열렸으나 뚜렷한 결론을 얻어내지 못하였다. 윌리엄 밀러의 예언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19세기에는 그 밖의 재림파 단체들이 출현하였는데 이러한 단체들로는 복음주의적재림파(1845), 생명과재림연합(1862), 하나님의교회(제7일, 1866), 하나님의교회총회(아브라함의 신앙, 1888), 재림기독교교회 등이다.
3. 엘렌 G. 화이트(Ellen Gould White 1827-1915).
제7일재림안식교의 창시자이다. 그는 밀러의 재림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밀러가 올바른 날짜를 제시했다고 믿었다. 밀러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다니엘서 8장과 9장의 "하나님이 하늘의 성소를 깨끗케 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1844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이름들에 대한 조사였고 이 일이 완전히 끝난 후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셔서 천년왕국을 시작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일요일이 아니라 제7일의 준수가 재림을 도래케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엘렌 G. 화이트를 중심으로 한 재림파들은 1855년에 미시간 주의 배틀 크릭에 본부를 설립하였으며, 1863년에 공식적인 교파(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되었다.
4. 안식일(安息日; sabbath)
유대인의 1주 중 제7일의 명칭. 현재의 금요일 일몰부터 시작하여 토요일의 일몰까지이다. 히브리어 샤바트(shabbath)는 "중지하다", "휴식하다"는 의미에서 "안식"을 가리키고 있다. 그 기원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 사업이 시작한 날부터 제7일이라는 것. 그러나 신명기 자료에 의하면 애굽에서의 구출을 기억하는 날과 결부되어 있다(신5:12-15). 포로 후에는 안식일이 할례와 함께 이스라엘인을 이방인으로부터 구분하는 중요한 행사로 등장했다(느13:15-22). 예언자들은 안식일을 "신월제"(新月祭)와 병행하여 언급하고 있다(사1:13; 호2:11; 암8:5). 그러나 예수는 안식일의 정신을 강조하고 그 형식을 탓했다(마12:1-4).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 일요일을 안식일로 삼은 것은(행20:7) 예수가 일요일 아침에 부활한데 기인하고 있다.
Ⅱ. 보충 자료 안식교의 특색 1. 안식교는 성경의 권위 외에 "안식교 성경주석"(The Seventh Day Adventist Bible Connentary),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의 원리", "교리 문답집" 등의 그들의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2. 안식교는 행위로 말미암은 칭의를 말하고 있다. 3. 안식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낮게 평가한다. 4. 안식교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남은 자의 교회로 자처한다. 5. 안식교는 종말론에 있어 환상적 신비주의다. 6. 인간의 구조를 영혼과 육체로 보지 않고 인간 자체를 영혼으로 보고 인간에게는 선천적인 영생권이 없다고 한다. 7.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라고 하면서도 취조 심판, 안식일 계명 준수를 구원 조건으로 하고 있다. 8. 그들은 주일이 첫째날이 아니라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이 날은 창조 이래로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되었으며 안식일의 안식에 대한 계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법의 일부이다. 이 법을 지키는 것은 이 날을 성별시킨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그들에 대한 종말론적 시험이다. 9. 육식과 모든 자극적이고 마취성 있는 음식을 금하고 있으며 그런 것들을 유해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러한 식사 관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몸은 성령의 전이며 따라서 보호되어야만 한다는 광범위한 신학적 성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10. 그들은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액수의 일인당 연간 헌금으로 세계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왜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는 이단인가?
요즈음 기독교 CATV에 가입되어 말썽을 일으키며 한국의 모든 교단과 세계 정통의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있는 안식교.
1.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란 공식명칭을 가진 안식일교는 미국에서 발생하여 19C 초에 한국에 이입되어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및 구제활동에 착수하여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기여를 했고 금주·금연 운동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선교사들은 복음의 취약지구에서 의료선교를 벌이며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이들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종교단체이나 안식교 부류의 이단집단 10여 개 이상이 사회적 신학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으며 성경적인 면에 있어서 정통 기독교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구나 다니엘 9장에 근거한 연대 계산의 2300주야의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조사 심판의 교리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로서 정통 교회와 완전히 성서적인 입장에서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2. 안식일교의 태동
18C 후반부터 19C 초반에 이르러 크리스천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도래에 대한 신앙이 매우 지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림파의 창시자 윌리엄 밀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절박한 재림을 주장하면서 천년왕국의 도래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1843년 8월 21일에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지만 불발되고 1844년 10월 22일로 다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역시 그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이상과 같이 윌리엄에 관한 예언이 실패로 돌아갔으나 계속적으로 재림주의 신앙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조셉 베이츠와 제이 화이트와 그의 아내인 E.C 화이트였다. 이들은 윌리엄 밀러가 올바른 그리스도 재림의 날짜를 제시했다고 믿었으나 그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해석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각 사람에 대한 조사 심판을 끝낸 후 '개인적이고 가시적이며 가청적이고 육체적이며 영화롭고 전천년 왕국적으로 재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7일 안식일, 즉 토요안식일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여 토요안식일을 주장하기도 했다. 1863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제7일 안식일 재림교회가 설립되었다.
3. 안식일교 세계총회본부는 1903년에 미국 워싱턴 디씨 타코마 파크에 설치되었다. 총회는 4년만에 한번씩 모이고 있으며 협의회라고 불리는 각 지부들로부터 파견된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안식일교는 '월간 시조'와 '교회지남'을 발간하고 있으며, 삼육대학은 신학·농학·가정·영문·간호·경영·약학 등 7개 학과를 갖고 있고 삼육간호전문·삼육산업전문대학이 있으며 서울과 부산·대전에 위생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외 사회사업 기구로 구로봉사회·성육원·군봉사위원회·한국절제회·새생활협회 등이 있고 SDA 영어학원 등을 경영하고 있다.
4. 한국 안식일교가 운영하는 기관
시조사
예언의 소리 통신학교
위생병원(서울·부산·대전)
삼육대학
삼육간호 전문대학
삼육농업 전문대학
삼육중고교(서울·원주·동해·영안·과천·호남·대전)
삼육국교(서울·태강·춘천·원주·동해·대구·광천·부산·호남)
삼육식품
삼육기술학원
평신도 전도 훈련원
SDA공원묘지
SDA실업인 협회
5. 성경해석의 오류들
(1) 2,300주야 해석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께서 하늘 성전의 첫째 칸인 성소에 계시다가 1844년 10월 22일을 기점으로 하늘 성전 둘째 칸인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지상 인간들의 행위를 낱낱이 살펴보아 흠과 티가 없는 자만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조사를 하시는데 이 기간을 '조사심판 기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데서 이 기간을 특히 '은혜의 기간'이라고 하는데 1844년 10월 22일에 시작하여 지금 현재까지 해당된다.
그러나 성경에는 1844년 10월 22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구절이 단 한 곳도 없다. 다만 안식교인들이 이날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재림파의 창시자 윌리엄 밀러가 이날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했고, 이 예언이 실패로 돌아가자 E.G.화이트 여사가 예수 재림설을 정정하여 그녀의 환상중에 예수께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그날에 대해 안식교도들이 믿는 것과 같이 해석될 만한 구절은 없다.
(2) 조사심판 교리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는 구약의 내용은,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를 위한 예시가 아니라 예수의 몸을 단번에 드린 십자가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며(히 10:10-21), 예수께서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을 나타낸다(히 9:1,7,11,25-26).
히브리서 6장 19-20절의 "예수께서 휘장 안(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은 1844년에 들어가신 것을 예언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에 쓰인 "들어가셨느니라"의 원어 "에이셀텐"은 분명히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 만일 예수께서 1844년에야 들어가셔서 조사심판을 하고 게신다면(현재형으로 가정한다면) 조사심판 전에 죽은 자와 그 후에 죽은 자의 구원방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반문할 수 있다.
(3) 두 가지의 구원문제(큰 구원, 영원한 구원)
안식교는 구원을 큰 구원과 영원한 구원으로 나눈다. 큰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고 영원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구원이다. 영원한 구원은 흠도 티도 없어야 받는 구원으로 특별히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 안식교는 두 가지의 구원이 있는 것처럼 구원을 이원화시켰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성구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여 밝히건대 두 가지의 구원이 있을 수 없고 행위를 강조하는 모든 성구들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요, 참된 믿음에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인간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안식교의 구원관은 보상설과 같은 속죄관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4)토요일 안식일 문제
안식교는 토요안식일 성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늘날 개신교가 지키는 일요일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개념의 일부로는 생각되지만 구약의 토요안식일이 그대로 바뀐 것은 아니다. 개신교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깨달은 제자들은 안식일의 폐습적이고 경직된 예배의 틀에서 해방이 되어 안식일을 그리스도인에게 실현된 안식의 한 예표로 보게 되자 그들은 그날을 지키는 데 대해 별로 큰 의미를 갖지 않고 예수가 부활한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의 부활을 기념일로 지키게 되었으나 그 유래는 확실치 않다. 오늘날 전세계 교회는 안식교와 몇몇 종파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을 주일로 거룩하게 지키고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안식교가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이단임을 살펴보았다. 겉은 도덕적이고 선해보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 이단의 실체인 것이다.
1. 안식교는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다.
안식교의 출발 -
한 종파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그 출현동기와 역사적 배경을 살핌이 중요하다. 안식교는 성경에 근원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본래 시작을 보면 사도적 신앙에 기원을 두는 것도 아니오, 종교개혁에 근원을 둔 것도 아닌 1844년 10월 22일 시한부 재림설을 주장한 윌리암 밀러의 재림운동에 그 기원을 둔다. 안식교는 이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예언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1. 안식교의 약사
(1) 밀러의 재림운동 대위 출신이요 농부인 밀러는 개인적으로 2년간 성경을 연구하다가 단8:14의 2300주야를 해석하여 재림 날짜를 1844년 3월 21로 정했다. 그러다가 시한부종말론자들이 늘 그러하듯 다시 동년 10월 22일로 변경했다. 그 근거는 2300주야를 2300년으로 보고 에스라 7장의 B.C. 457년을 그 기점으로 계산하니 서기 1844년이 되었고, 구약 속죄일을 현재 날짜로 10월 22일로 생각하여 1844년 10월 22일이 나온 것이다. 이 주장을 따르는 자들이 12만 명이나 되었으나 그 날이 와도 아무 일이 없자 크게 실망하여 따르던 자들이 기성교회로 돌아가거나 남은 자들은 여러 분파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분파가 여호와 증인이요, 또 다른 분파가 제7일 안식일 재림교이다.
(2) 엘렌 지 화잇의 환상 안식교에서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 이 여인은 본디 감리교 신자였으나 밀러의 재림운동에 가담했다. 많은 이들이 재림 불발로 실망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예수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밀러의 2300주야 해석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단지 밀러의 계산은 재림 날짜가 아닌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 계시다가 지성소로 들어가신 날이라 하여 소위 조사심판교리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화잇 부인의 주장을 따라 된 교파가 바로 안식교이며 조사심판 교리가 안식교 교리의 핵심의 하나이다.
(정리) ① 윌리엄 밀러는 신학적 기반이 없는 평신도 성경 연구가였다. ② 예수 재림교라는 명칭이 시한부 종말론에서 생겨난 것이다. ③ 재림 날짜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밀러의 무식을 증명하며 그 날을 알지 못한다는 성경에서 이탈한 것이다. ④ 1844년에야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속죄사역하셨다면 이미 히브리서가 말하는 속죄의 완성과 자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더 벗어야 할 안식교의 율법주의
안식교의 율법주의
안식교는 율법주의 교리를 고수하다가 1870-1880년대의 와그너와 존스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교리를 받아들여 율법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오만규, 재림교회사, 127-140p). 그래서 안식교는 이신득의 즉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교회라고 공언하고 있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며 안식교도들은 율법주의라는 말 듣는 것을 싫어하지만 아직도 안식교에는 율법주의적인 잔재가 많이 있다.
1. 안식교의 율법주의 혹은 율법적 소지
① 안식교는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화잇, 시대의 소망 2권 21-23p). (반론) 그러나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고 그러기에 주의 공로를 믿음과 성령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② 안식교는 소위 그들이 말하는 2차 성화구원의 방법을 율법준수에 두기 때문이다(제이 워너, 성서기초교리 102, 108p). (반론) 그러나 성화까지도 주의 이루신 복음에 끝까지 견고히 섬으로 성취되는 것이며 율법준수는 성령의 은혜로 지켜지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요소가 강조되지만 율법준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는 순간 넘어지는 자신을 왕왕 경험하지 않는가?
③ 안식교는 지상에서 율법준수로 완전품성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왕대아, 최대의 책에서 얻는 문답, 107p) (반론) 율법의 신약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시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나 적극적 의미는 심비에 기록되는 성령의 은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성화는 가능하나 방법은 율법준수가 아닌 하나님 경외로 말미암는 은혜생활이다. 그 예로 예수 주로 믿고 기도하고 찬송하던 초대교회가 성령으로 변화를 받지 않았는가?
④ 안식교는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일지라도 마지막 날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준수를 통하여 유지되고 성숙되어야 하며 잘못하면 구원이 상실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화잇, 가려 뽑은 기별 1권, 272p). (반론)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했고, 히6:1-12을 보면 은혜에서 떨어질 가능성을 시사한 듯하나 후반부의 문맥을 보아 성도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끝까지 붙드시는 공로와 사랑이다. 이것을 못 믿고 불안하여 하지 말고 담대하라.
⑤ 안식교는 폐한 바된 구약의 모세 율법의 규례들(음식, 토요안식일)을 지키라고 하기 때문이다. (반론) 안식교가 동물제사나 유월절 등 상당 부분의 예표적 율법을 벗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벗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좋은 음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건강을 위해 가려먹는 의미라면 좋지만 율법준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필요에 따라서는 닭이나 오리 등의 고기가 건강에 유익할 때도 있으니 가책 말고 먹으라. 절기 안식일이든 토요 안식일이든 예수 안의 참 안식을 예표함에는 틀림이 없을진데 365일 영원토록 예수 안의 안식을 강조함보다 7일을 더 강조하는 경향을 안식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희망사항) 와그너와 존스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교리를 받아들여 율법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났다면 좀 더 벗어나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자유함과 예수 복음과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안식교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안식교의 조사심판 연대계산 과연 옳은가?
<서언> 안식교의 조사심판의 교리는 아주 중요한 교리적 기초를 이루는 부분이다. 조사심판이란 단8:14의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예언에 의해 예수께서 1844년까지 성소 봉사를 마치시고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성도의 품성과 행위를 조사 혹은 도말하시며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하신다는 안식교 교리이다. 안식교의 조사심판의 중대한 오류에 대해서는 차후로 지적을 미루고 1844년을 그 기산일로 잡은 것부터 얼마나 성경적으로 무근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1. 안식교 주장 - 1844년이라는 계산이 나온 근거
안식교에서는 예언의 하루를 1년으로 보고, 단8:14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한 예언대로 2300년 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럼 언제부터인가? 단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는 것이다. 엘렌지 화잇을 비롯 대부분이 그 때를 B.C. 457년 즉 에스라 7장의 세 번째 아닥사스다 건축령(547년)으로 성전이 완공되었으므로 2300주야의 시작 기산점으로 잡고 있다(일렌지 화잇, 대쟁투 합본 p366).
2. 반론
① 안식교 내부의 사건 - 화잇의 기원전 457년령에 대해 이는 성전건축령도 예루살렘 준공령도 무관함을 안식교 학자들이 점차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산적 문제가 발생하자 어떤 이는 성전 건축령이 아니라 성읍 재건령이라 변명하기도 했고(신계훈, 우필원), 어떤 이는 성전과 성읍 재건령이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김상래), 혹은 재 건축령을 내린 날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457년은 아닥사스다의 귀환령일 뿐이며(아래 도표 참고) 내부 학자들의 여러 다른 주장은 안식교의 대부격인 화잇의 계산을 자체적으로 뒤엎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② 1844년은 성전건축령이 아님 - 놀라운 사실은 성전건축 완공은 안식교가 말하는 457년 보다 59년 전 B.C. 516년에 이미 완공되었다는 것이다(스6:14-15). 그리고 스7:1-26에 언급된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성전건축령도 예루살렘 중건령도 아닌 이미 중건된 예루살렘에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령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안식교 내부에서 자체 혼란에 빠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예루살렘 중건 역사 도표 기원전 536년 고레스 원년 예루살렘 중건령 (스1:1) 기원전 535년 성전 건축 중단 기원전 520년 다리오 2년 재차 중건령 (스4:24, 6:11) 기원전 516년 다리오 6년에 성전 완공 (스6:15-18)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7년에 에스라 귀환령 (스7:7) * 기원전 445년 아닥사스다 20년 성벽 건축령 (느2:1) 동년 성벽 건축 52일만에 완공
(결론) 그래서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조사심판 계산 기산점으로 보는 457년은 중대한 착각이었고 그럼에도 아직도 1844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필자가 각 시대의 대쟁투의 역사적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성경과 신학에 전문가가 아닌 화잇이나 밀러의 부족함을 이미 지적한 바도 있다. 그러나 안식교 교회사인 대쟁투를 맹신하며 안식교 주창자들의 식견 부족을 오히려 오염 없는 장점으로 여기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이 시점에서 최선의 길은 오류를 발견했을 때는 즉시 돌이킴이 최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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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캉스 어학원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