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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돌 한글날 경축식이 지난해 10월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이철우 기자 |
<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
대한민국엔 국어교육은 있지만 국어정책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화부를 신설하면서 그 안에 국어정책을 다루는 어문과가 처음 생긴 것이 1990년이며, 그 전에는 교육부에서 국어 교육정책을 맡아 왔지만 국어생활정책을 전담하는 기관은 없었다.
남녘, 한글관련 정책 전문가나 제대로 된 정책기관이 없다 1991년, 문화부 산하에 국립국어연구원을 만들면서 국어정책 전담기관이 생겼지만 이들은 국어정책이 아니라 한자혼용 정책을 세우려 했다.
한글단체들은 이에 크게 반대했고, 한글단체와 한자단체가 싸우는 동안 국어생활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1990년 후반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이른바 ‘세계화’바람을 타고 영어에 국어가 짓밟히게 된 것이다.
정부는 2004년, 문화관광부에 국어정책과를 없애고 국어민족문화과로 이름을 바꾼 뒤 사무관 한 사람으로 업무를 보게 했고, 정책시행은 국립국어원으로 넘겨버렸다.
국어정책 전담기관이 이중구조가 되다보니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어연구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 구성원들이 그대로 정책집행을 하고, 국어원장도 학자가 맡게 되니 정책 업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글과 한자 싸움으로 허비한 50년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남녘의 역사는 정치뿐 아니라 한글 말글살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측 단독선거로 ‘대한민국’을 세운 1948년, 남녘 국어정책의 기본은 한글전용이었다.
그러나 우리 말글을 제대로 살리고 바르게 쓰게 할 제대로 된 국어정책이나 정책 기관도 없었고, 일부 국어 관련 학자와 단체·언론기관은 한글전용 정책을 한자혼용정책으로 바꾸려했다.
결국 지난 50년간 그 논쟁으로 세월을 다 보냈다.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와 그 제자들이 중심으로 만든 어문회(회장 남광우)는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는 말글살이 정책으로 바꾸려 했고, 최현배 연세대 교수와 그 제자들이 중심이 된 한글학회(회장 허웅)와 한글문화단체가 맞선 것이다.
결국 정부는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고, 국민 또한 혼란한 말글살이를 하게 된다.
김영삼 정부 때는 조선일보가 일본식 한자혼용 정책으로 바꾸기 위해 적극 나서 한글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한글과 한자의 싸움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 때 한자혼용파인 김종필 총리와 심재기 국립국어원장 등이 한자혼용으로 정책을 바꾸려고 나서고,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글전용법을 폐기하고 한자 혼용법을 제정하려 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그때 한글문화단체 회원들은 정부청사 앞에서 삭발시위를 해가며 막아 나서기도 했다. 또한 김영삼 정부가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하고 김대중 정부가 제주도 등 특정지역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하겠다면서 우리 말글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한글문화단체가 강력하게 저항하고 셈틀(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가 되면서 한글의 훌륭함이 증명되어 한글과 한자의 싸움은 결국 한글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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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조선일보는 한자혼용정책 특집기사를 17회째 냈다. ©이대로 논설위원 |
국어전용법, 강제조항은 없어 국어 관련법과 규범에는 일제식민지 시절인 1933년, 조선어학회가 만든 말글 규정인 한글맞춤법이 있다. 또한 미군정 시대와 대한민국 시대에 공문서를 한글로 쓰기로 한 공문서관리규정이 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을 세우면서 위에 만든 두 규정을 바탕으로 공문서를 한글로 쓰기로 한 한글전용법(법률 제6호)을 제정하고 공문서를 한글로 쓰는 공문서 규정을 만들어 시행한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 한자혼용인 일본 말글살이에 길든 공무원과 지식인들은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혼란은 계속됐다. 또한 한글전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강제규정도 없어 강력한 말글 규범과 법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다.
1993년에 옥외 광고물(간판·현수막)을 한글로 쓰기로 한 옥외광고물관리법 시행령을 만든다. 또한 1994년 12월에 문화예술진흥법 속에 국어발전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며 국어정책심의회를 둔다는 조항을 넣는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법을 어긴 영어 간판이 늘어나고 정부 또한 국어발전 정책을 펴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해 좀 더 폭넓은 국어 관련법을 만들자는 한글단체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한글전용법과 문예진흥법 내용을 담고 더 많은 국어 관련 조항을 넣은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을 만들게 되었지만, 법 규정을 어겼을 때 처벌이나 강제조항은 여전히 없다.
새로 만든 국어기본법의 중요한 내용 가운데 국어정책을 세우고 심의하는 국어심의회를 강화한 것과, 정부 기관부터 바른 말글살이를 하게 하려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국어책임관을 두기로 한 것, 일반 국민의 바른 말글살이를 도우려고 국어 상담소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 특이한 사항이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국어책임관을 두기로 한 것은 정부나 국회가 만드는 법령 문장이나 공문서에 어려운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거나 한자를 혼용해서 국민이 읽고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며, 공무원부터 바른 말글살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다.
또한 국어심의회가 문광부장관이 국어정책을 세울 때 자문하고 그 내용을 심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국어심의회를 위한 예산이 하나도 없고, 문화관광부 장관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대로 참말로 논설위원(국어심의회 위원)은 “지난 1월16일 처음으로 국어심의회 위원들과 문광부 장관이 점심을 먹으며 인사를 했는데 장관과 담당 국장, 과장이 국어심의회가 문광부 직속인줄도 몰랐고, 국어원장에게 할 일과 책임을 미루었다”며 “주무담당과장부터 국어정책 시행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대로 논설위원은 “국어책임관은 임명했지만 할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아직도 한글 쓰기 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 공문서가 보이고, 외국말을 멋대로 쓰는 공문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문화관광부와 교육부 국어책임관이라도 만나서 활동상황을 들으려 했지만 번번이 만날 수 없었다”며 “활동상황을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어단체연합 국어 상담소와 한국방송 국어 상담소, 이화여대·청주대·경북대 등 9대 대학을 비롯해 전국에 11개 국어 상담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널지 알려지지 않아 이용이 많지 않다. 이들은 처음 취지인 국민의 바른 말글살이를 위한 상담활동보다는 자체 행사와 홍보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강력한 국어기본법과 국어정책기관이 절실하다.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국어기본법’은 규정은 있으되 강제조항이나 처벌조항이 없어 법으로써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강력한 국어기본법과 국어정책기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수업 국어심의회 위원장은 “세계화 바람을 타고 제 나라 말보다 외국말을 더 섬기고 중요시하는 풍조가 극심하다”며 “겨레말을 지키고 자주 문화를 꽃피우려면 강력한 국어관련법과 함께 국어정책기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수업 위원장은 또 “세종대왕 때도 훈민정음을 만든 뒤 언문청을 만들어 우리말을 바로 세우고 빛내는 정책을 강력히 시행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어정책 집행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은 2004년부터 국립국어원으로 조직을 개편하여 국어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상규 국어원장은 “국어심의회 기능을 강화하고 서울말 중심 표준말 정책에서 좋은 방언 살려 쓰기·남북 말글 통일 대비 공통어 정책 추진·국어기본법에 따라 국어진흥 5개년계획 등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규 국어원장은 또 “동남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국어 열풍을 더 부채질하고 확산시키는 일도 중요하다”며 “국어원이 할 일이 많은데, 지금 예산이나 규모로는 위기에 처한 우리 국어를 제대로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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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에 국립국어원과 국회 한글세계화추진모임이 주최한 한국어 세계화 토론회. ©이대로 논설위원 |
이번 기획취재로 중국·일본 등을 돌아본 이대로 논설위원은 “중국·일본·몽골과 동남아에서 우리말을 배우려는 열기가 높은데 정작 우리나라 안에서는 우리말을 우습게 여기고, 우리 말글 정책이 제대로 서 있지 않다”며 “특히 북녘에 비해 남녘 말글정책과 정책기관은 크게 뒤떨어지며, 정책담당자와 정부의 의지도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남북말글통일과 문화강국이 되려면 나라 안에서 바른 말글살이를 하고, 제 나라의 말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빛내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한글날 국경일 행사를 국민과 함께하는 일은 그 노력이고 기초인데도 정부와 국회 모두 제 나라 말글을 헌신짝 보듯 하고 미국말만 섬기니 답답하다”고 밝혔다.
국어기본법과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이뤘지만 정부는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첫 행사는 예산 1억을 받아 치렀다. 그러나 올해 한글날 예산은 하나도 없다. 광복절 예산이 100억 원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천대받는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지난 연말, 이상규 국어원장과 이대로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이강래 위원장과 문광위원을 만나 예산증액을 부탁하여, 문광위에 3억을 증액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지만 본 회의에서 모두 삭감해 버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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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이상규 국어원장(왼쪽)이 이강래 국회 예결위원장을 찾아가 한글날 행사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대로 기자 |
이런 가운데 조금은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국립국어원(원장 이상규)은 동남아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 열풍을 좀 더 확산하고 뒷받침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문화부장관도 지난 1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몽골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외국에 100개의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제대로 된 국어정책을 세우고 강력한 국어정책기관을 만들어, 국어정책 전문가를 양성해 강력한 문화국가를 만드는 기초를 다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