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피재 – 댓재) 2012년 1월 14~15일(무박) 1,415회 산행,
구 간 ; 피재(35번도로,920m)-건의령(백인교군자당)-푯대봉(1,009m)-구부시령(1,107m)-덕항산(1,070m)-자암재-1,058봉-큰재(970m)-황장산(1,059m)-댓재(424지도,810m),
(25km,13시간)
3시 30분부터 시작한 산행이 11시간만인 오후 2시 30분에 하산 완료. (많은 눈때문에 .....)
가는 도중 사북에서 식사를하는 사람도 있었다.
피재에서 새벽 3시 30분 출발,
35번 국도와 참말부락앞의 경지가 우리나라 지형으로 보인다.
2010년 2월 7일 산악회 1차 종주때 찍은 사진이지만 오늘은 볼수없는게 안타깝다.
백인교 군자당의 모습,
옛길은아래로 터널로 변했고 대간길은 이렇게바뀌었다.
음력으로 섣달 22일인데 달은 제법 밝네!.
대간에서 살짝 벗어나있는 푯대봉
눈은많았지만 럿셀이 잘되어 운행에 많은 도움이다.
오는 도중 997.4봉 삼각점은 눈 때문에 찾아보지 못하고 와 버린 1,055봉이다.
맑은공기, 시원한 바람, 때로는 평지같은 대간길에 낭만을 느끼지 못하는 둔한 사람은 없을것이다.
등산 자체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지만 어떠한 산이라도 정상에 섰을때의 기분은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그기분을 어떻다고 말할수 없을 것이다.
구부시령의 돌무더기(케른)는 눈에 덮여있고 아홉명의 지아비를 섬겼다는 아낙의 기분은 느껴볼 수가 없었다.
東高西低의 지형이 시작되는 덕항산 구간이다.
이번 눈의피해가 아주 대단하다.(나무들의 피해로 대간길도 아수라장이다)
덕항산 정상,(정상석과 산불 감시탑이 없어졌네!)
정상을 알리는 표석,
덕항산에서 바라본 아름다움,
백두대간이라면 단순히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해 뻗어있는 산줄기로만 볼것이 아닌
우리민족이 뿌리내릴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발상지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것이다.
정상석은없어지고 좌대만 덩그런히.......
덕항산은
삼척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가면 화전을 일굴수 있는
편편한 땅이 많다고 하여 덕메기산이라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德項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산악회 1차(나의 6차)때 덕항산과 일부대원들의 그리운 모습들. ,
산악회 1차종주때는 이 구간을 3회로 나눠 종주를 마쳤다.(눈때문에 당일 산행으로)
산다는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다시 바라보게 되는 귀내미골의 채소밭,
대이리 환선동굴의 모노레일.
만난다는것은 사전 인연이 준비되어 있어야 그 만남을 실감할수 있을것이다.
때로는 이렇게 마른곳도 있었다.
낙엽송 피해도 엄청나다(많은 눈이 녹다가 다시 얼어 그렇단다)
헬기장 같은 곳이었는데 대이리로 많이 갔는지 그쪽으로 길이 잘 나있다.
고랭이 채소단지인 귀네미골(광동댐 이주단지)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다.(현재 9기)
많은 눈이 녹으면서 파도같은 모습이라 찍어 봤는데 .......(비어 있는 배추밭)
백두대간 복원사업으로 조림한곳,(잘 자랄것 같다)
채소를 키울때 필요한 물을 공급해 주는 물탱크.
다음오게될 때는 힘차게 돌아 가겠지!. (아직 건설중)
백두대간 복원 사업으로 조림한(소나무)지역.
이곳은 한그루도 살아있는 나무가 없다,(왜 그럴까?) 국고만 축 냈네!.
채소밭과 큰재까지 연결된 임도이다.
임도 옆에 방치된 장비.(뭐 하는 장비지?)
큰재로 가는길.
앞으로 5km를 더 가야 하는데.....다리가 아프네.
사람지난 흔적은 있지만 눈길이 상당히 힘들다.
눈으로 인한 피해목 때문에 제대로 진행이 안된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지만 대부분 평지 수준이다.
통행이 적기도 했지만 댓재로 올수록 더 많은 눈이다.
나무들이 수난을 당한 현장,
건너다 본 삼척의 산.
쉽게 줄어들지 않는 대간길.
눈길은 더 힘들어지고 체력은 자꾸만 바닥이 날 지경이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름다움은 눈에 잡히네. 눈! 정말 좋다.
황장산만 오르면 내려가는것은 식은죽먹긴데.......
이제 한 봉우리만 더 가면 황장산이다.
지금도 이정도인데 처음 눈이 왔을때는 어느정도였을까?
삼각점은 찾아볼 수도 없다.
드디어 댓재를 통과하는 424도로도 보이며
다음구간인 두타산과 청옥산도 보인다.
이제는 내려만 가면 댓재다.
백두대간 댓재를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
댓재 마루금.
올때마다 들리는 댓재 휴게소(노식 사장님 감사합니다)
(산행후기)
설날을 며칠 앞둔 이 대목에 산행을 갈수 있다는 것 정말 많이도 좋아진 세상이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지만 꿈도 못 꿀 일이다.
옛날의 설이나 지금의 설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지만 지금은 모든 물자가 흔해 어렵지 않게 설을 맞을 수 있기에 미리부터 크게 준비할 것이 없이 마음만 먹으면 뭣이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며 부담을 느끼지 않은 설이기도 해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도 이제는 한반도 중심을 가로질러 동해 바다를 끼고 北進을 계속할 차례인 것이다.
피재(三水嶺)에서 시작 댓재까지의 무박산행이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한겨울 심설산행이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만큼 마음은 물론 모든 장비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낙동정맥의 분기점이 매봉 아래에 있긴 하지만 사실상 피재에서 갈라지는 것으로 알려진 이 고개가 바로 분기점을 대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피재의 고개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은 낙동강, 동쪽은 오십천을 이루는 삼파수라 하여 삼수령이라고도 하지만 옛날 삼척사람들이 난(亂)을 피해 이상향(理想鄕)으로 알려진 황지(黃池)로 가기위해 넘었던 고개라 하여 피재라 불렀다고도 하는 것이다.
깜깜한 섣달 새벽 으스스한 찬바람과 함께 저벅거리는 눈얼음을 밟으며 랜턴으로 불을 밝히며 백두대간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시간절약을 목적으로 무박 산행을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설경,
기억과 추억이 믹서 된 이 길을 또 가면서 담아가기 어려운 멋진 모습이 못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연신 샷터를 눌러 보기도 한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정적이 감도는 새벽의 산길을 종주꾼은 조용하게 어둠을 헤치며 깨워 가고 있는 것이다.
아스라이 보이는 그림 같은 주변의 아름다움이 용량적은 나의 記憶力 때문에 완전히 봉인해서 담아가고픈 심정에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모아본다.
이제 7차 백두대간도 남아있는 구간이 손안에 헤아려 지는 것이다.
이번 마침에는 간단한 이벤트도 준비해 보려 했으나 마치기도 전에 8차 종주를 (1월 26일)시작하게 되어 그 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긴 언제나 그랬지만 백두대간종주를 마치는 순간순간에도 그 어느 누가 수고했다며 마중과 함께 빵빠레를 울려주거나 축하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가슴 벅차게 끊어야 할 테프도 없었으며 오히려 마침과 동시 외롭고 쓸쓸해 허전함만 되돌려 받으며 돌아서야 했던 기억이며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소박한 도로변엔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의 정적만이 나의 비어진 가슴을 토닥거려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기분을 계속 이어가는 것에 종주 횟수가 늘어나 지금에 이른 것이지만 백두대간이야말로 진짜 우리나라 최고의 산줄기인 것이다.
東高西低의 전형적인 산세인 이번 구간이다.
석회암지대로 동굴이 발달하여 기암괴석으로 병풍을 친 듯한 바위벼랑인 덕항산 구간은 동쪽을 보고서는 오줌도 누지 마라는 口傳이 있듯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가파른 절벽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저 아래엔 동양 최대의 동굴인 환선동굴이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대기리 마을도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자암재를 지나자 고랭지 채소단지인 귀네미골(광동댐 이주단지)이 눈앞에 가득해 온다.
힘이 없을 때는 설악산을 가고 失意에 빠졌을 때는 지리산을 가란 말이 있다.
절정의 내공을 숨겨 평범한 속에서도 남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많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내 재산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인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분들과 같이 있을 때는 무한히 작아지는 자신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올려주는 고마움에 그분들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에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큰재도 지나며 맑게 비치는 동해를 바라보며 힘든 육신을 옮기다 보니 댓재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황장산이다,
오늘도 함께한 우리 대원들께도 감사하고 수고했다는 인사를 끝으로 산행후기에 가름한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