浦項 寶鏡寺의 八相殿에 있는 八相圖
보경사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內延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佛國寺의 末寺로 석가모니의 八相示顯을 나타낸 八相殿이 있으며 여기에 있는 1780년대에 만들어진 八相圖가 2016년 8월 14일까지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8기로 나누어 八相이라고 하는데
1.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오는 상(相)
2. 룸비니에서 기원전 623년에 太子로 태어나는 상(相)
3. 城의 4대문을 나서서 생로병사를 보는 상(四門遊觀相)
4. 29세에 애마 칸다카를 타고 성을 나와 출가하는 상(踰成出家相)
5. 6년간 설산에서 고행하는 상(雪山修道相)
6. 35세에 보리수 밑에서 성도(成道)하는 상(相)
7. 제자들에게 傳法하는 상(相)
8. 80세에 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일생(一生)을 담은 그림을 차분히 이해하려면 많은 깨달음이 필요하다.
부처님의 일생과 傳法
석가모니 부처님은 35세에 정각을 이루신 후, 녹야원에서의 설법을 시작으로 열반에 드신 80세까지 수많은 말씀을 남기셨다.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들은 제자들을 통해 많은 經典에 담겼으며, 이러한 경전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은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어 널리 유통되었다. 종이로 된 경전의 경우 금․은․먹으로 베껴 쓴 것 이외에도 대량간행을 위해 목판이나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보급되었다. 더불어 경전의 방대한 내용을 보다 쉽게 전달하고자 조각이나 회화를 이용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경전과 미술품들은 소중히 보전되어, 현재 당시의 시대상과 신앙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寶鏡寺 釋迦八相圖
18세기(1778년으로 추정), 견본채색, 141.5×114cm, 寶鏡寺
부처님은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고자 오랜 고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셨다. 이후 불교가 종교로 전파되자 부처님은 교주로 신성시되어, 예경의 대상으로 모셔졌다. 따라서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을 알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석가팔상도는 부처님의 일생 가운데 큰 의미를 가지는 여덟 가지 행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부대중이 부처님의 생애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조선후기에는 많은 석가팔상도가 조성되었으며, 이를 봉안하기 위해 八相殿이라는 전각도 건립되었다. 조선후기에는 17세기 후반 중국에서 유입된 <釋迦源流應化事蹟> 판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석가팔상도들이 다수 조성되었다. 특히 보경사 석가팔상도는 <석가원류응화사적>을 모본으로 한 통도사 석가팔상도(1775)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당시 팔상도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1. 兜率來儀相
석가팔상의 첫 번째 장면인 도솔래의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기 이전의 내용을 담고 있다. 善慧(수메다)존자는 연등불에게 연꽃을 공양하고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후, 10바라밀의 수행을 마치고 보살의 계위에 올라 도솔천에서 護明菩薩의 모습으로 여러 겁의 해를 보낸다. 도솔천에 머무르던 호명보살이 인간 세상에 나타날 시기가 되자, 석가족 왕국인 카빌라바스투의 왕비인 마야부인에게 의탁하여 세상에 나고자 결정한다.
이 그림은 마야 부인의 꿈속에 호명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무수한 천인들과 내려오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그 아래 화면에는 마야부인의 꿈 이야기를 들은 정반왕이 바라문을 불러 해몽을 듣는 장면이다. 상단 좌측에는 석가족의 조상이 瞿曇(고타마)이라는 존귀한 성시를 받는다는 내용의 부처님 전생담이 표현되어, 호명보살이 석가족을 택한 연유를 말해준다.
2. 毘藍降生相
석가팔상의 두 번째 장면인 비람강생상은 산달이 된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가다가 룸비니[毘藍]에서 아기부처님을 낳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담고 있다. 룸비니에 이르렀을 때 산기를 느낀 마야부인은 無憂樹 나뭇가지를 붙잡고 선 채 출산한다. 아기부처님이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자 무한한 광채가 온 세계를 비추었고 아홉 마리의 용들이 灌浴을 하였다. 아기부처님은 일곱 걸음을 걸으며 외쳤다.
‘하늘과 땅위에서 내가 홀로 존귀하며[天上天下唯我獨尊]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잠겼으니 내 마땅히 이를 평안하게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그림은 마야부인이 궁중을 떠나 궁녀들과 룸비니 동산에서 오른족 옆구리로 아기부처님을 낳는 장면과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비단을 가지고 내려와 아기부처님을 받으며 모든 천왕들이 온갖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아홉 마리의 용이 깨끗한 물을 입으로 뿌려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장면, 아기부처님을 가마에 태워 궁궐로 돌아오는 장면, 아시타 선인이 아기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세속에 남아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출가하면 위대한 성자가 될 것이라고 관상을 보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3. 四門遊觀相
석가팔상의 세 번째인 사문유관상은 고타마 싯타르타 태자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남부러울 것이 없이 어엿하게 성장한 태자는 어느 봄날 동문에서는 노인, 남문에서는 병자, 서문에서는 시체를 보게 된 후 생명을 가진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번민에 빠진다. 그러던 중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되고 태자는 인생의 허무와 근본적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출가의 뜻을 굳히게 된다.
이 그림은 태자가 사방의 문으로 나가 중생들의 고통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동문에서 노인과 아이를 보고, 인간이 태어나고 늙어감을 알게 되는 장면이 표현되었으며, 그 아래에는 태자가 남문에서 장례행렬을 바라보며 인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과 그 상단에는 태자가 마침내 북문에서 출가한 수행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4. 逾城出家相
석가팔상 중 네 번째인 유성출가상이다. 유성출가상은 태자가 무상에 관하여 수도하고자 백마를 타고 왕궁을 빠져 나가는 장면이 주로 묘사되고 있다.
태자는 生老病死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생의 참다운 행복이 존재할 수 없음을 통감하여 구도의 出家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태자는 한밤중 부왕,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아들과 이별을 하고, 마부 찬타카와 함께 백마 칸타카를 몰고 출가를 하게 된다. 태자는 수 백리의 길을 달린 끝에 새벽에 아노마 강에 이르러 몸에 지녔던 장신구를 풀어 마부 편에 보내어 작별을 고한 후, 손수 머리를 깎아 공중에 던진 채 열반을 구하는 사문 생활의 첫출발을 한다.
이 그림에는 태자를 감시하던 부인 야수다라와 시녀, 관리들이 잠에 취해 있는 장면, 태자가 마부 찬타카에게 궁성을 뛰어 넘을 것을 지시하는 장면, 말에 탄 태자가 성을 뛰어 넘으니 제석천이 호위를 하며 하늘에 오색 광명이 환하게 비치는 장면, 머리카락을 자른 태자가 사냥꾼의 옷과 자신의 비단도포를 바꾸어 입는 장면, 마부 찬타카가 태자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금관과 용포를 가지고 궁궐로 돌아가는 장면, 정반왕과 마야부인, 태자비가 태자의 의관을 받고 슬피 우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5. 雪山修道相
석가팔상의 다섯 번째 장면인 설산수도상은 태자가 출가한 후 깨달음을 얻기까지 6년 동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처절한 고행의 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배웠지만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고 그들 곁을 떠나 혼자서 극심한 고행을 6년에 걸쳐 실천하였다. 긴 세월을 보내던 태자는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생사의 고통을 넘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양극단을 떠나 中道라는 수도의 길을 선택한다.
이 그림에서는 정반왕이 신하를 보내어 태자의 환궁을 종용하게 하는 장면, 이들이 태자에게 환궁하기를 간청하는 장면, 황궁을 거절한 태자에게 궁중에서 양식을 실어 보내는 장면, 6년 고행의 무상함을 깨우친 태자에게 牧女 수자타가 유미죽을 바치는 장면, 제석천왕이 연못을 만들어 목욕하게 하고 천인이 가사를 만들어 공양하는 장면, 태자가 수도하면서 모든 스승을 찾는 장면, 풀 베는 천인에게서 길상초를 보시 받는 장면 등이 함께 나타난다.
6. 樹下降魔相
석가팔상의 여섯 번째 장면인 수하항마상은 깊은 禪定에 들었던 태자가 마침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온갖 방법으로 방해하는 마구니들을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다. 태자는 보리수 아래에 정좌한 후 깨달음을 얻기까지 물러서지 않기를 굳게 결심하여 중도의 바른 방법으로 선정에 들었다. 태자가 모든 망념을 씻어낸 평정의 경지에 이르자 그가 부처가 될 것을 염려한 마군들의 유혹과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상호 의존적이며 절대적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緣起의 도리를 깨달은 태자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홀연히 땅이 흔들리며 地神이 솟아나와 成佛을 증명하자 마침내 마왕이 항복한다. 이로서 싯타르타는 ‘위대한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의 ‘석가모니부처님’이 되었다.
이 그림에는 마왕 파순이 마녀로 하여금 태자를 유혹하게 하는 장면, 마왕의 무리들이 코끼리로 태자를 위협하는 장면, 마왕이 80억 마군을 몰고 와 태자를 몰아내려고 하나 창과 칼이 모두 연꽃으로 변해 버리는 장면, 지신이 태자의 전생공덕과 계행을 마왕에게 증명하는 장면, 마군들이 작은 물병을 사력을 다해 끌어내려고 하나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돌비와 바람이 쏟아져 80억 마군을 물리치는 장면, 마왕의 무리들이 항복하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있는 모든 천신․천녀․군중들이 찬탄하는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다.
7. 鹿苑轉法相
석가팔상의 일곱 번째인 녹원전법상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무상정각을 이루시고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을 행하시는 장면이다. 부처님은 예전에 함께 고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만나기 위해 사르나트의 녹야원으로 길을 떠났다. 부처님은 올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中道와 八正道, 四聖諦를 중심으로 설법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설법인 初轉法輪이다. 수행자들은 그 법에 귀를 기울여 부처님과 동일한 경지를 깨닫고 제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불교 교단의 기본인 佛․法․僧 三寶가 형성되었다.
이 그림에는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5인의 비구에게 苦․集․滅․道의 사성제를 설파하는 장면, 사위성에서 계율을 설하여 교단의 체제를 갖추는 금강계단 설립의 장면, 수달다 장자가 아사세 태자의 동산을 사서 기원정사를 건립하고자 하는 장면, 어린이들이 부처님에게 흙을 쌀로 생각하고 보시하자 부처님이 이것을 밥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다.
8. 雙林涅槃相
석가팔상의 마지막 장면인 쌍림열반상은 부처님이 여든 살이 되던 해 쿠시나가라의 沙羅雙樹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 누워서 열반에 드는 광경이다. 40여년간 여러 곳을 다니며 진리의 바퀴를 돌려 깨달음을 전파하였던 부처님은 80세 되던 해에 제자들에게 진리와 자신의 마음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는 법어를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이 그림에는 열반에 드시는 부처님과 그 주변에 비탄에 잠겨있는 사부대중․천룡․팔부중의 모습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면이 배치되었다.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시는 장면, 아나율 존자가 하늘에 올라가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전하자 마야부인이 천녀들과 허공에서 꽃을 뿌려 공양하는 장면이 보인다. 또한 관이 성 밖으로 저절로 들려 나가는 장면, 8섬 4말이나 되는 사리가 비오듯 쏟아지자 이를 가지려는 여덟 나라의 왕들에게 바라문이 골고루 나누어 주는 장면 등이 나타난다.
* 현재 포항 보경사 팔상전에는 이와는 다른 팔상도가 걸려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 '보경사 팔상도 2'로 소개하겠습니다.
* 더욱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신지연(申志娟)의 ‘朝鮮時代 釋迦八相圖 硏究’(동국대 석사학위 2010)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