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 시제 (대승공 21세부터 25세 까지 선조 세향)
조상의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제례인 부사(祔祀)를 2016년 11월 1일 태리동 영수재에서 올리고(뿌리깊은버드나무카패/참고자료/68번글 선조 위패를 모시는 제사(祔祀) 축문 참조)
2016년 11월 15일(음 10월 16일) 영수재에서 위패를 모시고 47분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을 시제(세향)를 지냈습니다. 참고로 첨부파일은 축문입니다.
1604-11축문.hwp
※ 6년동안 종중 어른들을 설득하여 7년만에 위패를 모시고 세향을 지냈습니다. 이 지방은 사당보다는 재각문화가 발달되었으나 재각은 일기불순으로 눈비가 올 때 지방을 써 놓고 시제를 지내고 주로 묘제를 지냅니다.
1. 젊은 종원의 참여 의식 부족과 재관 부족으로 선조분들 묘제를 지낼 수 없는 현실로 재각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 당일 제각에 모여 헌관 집사 등을 정하고 초헌관에 따라 써온 축문의 대수(代數)를 쓰는데 총무가 시간이 부족하고 제물관리와 지방 쓰는 것이 불가능하여 위패를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2. 위패에 선조 함자를 넣는 것은 말이 안되는 줄 알지만 대부분 관직이 없어 "현고학생부군 신위" 이기에 족보를 지참하여 할머니를 보아야 어느 할아버지 인줄 알기에 편법으로 선조 함자를 넣었습니다.
3. 위패 배열 순서로 소목법(昭穆法)과 서상법이 있는데 우리 집안은 대대로 제사 때 서성법을 지켜 왔기에 서상법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소목법으로 배열하면 고위 비위에 술잔을 올릴 때 좌측 우측 좌측 우측~~~~ 순으로 올리기에 집사가 순서를 착각 할 수 있어 서상법으로 하여 제일 윗대 조상(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술잔을 올립니다.
4. 저의 낙향조 모강공 류용공(대승공 18세) 할아버지 5명의 아들 종중 모두 재각이 있으나 5남인 남제공 몽삼(직산군수) 후손 종중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위패를 모시고 시제를 지내기에 다른 큰집 작은 집안에 널리 알려 큰 잔치 형식의 시제를 지내려고 했는데 어른들의 반대로 대동보 족보 1질(싯가 150만원 상당)을 기증하고 수건 100매를 기증하려고 했는데 하지 못했습니다. 선조 시제는 직계 자손 보다는 방계 자손이 참여하면 선조 함자가 빛나고 외손등 타성이 참여하면 선조가 위대한 분이 된다고 설득하였으나 한계를 실감하였습니다. 우리 선조 시제에 왜 방계손이 참여 하느냐?는 것입니다.
5. 첨부파일 참고 자료 축문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의 8대조 이하는 한글 축문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윗대 선조 시제는 어른들의 반대로 한문 축을 사용합니다. 한자축문의 문제점은 축을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 대학원을 나온 후손도 읽기를 꺼리는데 몇분 안 남은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어차피 한글 축문으로 바꾸어 질 것인데 어른들이 자기가 살았을 때 결단을 내려 주면 종중 총무를 비롯하여 젊은 종원들이 편 할 것 인데 어렵습니다.
첫댓글 시제를 지내기 전에 위패 제작에 반대하는 한명의 어른으로 부터 엄청 꾸중을 들었습니다. 안내판에 띄어 쓰기가 안되었다, 소목법으로 배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요즘 정치인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