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주(柳爾冑, 대승공 31세 1726~1797, 곤산군파)
대구에 경주최씨 백불암 최흥원(반계수록 최초 교정한 실학자) 문하생이며 사도세자 장인 홍봉한의 천거로 벼슬길에 나선이후 홍봉한과 같이 유배가는 등 고초를 당한 분으로 낙안군수시절 운조루를 지었다고 한다.
운조루 앞 수련을 심은 연못으로 가운데 동그란 모양은 하늘, 연못둘레 네모는 땅 상징한다
경상도 양반 가옥 형식을 지어진 호남의 양반집(승주 조순탁 집은 경기지방 양반가옥 형태라 한다)
종손이 거주하는 공간, 운조루는고동 이익회(1767-1843)이 썼다함(위 글은 후대 다른 사람이 쓴글)
연수입의 20% 곡식을 넣어두고 누구나 식량이 없는 백성이 가져가도록 한 두지이며 옆 두지는 사도세자가 죽은 두지와 같은 쌀 두지
집에 딸린 이부분의 누각을 운조루라 했고 류이주 집은 귀만와라고 했다한다..
대승공 35세 류제양(이산공)님의 기록(분제기 혼례 경비 운조로 유래 등)으로 국가 유산이 되었다고 하니 기록이 있어야 문화재가 되는 것인가?
홍패교지--류이주선조가 1753년 무과최종 급제 교지(초시나 진사 생원은 백패교지를 내린다고 한다)
류이주가 집을 짓고 귀만와(늙어 돌아와 살 움집)라 했고 누각이름이 운조루였는데 지금은 전체를 운조루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