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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 답사를 마치고
문지회 250명 회원 여러분! 그리고 제 메일을 열심히 읽어주시는 800명 회원 여러분! 가을이 깊어가는 좋은 계절입니다.다들 안녕하시지요? 금년들어 보림사,화암사,상림,도산서원,도솔암,수원화성에 이르는 6차례 답사에 매번 차량 두대에 평균 80명 정도 회원이 동참하여 아무탈 없이 무사히 마치게 됨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각분과별로 주관하시다보니 분과장님을 비롯하여 분과원 여러분의 물심양면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마지막 답사는 6분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뜻에서 알찬 준비를 해 주셔서 구본건 분과장님과 변재욱 총무님, 6분과에 속하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는 문화재지킴이회의 금년 마지막 답사를 무사히 끝마쳤습니다.75명의 회원이 동참하여 수원화성,융건릉,용주사 등 정조와 사도세자관련 유적지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세자시절인 11살 때 뒤주에 갇힌 아버지(사도세자)를 살려달라고 할아버지(영조)에게 애원하였지만 끝내 8일만에 죽게된 것을 목격한 주인공으로서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한양에서 가까운 수원에 둘레 5.7km의 성을 쌓고 그 안에 행궁을 지어 장차는 이곳에서 정사를 돌볼 꿈을 펼치려고 영의정 체제공이 주관하고 다산 정약용도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하여 2년 반이라는 세월이 걸려 준공한 성곽으로 성안에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사적 3호이다..
융릉은 사도세자(장조)와 헌경왕후(혜경궁홍씨:홍봉한의 딸)의 합장묘이며,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묘로서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그 품격이 올랐음은 말 할 여지가 없다.
용주사는 856년 갈양사가 있던 자리로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화성시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정조가 세운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세자, 그는 누구인지 아래 자료를 보시면서 사진을 감상해 주시면 합니다.
사도세자 :莊祖, 1735~1762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선(李愃),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조선 후기 영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영빈(映嬪) 이씨(李氏)이며,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孝章世子, 후에 진종(眞宗)으로 추존됨]가 일찍 죽고 난 후 태어난지 1년만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0세에 혜경궁 홍씨와 혼인하였다. 어려서는 학문을 열심히 하여 자신이 지은 시문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아주 총명하였다. 세자 시절에는 소론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10세 때 신임사화(辛壬士禍)에 대하여 노론들이 잘못 처결하였다고 비판함으로써 일찍부터 노론의 미움을 받을 빌미를 제공하였다. 1749년(영조 25) 15세가 되던 해 영조의 명을 받고 서정(庶政)을 대리하게 되었을 때 세자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경우 이미 정권을 장악한 자신들의 입지가 위축될 것을 우려한 노론들은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와 함께 그의 잘못을 영조에게 과대포장하여 무고하는 등 세자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자 하였다. 아버지 영조를 무서워한 그는 궁궐 내에서 칼을 휘두르고, 함부로 궁녀를 죽이는가 하면,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평양을 갔다 오는 등 정신질환과 같은 비정상적인 행보를 계속하였다. 이후 1762년 김한구(金漢耉)와 그의 일파인 홍계희(洪啓禧)·윤급(尹汲) 등은 세자의 장인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 크게 세력을 떨치자 그 일파를 몰아내고 세자를 폐위시키고자 윤급의 종 나경언(羅景彦)을 사주하여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영조에 올리도록 하였다(나경언의 상변). 이 일로 인해 세자의 비행을 올린 나경언을 참형에 처하고, 영조는 세자를 불러 조목조목 다그치고 자결할 것을 명하였으며, 세자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만에 굶어죽게 하였다. 이후 영조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그에게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렸으며, 1777년(정조 1) 그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올라 장헌(莊獻)으로 추존하고, 묘(廟;사당)를 경모궁(景慕宮), 묘(墓)를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정조는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던 묘를 수원으로 옮겨 영우원을 현륭원(顯隆園)이라 고쳤고, 자주 능행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효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899년(광무 3)에는 장조(莊祖)로 추존되었으며, 현륭원을 융릉(隆陵)이라 고쳤다.
<화성행궁 전경>
<정조대왕 상>
<서북각루>
<화서문>
<서북공심돈>
<북포루>
<홍이포>
<장안문>
<신풍루 앞에서 기념 촬영>
<반차도, 타일에 그림을 그려 행궁 마당에 깔아 두었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행차했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래 몇 장 더 있음>
<화성행궁 안내도>
<수원화성 안내도>
<수원화성의 가치>
<융릉:사도세자의 묘소>
<건릉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
<용주사 사천왕문>
<보통 절에는 없는 홍살문이 있다.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렸기 때문에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용주사 대웅전:경기도 문화재자료 35호로 지정>
<대웅전 불상과 후불탱화, 이 탱화는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고 한다>
<용주사 범종:국보 120호>
<범종 해설서>
<사도세자와 왕비 제사를 지내는 전각과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
<용주사 경내에 부모은중경을 쉽게 풀어서 그림을 곁들여 현수막으로 걸어 두었다.>
끝으로 부모은중경을 소개한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한다.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10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부모가 살아계신다면 새겨볼 만하지 않겠는가. 아래 글은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父母恩重經(부모은중경)
1. 懷耽守護恩(회탐수호은)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 주신 恩惠
여러겁을 내려오며 이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날이 가고 달이 져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접어드니 육정이 열렸어라 한몸이 무겁기는 산악과 한가지요 가나 오나 서고 앉고 바람결 겁이나며 아름다운 비단 옷도 모두 다 뜻없으니 단장하던 경대에는 먼지만 쌓일러라
2.臨産受苦恩(임산수고은) 출산의 고통을 감내한 恩惠
아기를 몸에 품고 열 달이 다 차서 어려운 해산 달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하루하루 오는 아침 중병든 몸과 같고 나날이 깊어가니 정신조차 아득해라 두렵고 떨리는 맘 무엇으로 형용할까 근심은 눈물되어 가슴속에 가득하니 슬픈생각 가이없어 치족들을 만날때면 이러다가 죽지않나 이것만을 걱정하네
3.生子忘憂恩(생자망우은)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恩惠
자비하신 어머니가 그대를 낳으신날 오장육부 그모두를 쪼개고 헤치는듯 몸이나 마음이나 모두가 끊어졌네 짐승 잡은 자리 같이 피는 흘러 널렸어도 낳은 아기 씩씩하고 충실하다 말 들으면 기쁘고 기쁜마음 정해지자 슬픈 마음 또 닦치니 괴롭고 아픈것이 온몸에 사무친다
4.嚥苦土甘(연고토감) 쓴것을 삼키고 단것을 뱉는 恩惠
중하고도 깊고 깊은 부모님 크신 은헤 사랑하고 보살피심 어느땐들 끊일손가 단것이란 다 뱉으니 잡수실게 무엇이며 쓴것만을 삼키어도 밝은 얼굴 잃지않네 사랑하심 중하시사 깊은 정이 끝이없어 은혜는 더욱 깊고 슬픔 또한 더하셔라 어느때나 어린아기 잘 먹일것 생각하니 자비하신 어머님은 굶주림도 사양찮네
5.廻乾就濕恩(회건취습은)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恩惠
어머니 당신 몸은 젖은자리 누우시고 아기는 받드러서 마른자리 눕히시며 양쪽의 젖으로는 기갈을 채워주고 고운 옷소매로는 찬바람 가려주네 은혜로운 그 마음에 어느샌들 잠드실까 아기의 재롱으로 기쁨을 다하시며 오르지 어린아기 편할것만 생각하고 자비하신 어머니는 단잠도 사양했네
6.乳哺養育恩(유포양육은) 젖먹여 길러 주시는 恩惠
아버님의 높은은혜 하늘에 비기오며 어머님의 넓은 공덕 땅에다 비할손가 아버지 품어주고 어머니 젖 주시니 아기 비록 눈 없어도 미워할줄 모르시고 손과발이 불구라도 싫어하지 않으시네 배가르고 피를 나눠 친히 낳은 자식이라 종일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심 한이없네
7.洗濯不淨恩(세탁부정은) 손발이 다 닳도록 씻어 주시는恩惠
생각하니 그 옛날의 아름답던 그 얼굴과 아리따운 그모습이 풍만도 하셨어라 갈라진 두눈썹은 버들잎 같으시고 두뺨의 붉은빛은 연꽃보다 더 했어라 은혜가 깊을수록 그 모습이 여위었고 기저귀 빠시느라 손발이 거칠었네 오르지 아들 딸만 사랑하고 거두시다 자비하신 어머니는 얼굴 모양 바뀌셨네
8.遠行憶念恩(원행억념은) 먼길 떠날때 걱정 하시는 恩惠
죽어서 헤어짐도 참아가기 어렵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아프고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가 먼 길을 떠나 가니 어머니 모든 마음 타향 밖에 나가 있네 밤낮으로 그마음은 아이들을 따라가고 흐르는 눈물줄기 천줄기 만줄기가 원숭이 달을 보고 새끼 생각 울부짓듯 염려하는 생각으로 간장이 다 끊기네
9.爲浩惡業(위호악업은) 자식을위해 나쁜일까지 서슴치 않는 恩惠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같이 중하거니 깊고깊은 그 은덕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마음 편치않네 자식이 머나먼 길 떠난다 들을지면 잘 있는가 춥잖가 밤낮으로 걱정하고 자식들이 잠시동안 괴로운일 당할때면 어머님의 그마음은 오래두고 아프셔라
10.究竟憐愍恩(구경연민은)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恩惠
부모님의 크신은덕 깊고도 중하여라 크신 사랑 잠시라도 끈일 사이 없으시니 앉으나 일어서나 그마음이 따라가고 멀든지 가깝든지 크신 뜻은 함께 있네 어버이 나이 높아 일백살이 되었어도 여든된 아들 딸을 쉼 없이 걱정하네 이와 같은 크신 사랑 어느때에 끊이실까 수명이나 다 하시면 그때에나 쉬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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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6분과 주관하에 10월 답사를 무사히 마친행사에 박수를 보냅니다.
함께 동참을 못하여 죄송합니다. 문지회 발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