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화류씨 추계총회 참석하신 종원으로부터 이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파주 고려대전에 고려왕과 고려충신 위패를 모시고 매년 9월 제사를 지내는데 문화류씨는 5분 선조를 고려 충신으로 모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류씨가 시제비용 1위당 연간 20만원으로 5위이기에 문화류씨가 매년 부담할 시제비가 5위이기에 100만원인데 3년간 미납하여 총 300만원이 미납되고 위패를 잠정적으로 내렸다고 합니다.
내린 위패를 다시 올리는 비용이 1위당 500만원으로 다시 올리려면 2,500만원을 납부해야한답니다. 만약 영원히 위패를 내리게되어 신규로 모시려면 1위당 2,000만원으로 5위 1억원이 필요하기에 영구 제명되기전에 2,500만원으로 주고 복원해야하는데 총회날 회장님께서 고려대전에 “타문에 충신이 아닌 분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시제를 지낼 수 없어 고려대전에 위패를 모시는 일은 중단하기로 했다”고 하셨답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ㅅ ㄴ”인데 제가 차마 이곳에 쓸 수 없어 “타문에 충신이 아닌 분”으로 바꾸어 썼습니다. 지금까지는 과정 설명이고 고려 대전에 위패가 없으면 발생할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으니 읽고 각자 판단하여 보십시고 시정을 원하시면 대종회홈페이지에 의견 주어 시정되도록 하십시오.
1. 먼 훗날 후손들이 고려 대전을 방문하였을 때 문화류씨는 고려에 충신이 한명도 없는 경우가 됩니다.
2. 고려역사선양회홈페이지/사업분야/충공신배향위를 보면 성씨 柳자를 쓰신 고려 충신이 진주이봉 3분, 문화 5분, 양목 1분, 진주토진 1분, 서산 2분, 등입니다. 그런데 이중에 문화류씨 위패를 영구 철수하게 되면 문화류씨 시조 류차달 선조는 고려 개국공신록에 있는데 후손이 와서 보면 위패가 없고 홈페이지에서도 영구 제명되면 없는데 어떻게 답변해야 하나요?(내 아들에게 무어라 답변해야 하나요?)
3. 대전 뿌리공원에 각 성씨들이 유래비를 세울 때 문화류씨대종회에서는 양반과 평민 성씨가 함께한 유래비는 할 수 없다고 하여 참여하지 않았는데 당시 차문 유래비문에 문화류씨는 가성(가짜성씨)이고 문화류씨 시조는 류효금이다라는 문구 때문에 왜 문화류씨유래비는 없느냐?는 종원들의 수 많은 항의를 받고 나중에 추가 조성할 때 문화류씨유래비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려 대전에서 또 이런 과오를 범하려고 합니다.
4. 문화류씨는 대승공 12-14세 정도까지는 고려때 사람이며 문화류씨에서 대승공 10-14세 쯤에 분파되었다는 3산2주는 고려 충신에 있는데 문화류씨는 충신 위패가 없으면 말이 안되고 일부에서 말하는 고려대전에 위패가 없다고 문화류씨 고려충신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견해는 잘 못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은 자기 PR시대입니다. 자기를 적극 알려야 합니다. 문화류씨 고려 충신을 알리기를 안한다는 것은 잘 못 된 견해이며 기왕 있는 위패를 모 姓氏 때문에 문화류씨 위패를 철 수 한다는 것은 잘 못 판단한 것입니다.
※ 물론 일부 성씨중에 고려 충신이란 사람이 중량장(현재 군수 면장 정도 직급일 것임) 진사를 고려 충신이라고 위패를 모신 성씨가 있어 그들과 함깨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 가지만 이 문제는 고려역사선양회에서 고려 역대충신을 검증할 문제이기에 문화류씨대종회에서 고려역사선양회에 검증을 촉구할 문제이며 문화류씨 충신 5분 위패를 내리는 문제와 제사비 미납 해결을 별도 문제입니다.
문화류씨대종회에서 고려역사선양회에 고려충신 검증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면 없는대로 문화류씨 위패를 존치하는 것이 처음 고려역사선양회를 설립하신 류근창 진주류씨대종회장의 숭고하시신 뜻과 같이 문화류씨 5분 위패를 모시고 고려 충신에서 빠진 분중에 삼중대광 익정의 아들로 고려후기에 문하찬성사(정2품)를 역임하신 류번(柳藩)선조를 이번에 추가 하지는 의견이 있습니다.
※ 이상은 제가 들은 이야기이기에 정확성이 약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취지나 내용은 비슷한 내용 일 것입니다. 제발 문화류씨 선조 위패를 고려대전에 모시게 해 주십시오.
첫댓글 재삼님의 글을 보니 공감이 갑니다. 회장님말씀이 백번 맞지만 길게 보면 위패를 모셔야합니다. 뿌리공원에 유래비를 처음 조성할 때 문화류씨는 명문가집안이 일반성씨와 함께 유래비를 세울 수 없다고 당시 집행부에서 결정했는데 결국은 추가공사때 설치한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려대전에 문화류씨 공신과 충신이 없으면 문헌상으로만 있고 현실은 없는 결과가 됩니다. 포용과 배려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해 주십시오. 무엇이 더러워서 피하는 경우가 아닌 것 처럼 과거 우리 선조들의 명문가 집안은 아래 사람과 가내 가병 노비 등을 함께 포용하였습니다. 고려시대 노비도 포용한 선조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이 글을 보신 분이 몇분 있어 여기 소문 종중에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대종회장님 결정에 찬성하신 명분을 주요시하는 분과 요즘은 다 양반이라는데 어느 한 성씨 때문에 위패를 모시지 않는 것은 안된다는 현실파로 나누어 졌습니다.
여기는 대종회가 운영하는 카패가 아니고 이 글이 대종회 임원진에게 전달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ㅅㄴ 들과 함께 우리 선조를 모실 수 없다든지 아니다 모셔야 한다" 든지 하는 의견이 있으시면 경향이나 흐름은 알 수 있게 댓글 달아 주십시오.. 연말이면 저의 소문도 총회를 하는데 이런 의견이 있더라는 말을 하고 싶어 댓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