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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관광의 첫날이다.
오늘의 일정은 건축물이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금전, 운남성 박물관, 민속촌, 민속박물관을 관광하고
오후 저녁식사후에는 그 유명하다는 운남성 영상쇼를 관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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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 곤명시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번 소개하면
중국 남서쪽 변방에 위치하며 시내 평균고도가 1890m의 높은 지역으로서 여름에는 24도 겨울 평균이 15도 정도로
겨울은 짧고 온화하며 여름은 그다지 덥지않은 환경 덕에 항시 꽃이 피는 도시란다.
그래서 곤명을 "영원한 봄의도시" 또는 "꽃의 도시"라 불리운단다.
고도가 조금 높은 고산지대란 흠은 있지만 그렇다고 고산병까지는 걱정 안해도 되고
기후와 자연경관 문화유적 등으로 봐선 관광도시로 크게 발전할수 있는 도시임에 분명하고
실상도 정부차원의 정책지원으로 관광특구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란다.
운남성과 금전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등장하여야 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靑末
明初의 오삼계란 장군과 진원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명나라는 국운이 다해서인지 내부로는
이자상의 농민의 난과 외부로는 여진족
(청나라)의 침략에 시달렸다. 이러한 혼란
기에 국가의 명운을 갈라놓은 여인이 바로
오삼계의 愛妓 진원원이다. 기구한 운명의
진원원은 그야말로 경국지색이었던 모양
이다. 명문가의 자제, 명나라 황제, 오삼계
의 애첩, 이자성의 부하를 거쳐 다시 오삼
계의 품으로 돌아 과정에서 나라가 몇번
바뀌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깊은 얘기는 생략하고 어쨌든 명나라의 배
신자요 청나라 개국공신인 오삼계는 청황제
로 부터 운남성을 봉토받아 그곳을 다스리
는데 조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도 했지만
오삼계의 군대가 막강하여 황제처럼 군림했
고 또한 진원원과 사랑을 만끽하기 위해
도교사원이었던 절을 재건하여 지어진 궁전
이 金殿(진텐)이다. 따라서 주로 오삼계와
진원원 이야기와 유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오삼계의 힘이 너무 커지자 명나라 강희제
는 오삼계에 내려진 번왕의 칭호를 폐한다.
이에 吳는 반기를 들어 조정을 거의 함락
직전까지 갔으나 전쟁중 病死를 하며 구심
점을 잃은 吳軍은 자멸한다. 이에 진원원도
연못에 빠져 일편단심을 보여줬다는 사랑
의 이야기를 벽면에 글과 그림으로 보여
준다...//그림속 진원원 ... 우와~ 이뻐~~
금전은 사원의 건물 전체가 청동으로 건설
되었었다는데 세월이 흐르며 거의 도난
당하고 主殿인 태화궁만 너무 크다보니
훔쳐가지를 못해서 지금도 청동의 건물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래 청동으로 보여지는
건물은 색칠만 그럴듯하게 한 짝퉁이고
도교의 신선 몸체에 얼굴은 오삼계 장군인
동상을 모신 건물이 태화궁만이 전체가
청동으로 되어있다. 박물관 형태의 오삼계
관에는 범인은 겨우 들을 정도의 칠성검과
30키로 족히 보이는 하사품인 장식용 장검
이 전시되어 있다.
어쨋든 지금은 도교사원 형태의 공원으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30위안 정도이다.
오삼계 - 진원원 박물관과 태화궁의 오삼계 동상...
몸매는 도교의 신선이고 얼굴은 본인인데 무슨 사유가 있을듯...
도로의 보도블럭에 물로 붓글씨를 쓰는 도인 같은 노인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르면 또 쓰고... 그렇게 또 쓰고... 취미도 참 여러가지다... ㅎㅎ
꽃의 도시답게 2월인데도 곳곳에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하였다.
금전 鐘樓에서 바라본 곤명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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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 박물관
위 청동상은 호랑이가 물소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새끼 물소를 춤에다 두고 보호하는 형상이다.
청동기시대 유물로 출토되었다는데 무슨 전설을 간직한듯
하며 상당히 정교한것이 인상적이며 도시 곳곳에 위와같은
크고 작은 동상이 있는걸로봐서 이 도시에서 기획적으로
자랑하고픈 동상인 모양이다.
어느 민족이든 자신들의 민족문화를 이어 왔듯이 이들도 그들의 농경사회의 토속문화를 이어왔는데
우리네 문명과 그리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 어린시절 보아온 우리 농경사회의 도구들과 거의 비슷하다.
특히 목화를 이용하여 무명옷을 만드는 과정의 기구들은 옛날 시골에서 우리 할머니들이 쓰던 것과 똑 같았다.
목화에서 씨를 빼는 씨아, 실을 뽑는 물래, 천을 짜는 베틀... 등등 그러고 보니 목화를 우리나라에 전래한
고려조 공신인 문익점님이 원나라에서 황제와 충절로 맞서다가 귀향을 갔다는 곳이 이곳 운남성임을 감안할때
우연은 아닐듯하다.
당시 고려는 고관대작들만 비단과 모시로 옷을 해입고 일반 무지목매한 백성들은 삼베나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으니 이를 어여삐 여긴 공이 유배기간 동안 유난히 따뜻해 보이는 처음 접한 옷감(무명천)에 관심을 갖고
경작기술과 옷감을 생산하는 장비들을 유심히 살피고 기억하였다가(어쩌면 도면화 했을수도...) 목화씨 9개를
붓뚜껑에 몰래 숨겨서 귀국하여 널리 퍼트린 사실이 불현듯 떠 올랐다.
운남성의 또 다른 볼거리인 다랭이 논의 모형물인데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예전에 이곳의 풍경을 사진전으로 봤는데 규모가 어마 어마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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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촌의 광경들이다.
잘 기억이 안나 설명이 부실할거 같다.
차마고도를 설명하려는 조형물들... KBS에서 방영한 차마고도와는
해석하는대 따른 약간의 차이가 있다네요...
이곳 운남성과 티벳(시짱)과의 교역로가 진정한 차마고도라고 하네요...
운남성에서 시작하여 대리시를 거쳐 상그릴라라는 도시를 통해 티벳으로
들어가는 길이 진짜 차마고도라고 주장하네요
상그릴라는 해발 3,300m(티벳은 라사 시내가 3,800m)의 도시로 곤명, 여강,
대리 등과 묶어서 또 다른 관광상품으로
운용되는데 거리가 멀어 바쁘게 움직여야되는 단점은 있겠지만 중국
서남권의 동남아권 문화와 진품보다는 약간 어설프겠지만
티벳의 불교문화 등의 양 지역 다민족의 색다른 문명을 접할수 있는 좋은
상품이라 생각이 된다.
참고로 대리라는 도시는 한때 대리국이라는 작은 왕국이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돌을 대리석이라고 부른단다...
우리가 아는 대리석의 어원인 것이다.
티벳트 민속촌이다. 藏族 마을이다. 티벳(시짱)은 2년전 칭짱열차로 다녀온 곳이라 낮설지 않고 반갑다.
그때 배운 짧은 지식으로 소개하면... 그림의 만국기 모양의 오색기는 "롱다"라고하며 사원이나 커다란 성지에 치장을 하여 종교적
영역임을 표시한다. 개인들은 저것보다 작은 규모로 경전을 적은 5색의 "타르쵸"라는 깃발을 역시 성스러운 곳에 장식하는데
각각 파란-하늘, 노랑-대지, 적색- 불, 초록-바다(호수), 힌색-구름(눈)을 상징하며 거기에 적힌 옴마니반메홈(Om Mani Padme Hum)은
우주의 심오한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며 이는 일반 어리석은 백성들이 불경을 읽거나 외울수가 없기때문에 불경을 모셔둔 마니차
(휴대용도 있음)를 돌리며 옴메니반메홈을 염불하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으로 인정한다는 설명이다.
암튼 그들의 불심은 성지순례와 오체투지 등을 통해 보았을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임을 진정으로 느꼈었다.
더 이상은 밑천이 딸려 ...
위로부터 장족(티벳), 타이족(태국),
백족, 이스람교의 위구르(신장)족,
몽고족, 남호족, 기낙족, 회족, 나시족,
푸미족... 등등 운남성내의 24개 소수
민족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재현하여
놓은 곳인데 지금도 여기 저기에 건설
중인 현장이 눈에 띄였다.
솔직히 눈으로만 겉핧기로 둘러봐서
깊이 있는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직접 현지를 가 봐야 하는
모양이다... ㅎㅎ
저녁식사는 전통적인 사천요리와 고량주를 곁들여 현지 분위기로 즐기며 먹고 유명한 운남 영상가무쇼를 관람한다.
티벳을 포함한 여러 소수민족의 전통무용과 풍습을 현대적 음악과 조명을 가미하여 춤으로 연출하는 공연인데
웅장한 스케일과 정교함이 객석을 압도하며 2시간여를 새로운 문화로 깊게 빠져들게 한다. 한마디로 감동적이다.
특히 위 그림에서 보여주는 달빛속 여인의 춤과 공작춤은 가히 인간의 몸으로 표현 할수있는 동작일까하며
경이롭기까지 했으며 저런 경지에 오르기 까지의 노력에 진정한 마음의 최대의 찬사를 보낸다.
들리는 말로는 저 춤의 창시자인 양리핑(楊麗萍)은 이 춤을 위해 갈비뼈를 2개 뺏다는 전설과 함께
세계적인 무용수로 유명세를 타고 있단다. 오늘 우리에게 공연을 보여준 춤꾼은 그의 수제자란다.
입장할때 사진촬영을 하지말라는 점잖은(?) 경고 문구에 사진기를 안꺼냈는데 실제로는 곳곳에 비디오 등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였다. 왠지 나만 바보 같고 손해를 본거 같다... ㅎㅎ
다음 코스는 드디어 이번 여행의 백미인 구향동굴과 석림 차례이다.
오늘도 역시 늦은 시간임에도 이국에서의 일배 일배 부일배를 빼 놓을수가 있으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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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멋진 추억거리가 여기에 담겨있어 행복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큰 감동으로 느꼈던 하루였죠?
운남성 영상쇼를 담아오지 못한게 후회가 되네요. 그땐 문화인인척 하느라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