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위례는 황하 중류에 한성(韓城) 부근이고 안동(安東)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근초고왕 때 (東晉) 이동한 것이 아닐까요? 세종실록지리지에 근초고왕 (함안 원년)에 도읍을 남평양에 옮겼다고 하였습니다. 황하가 회수와 만나는 곳이 회안(淮安)이며 곧 광주(廣州)고, 한산(漢山) 혹은 태산(泰山)의 양(陽)인 산양(山陽)이 아닐런지요? 회안의 지근거리에 연수(漣水) 즉 안동(安東)도 확인되고요, 양주(揚州) 즉 양주(楊州)로 이어지는 한강(韓江)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첫댓글 위례는 황하 중류에 한성(韓城) 부근이고 안동(安東)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근초고왕 때 (東晉) 이동한 것이 아닐까요? 세종실록지리지에 근초고왕 (함안 원년)에 도읍을 남평양에 옮겼다고 하였습니다. 황하가 회수와 만나는 곳이 회안(淮安)이며 곧 광주(廣州)고, 한산(漢山) 혹은 태산(泰山)의 양(陽)인 산양(山陽)이 아닐런지요? 회안의 지근거리에 연수(漣水) 즉 안동(安東)도 확인되고요, 양주(揚州) 즉 양주(楊州)로 이어지는 한강(韓江)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삼국 때, 백제가 오월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야 복건성에 위치했던 倭와 교류와 연계가 원활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